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그들과 오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가슴 한구석에서 따스한 기운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 기운이 느껴질 때면 살아간다는 게 이렇게 행복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가난하고 외로운 자의 벗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는 황종일(에삐마코·인천 송현동본당·52세)씨. 그의 증조·고조할아버지가 신앙을 증거하다 숨져간 무명순교자라는 집안내력이 황씨를 이렇게 살게 하는지도 모른다.
황종일씨의 하루는 조그만 미사가방을 들고 새벽미사 참례를 하면서부터 시작된다. 3백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미사에 나가 ‘어려운 사람들의 작은 벗이 되어달라’고 기도하면서 시작되는 그의 하루 삶은 바쁘기만 하다.
“집 근처에 천주의 섭리회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도시빈민을 위한 양로원인 ‘사랑의 집’이 있어 이곳에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황씨는 “이곳에서 오갈 데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안마와 지압도 해주면서 자연스럽게 이들과 함께 살려고 하지만 성덕이 부족한 탓인지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겸손해 한다.
황종일씨가 ‘사랑의 집’에서 하는 일은 이밖에도 많다. 오래전부터 침술을 배워온 황씨는 노인들이 아픔을 호소할 때마다 간단한 침을 놓아주거나 어렵게 사는 이들이 있으면 이들에게 옷 비누 등 생필품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몇 년 전에는 목자없는 양떼들인 인천 앞바다 섬에 살고 있는 공소 신자들을 위해 매주 배를 타고 나가서 예비자 교리 신자 재교육을 하는 등 열성적으로 선교에 전념하기도 했던 황종일씨는 “내 세례명이 하도 특이해 처음 보는 이들과 쉽게 친해져 이로운 점도 많다”고 전하며 “에삐마코란 세례명이 에비마귀로 불려 항상 화젯거리가 되기도 한다”며 환하게 웃는다.
그러나 황씨의 이런 봉사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 그가 봉사를 하면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은 간혹가다 들려오는 신자들의 모함소리란다.
직선적인 성격 탓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는 황종일씨는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이웃이 되고자 힘닿는 데까지 뛰어다니고 있으나, 이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있어 아픔이 많았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고난의 십자가 길을 걸어, 십자가에 처형됐듯이 나의 삶 속에 부딪쳐 오는 아픔들을 그분의 사랑으로 승화시키고 싶지만 인간적 감정이 앞서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황종일씨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배여 있다.
인터뷰를 한사코 거부, 어렵사리 만난 자리에서 황씨는 “저의 집에 증조부, 고조부 할아버지가 무명 순교자로 치명했다고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어른들에게서 들으면서 자라왔다”고 밝히고 “이 두 분의 시신이 현재 미리내 무명순교자 묘지에 묻혀있음을 확인했으며 이 분들이 순교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으나 그렇게 쉽지가 않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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