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8,9-14)
예수시대에 세리는 강도나 창녀들과 한 통속으로 묶어 반사회적인 죄인들로 간주되었다. 복음서에도 가끔 세리들과 죄인을 한 묶음으로 부르고 있는 것을 읽을 수 있다(마태 9,10-11:11,19 마르 2,15-16 루카 5,30). 여기서 세리라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세무공무원을 가리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들이 세리를 강도와 한 열로 취급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 당시의 세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사람들은 일종의 민족반역자로서 반국가, 반민족 행위를 일삼던 자들을 가리킨다. 오늘의 성지인 유대아의 땅은 로마인들이 점령하고 있었고 이 점령지에서 로마인들은 국세, 지방세 그리고 관세까지도 거둬들였는데 세무공무원은 말할 것도 없이 로마인들이었고 이들은 현지의 유대아인들을 앞잡이로 내세워 세금을 거둬들였다. 점령군에 압제당하고 있던 유대아인들은 로마인들에게 어떤 형식으로든 협력하는 것은 조국에 대한 배신행위이며 더 나아가서는 하느님께 대한 모독행위로 간주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동족으로서 적대국을 위하여 동족의 주머니에서 돈을 빼앗아 세금으로 적대국에게 바치는 것은 분명 매국노일 수밖에 없었다. 복음서에서 세리라고 부르는 족속들은 이와 같은 적국의 앞잡이 조무래기 등을 가리킨다.
세리들의 가족은 유대아인들의 공동체 행사에 참여할 수 없었으며 재판소에서 증언할 자격도 없었다. 이런 세리도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할 필요를 느꼈다. 바리사이파 사람은 일상생활의 타성으로 형식적인 기도를 하러 성전에 갔지만 세리는 마음속으로부터 죄의식의 통회를 하러 성전에 들어갔다.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성전 안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누가 볼세라 한 구석에 웅크리고 서서 혼잣말처럼 마음의 기도를 올렸다. 우리 생각 같아서는 무릎 꿇고 기도를 올렸을 것 같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기도할 때에 서는 것이 관습이었다. 그만큼 하느님께 가까워지는 자세였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팔을 펴서 하늘을 향하거나 두 눈을 우러러 보거나 하지도 못하였다. 스스로 죄인임을 알고 있었기에 감히 하늘을 향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마음속에 있는 그대로를 하느님께 여쭈었다. “오! 하느님 저는 죄인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그리고는 자기 가슴을 쳤다. 통회하는 표시이다.
오늘의 비유는 이 두 사람이 기도하는 마음가짐을 비교하는 비유이다. 예수께서는 이 두 사람을 놓고 평가를 내리셨다. 공동번역은 ‘하느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바리사이파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세리였다’라고 번역하였는데 이 번역에는 문제가 있다. 원문의 본뜻은 ‘이 사람이(세리) 저 사람(바리사이)보다 더 올바르게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갔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바리사람은 인정받지 못하였다는 단죄의 뜻은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바리사이파 사람은 자기가 스스로 인정하는 것처럼 강도질, 협잡질, 간음 같은 죄를 범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율법에서 규정하는 단식계율, 십일조를 어김없이 지키며 그 이상을 실천한 사람이다. 그러니 잘한 것은 잘 한 것이므로 이 사람을 잘못한 사람이라고 단죄할 수는 없다.
사실 우리의 현실 생활에서도 우리는 누구나 무엇인가를 잘 한다. 그리고 그 잘한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지 않으면 인생을 잘 살아야겠다는 추진력을 가질 수가 없다. 다만 자기가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은 앞으로 더 잘할 추진력으로 간직하고 말아야지 그것을 규준삼아 남을 재고 비판하고 경멸하는 오만을 품어서는 안 된다.
오늘 비유의 바리사이파 사람은 이 점에서 과오를 범하였다. 오만한 덕인보다는 겸손하고 통회하는 죄인이 하느님의 자비를 움직인다.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면 높아진다’는 말은 이러한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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