“장하다 순교자, 주님의 용사여…” 주일미사 때 순교자 찬가를 부르며 비로소 9월이 순교자성월임을 깨닫는 신자가 많을듯 싶다. 과연 노래처럼 “칼 아래 쓰러져 순교자들의 백골은 없어도 푸르른 그 충절”만은 우리의 마음속에 찬란히 살아남아 있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바로 모진 박해 속에서 목숨을 버리며 신앙을 지킨 순교 선열들의 피와 정신의 유산임을 종종 잊고 지낸다. 때론 나태해지고 안일해진 우리의 신앙은 신앙을 물려준 선열들의 흔적을 직접보고, 느끼고, 묵상함으로써 새롭게 태어나기도 한다. 그만큼 강도 높은 피의 유산이다. 올 순교자성월에는 순교자들의 흔적이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는 기념관들을 순례하며 그동안의 신앙을 점검하고 반성해 보는 자리를 마련해 보면 어떨까? 순교기념관들을 순례하면서 순교자들의 흔적을 찾아가 본다.
한국교회 최대의 순교자 기념관인 절두산에는 평일에도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수천명 선열들의 함성과 고통이 와락 느껴지는 절두산은 “병인양요의 원인이 바로 천주교인들 때문”이라 생각한 대원군이 당시 프랑스 함대가 거쳐간 양화진을 형장으로 택하게 되면서 피로 얼룩진 순교지가 됐다.
안중근 의사의 사진과 친필엽서
사형집행 직전에 찍은 안의사의 정면사진과 서예에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안의사가 평안도 진남포에 있던 홍석구 신부에게 보낸 엽서. 전보는 안의사가 사형선고를 받기 4일전인 1910년 2월10일에 관동부 독부 지방법원 검찰관이 경성부 종현천주당 민 주교에 보내는 것으로 안의사와 홍 신부와의 접견을 허락한다는 내용.
성인 손선지(베드로)의 묵주
성인 손선지는 병인박해 때인 1866년 동료인 정문호, 한원서 등과 체포되어 전주 숲정이에서 동료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묵주 알알이 녹슬고 삭아 끊어져 버렸지만 여기에 담긴 성인의 신앙은 더욱 확연하게 다가온다.
묘표 사발
박해시대 신자들은 순교자의 무덤을 후세에 확인시키기 위해 사기그릇을 관 앞에 묻는 관습이 있었다. 이 묘표 사발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성녀 허계임 막달레나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녀 허계임은 성당 지하묘소에 유해가 안치돼 있다.
김선영 신부의 편지와 유품
1972년 중국 공산치하의 애국교회 참여 거부로 20여 년간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순교한 김선영 신부. 김 신부가 노역하면서 썼던 다 해어진 장갑과 양말은 또 다른 순교의 현장을 짐작케 한다.
치명일기
뮈뗄 주교가 1895년에 쓴 치명일기는 1866년~79년간에 순교한 신자들 중에서 8백77명의 명단과 그 약전을 담은 책으로 각 순교자마다 번호를 붙여 출생지, 신앙상태, 잡힌 날짜와 장소, 치명일자와 장소, 나이에 대해 지역별로 구분하여 간단히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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