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평생 갚을수 없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도 이웃을 용서해줘야 하는 빚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에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가 이미 받은 하느님의 용서도 언제나 유보된 채로 남아있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성서의 내용입니다.
오늘 제1독서(집회 27,30-28,7)에서는 놀라운 지혜가 등장합니다.
옛날 유대인들은 많은 강대국들로부터 오랫동안 박해와 고난을 겪어 왔습니다. 그들은 실로 약소 민족이었으며 동네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일어서고 재건하기 위해서는 먼저 압제자들을 용서해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다른 나라에서는 찾을 수 없는 지혜입니다. 실제로 미움과 복수는 악순환만 계속 불러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용서하신 것처럼 유대인들도 용서로서 탁탁 털고 일어서기를 강조한 것입니다.
용서는 굴욕적인 것 같으나 위대한 것입니다. 용서는 또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참되게 용서할 수 있으며 크기가 좁쌀만도 못한 인생들은 평생을 걸어도 용서하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하느님의 용서와 우리의 용서에 대한 말씀이 비유로서 잘 나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왕에게 1만 달란트의 돈을 빚지게 되었습니다. 1만 달란트의 돈은 우리 돈으로 1조원이 훨씬 넘는 돈으로서 서민들은 평생 벌어도 벌 수가 없고 평생 갚아도 갚을 수가 없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그러나 왕은 그 사람의 불쌍한 처지를 생각하여 빚을 다 탕감해 줍니다. 왕은 바보처럼 한푼도 건지지 않고 전액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받은 하느님의 용서입니다.
그런데 많은 돈을 탕감 받은 사람은 나오다가 자기에게 1백데리온 빚진 사람을 만나자 그걸 탕감해 주지 못하고 무자비하게 감옥에 넣어 버립니다. 1백데리온은 지금 돈으로 2백만원쯤 됩니다. 2백 만원이 큰 돈이긴 하지만 자기가 탕감받는 1조원 이상의 돈이 비하면 60만분의 일도 안되는 아주 적은 돈입니다. 다시 말해 눈꼽만한 잘못도 결코 잊지 않고 따져야만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용서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불행합니다. 남의 잘못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라 용서를 못하는 자신의 옹졸함 때문에 불행합니다.
어떤 자매가 어렸을때 자기 계모한테 많은 구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머리도 좋고 아버지의 경제력도 좋아서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되었습니다. 시집도 병원을 가진 의사 집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의사이면서도 자신의 얼굴에 돋아나는 피부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원인도 병명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성령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자신이 오랫동안 잊어왔던 계모에 대한 잘못을 크게 뉘우치게 됩니다. 그리고는 병이 나아버렸습니다.
학자들의 주장으로는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두통 불면증 고혈압 위장장애 신경성질환 또는 정신질환 등이 생긴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도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가슴에 독한 쓰레기를 담고 있는 사람이 온전할 수는 없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그 더러운 것을 꺼내지 않으면 바로 그 찌꺼기 때문에 육신이 병들고 정신이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용서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죽어야 하는 처절한 아픔이 있습니다. 자기가 죽지 않고는 절대로 상대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도 죄많은 인간을 용서하시기 위해서는 당신이 직접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인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번 죽어서 용서가 되면 그는 평생 자유로운 인생이 됩니다. 그러나 용서하지 못하면 그는 평생을 끌려 다니면서 천번만번 죽어야 합니다. 그보다 더 비참한 인생도 없습니다. 미움은 세상끝까지 인간을 따라 다니며 괴롭힐 뿐만 아니라 저 세상에까지 따라가서 괴롭힙니다.
참 사랑은 용서에서 옵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애긍을 많이 한다고 해도 그가 진정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고 있다면 그는 아직 사랑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가 아무리 어렵다해도 우리가 마지막 심판때에 하느님께 매달릴 자비와 용서에 비한다면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1조원과 2백만원의 차이보다도 더 큽니다.
인생은 아무리 잘못되었다해도 용서받고 용서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썩은 찌꺼기를 깨끗이 씻고 다시 일어선다는 것은 매우 자랑스럽고 또한 아름다운 일입니다. 인생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며 지식으로 사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 때 그가 세상을 가장 지혜롭게 사는 것이 됩니다. 누가 여러분을 괴롭힙니까? 바로 그 사람을 사랑합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