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란 역사학과 신학 두 영역에 속하는 특수한 학문이다. 따라서 교회사의 대상은 신앙의 교회인 동시에 역사의 교회이다.
이렇듯 이중적 구조 속에 성장 발전해온 교회사 연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상황에서 야기되는 새로운 질문에 적합한 대답을 찾아주는 역할을 맡아 왔으며 ‘쇄신과 전통의 조화’라는 대명제 아래 교회의 시대적 사명을 조명하는 임무를 수행해 왔다.
교회사 연구가 교회 자체의 쇄신을 위한 전제조건임을 인식할 때 한국 가톨릭 교회사 연구 역시 박해기 1백년 동안의 빛나는 순교사에 한정될 것이 아니라 패배와 과실을 인정할 줄 아는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연구가 요구된다 하겠다.
1982년 11월 이후 1987년 12월말에 이르는 5년간의 한국 교회사 연구 발전상을 살펴보면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 시기부터 개화운동기, 광복운동기, 통일운동기로 분류되는 근 현대 교회사의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기 시작하는 두드러진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통일운동기에 관한 연구 논문은 49년부터 82년까지 2편에 불과하던 것이 이 시기에 들어오면서 28편이 쏟아져 나와 1천4백%라는 괄목할만한 연구 성과를 보여 6·25 전후로 한 한국교회사 연구의 관심을 대변해주고 있다.
■ 6·25 전후의 공산당 박해와 순교자들
한국 교회사 연구소가 공식 집계한 6·25 당시 서울·광주대교구 및 덕원 함흥·평양·춘천·대전교구의 순교자 현황을 보면 외국인 주교가 4명, 한국인 주교가 1명 등 5명의 주교와 신부 82명(외국인 42·방인 40), 수사 25명(외국인 25), 수녀 34명(외국인 27·방인 7), 신학생 4명(방인 4)등 총 1백50명이 순교했고, 전구교구사 연표를 보면 전주교구 내 남원·부안·상관·수류본당 등 8개 본당에서 69명의 신자가 순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각 지방 교구사가 정리 발간되고 평신도 순교자들에 대한 증언이 수집되면 더 많은 순교자들이 발굴될 전망이다.
통일운동기의 교회사 연구가 활발한 현 추세를 볼 때 6·25당시의 순교자 발굴 현양사업은 부분적이나마 낙관할 수 있겠으나 당시 목격자 사망수가 늘어남에 따라 증인 발굴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 체계적인 자료 조사의 시급성이 촉구되고 있다.
무신론과 유물사관에 바탕을 둔 북한 공산집단은 체계적으로 북한교회를 말살했으며 그 과정은 제1단계 ‘해방이후 전쟁개전초’ 제2단계 ‘인민군의 남한지역 석권 시기’ 제3단계 ‘인민군의 패퇴시기’ 제4단계 ‘휴전 이후’ 시기로 구분된다.
해방당시 한국 가톨릭교회의 신자 수는 약 19만명으로 그 중 5만여 명이 북한교회를 구성하고 있었으며 평양 함흥 덕원 등 3개 교구가 북한교회를 사목했으나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1950년 중반에 이르러 모든 성직자들을 잃어버리는 침묵의 교회가 됐다.
소련군을 앞세운 김일성은 소위 ‘반종교 투쟁’ 정책을 선동하면서 종교 탄압작용을 노골화했다.
김일성의 반종교 투쟁 정책에 따라 북한 주민들은 만 6살 때부터 종교를 밝혀야 했고 선교사들과 신자들은 밀정에 의해 엄한 감시를 받으며 생활해야 했고 교회의 모든 재산은 공산당에게 몰수됐다.
북한 공산당은 1948년 덕원 수도원 재산 몰수를 시작으로 사우어(Sauer)신 주교와 평양교구장 홍용호 주교를 피랍 구금 살해 하는 등 6·25전까지 불과 1년만에 북한 내에서는 한명의 성직자도 찾아볼 수 없도록 철저히 유린했다.
이 시기에 순교한 성직자 수도자들을 보면 사우어 주교와 홍용호 주교 등 주교 2명과 외국인 신부 21명 평양 및 함흥교구 방인사제 22명 수사 25명 수녀 24명(외국인 20, 방인 4)신학생 2명 등 총 96명이 순교했다.
공산당은 6·25 남침과 함께 남한교회의 가톨릭 성직자와 신자들에 대한 학살과 체포를 자행했다.
전쟁이 터지자 제일 먼저 종교인을 색출 총, 칼, 도끼, 망치, 낫 등으로 신부와 수녀 일반 신자들을 무참히 타살했고 수십 명을 한꺼번에 생매장하는 만행을 자행하기도 했다.
공산군은 초대 교황대사번(Bynre)주교(메리놀회 소속)와 춘천교구장 퀸란 주교(Thomas Quinlan·골롬반회)등을 체포 서울-평양-만포-중간진에 이르는 ‘죽음의 행진’을 강행했고 25명의 성직자 수도자들이 죽음의 행진 동안 추위와 굶주림 질병을 이겨내지 못해 희생됐다.
또한 광주교구장 안 브렌난 주교(골롭반 소속)와 고 토마, 오 브라이언 신부, 전기수, 고광규 신학생과 대전지역 10명의 신부가 체포 대전 감옥에서 순교했다.
6·25 전후의 공산당에 의한 교회 박해기에 있어 성직자 82명 수사 25명 수녀 34명 신학생 4명이 순교한데 비해 5명의 주교가 피살되거나 구금된 것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자기 교구를 버리지 않은 교구장들의 목자적 사랑을 보여주고 있어 순교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교회사 연구의 전망
한국 교회사 연구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로 연구 기반을 굳건히 해줄 기초작업의 빈약성이 지적돼 왔다.
교회사 연구의 기본지침인 ‘자료목록’과 ‘자료 안내서’가 미비하다는 것이 근·현대 교회사 연구에 가장 큰 맹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교회 사학자들은 더욱이 민족사로서 한국 가톨릭 교회사가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호교론에서 벗어나 편파성과 선입견을 피하고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교회 사학자들은 단순히 박해기 1백년사 안의 순교사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2백년 역사 전체를 관조하는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자기 인정과 개방이 앞으로 교회사 연구의 향배를 가늠할 것으로 전망했다.
“교회사의 객관적 서술 자체가 교회의 가장 훌륭한 호교가 된다”는 한국 교회사 연구소장 최석우 신부는 “교회 역사에 대한 올바른 정리와 이해는 교회 자체의 쇄신을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라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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