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생각은 어린이들의 생각과는 다르며 부모의 뜻은 자녀들의 사고로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훨씬 더 높고 더 넓으며 더 깊습니다. 더구나 하느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우리 식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복음서의 내용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의 묵상을 제시해 줍니다. 어떤 신학자는 말하기를 아침에 일직 온 일꾼은 유대인을 말하고 저녁에 온 일꾼은 이방인이라는 해석을 합니다. 어떤 이는 또 말하기를 바라사이파나 율법학자들이 아침에 온 일꾼이요 세리, 창년, 죄인들이 저녁에 온 일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일찍 세례받은 자들이 아침에 온 일꾼이요 늦게 세례받은 이들이 저녁에 온 일꾼이라고 합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9월이 되면 포도를 수확하게 되는데 이때가 되면 장마가 시작되기 때문에 포도를 제때에 거둬들이지 못하면 그해의 수확은 망치게 된다고 합니다. 포도가 물에 녹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포도를 시간 늦지 않게 거둬들이기 위해 급하게 서둘러야 하는데 비록 한 시간밖에 일하지 못할 사람이라도 서로 다투어 불러들여 일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를 당혹하게 만드는 한 가지 이상한 사건은 아침에 일찍 와서 하루종일 수고한 자나 저녁에 늦게 와서 한 시간 일한 자나 주인으로부터 받는 품삯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눈으로는 확실히 불공평합니다. 일꾼들의 불평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생각은 우리와는 다릅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주인의 처사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러나 그것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사실 주인은 분명 선하게 일을 처리했습니다. 품삯을 깍지도 않았으며 다만 늦게 온 자들도 하루의 품삯을 넉넉하게 주었을 뿐입니다. 어찌 보면 한 시간이나 두 시간 일한 자는 자기들이 고집 부려서 늦게 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몰라서 못 왔으며 일을 시켜주지 않으니까 하고 싶어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한 시간의 품삯으로는 집에 돌아가서 식구들을 만날 체면이 서질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후한 처사를 베푼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너무도 크시기 때문에 인간의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인간은 자주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지만 하느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부족하고 잘못되어 있어도 이타적이시고 당신보다는 인간을 먼저 생각하십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랑을 아는 사람이 천당에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천당에 가봤더니 꼭 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없고 지옥에나 빠졌으리라고 기대했던 사람이 의젓하게 동산을 거닐고 있더랍니다.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냐고 했더니 자기도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평생 죽을죄만 짓고 살다가 죽기 전에 우연히 신부님을 만나 통회 한번 한 것밖에 없는데 하느님의 처사가 너무도 감격스러워 자기가 천당에서 하는 일이란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다음엔 연옥엘 가 봤더니 저 사람은 벌써 천당에 갔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사람이 공연한 불평을 하면서 고통을 겪고 있더랍니다. 아니, 당신이 왜 여기서 이 고생을 하느냐고 했더니 그 사람 대답이 글쎄, 천당에 갔더니 창녀, 강도, 사기꾼 등이 판을 치고 있기에 하느님의 처사가 너무도 못마땅하고 속이 뒤틀려 그리로 왔다고 하더랍니다.
물론 꾸며진 얘기지만,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우리의 좁은 소견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그분의 사랑이 크시다고 우리가 언제까지나 게으름을 피워서도 안 됩니다. 해는 언제고 서산에 떨어지듯이 마지막은 불시에 다가오며 그때까지 일자리를 찾지 않고 얻지 못한 자들은 받을 품삯이 없어서 불평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아무리 수고해도 하느님이 품삯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모두에게 주시는 은총은 그저 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지 인간의 공로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서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중요한 메시지 중의 하나는 ‘첫째가 꼴지되고 꼴지가 첫째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포도밭에서 일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축복입니다. 따라서 많이 일한 사람은 이미 축복을 풍성하게 받고 있는 것입니다. 소견머리 없이 자신의 공로를 따지지 말고 기쁨과 은혜로서 하느님의 일에 참여하도록 합시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넉넉하게 채워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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