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딛고 각고의 노력 끝에 화가로서 우뚝 선 한 장애인 화가의 눈물겨운 역경의 드라마가 이 가을 한국 화단에 첫 선을 보이게 돼 세인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있다.
재야(在野)화가였던 지홍(智弘) 박봉수(니코데모)화백의 딸 박보현(오틸리아·44세)씨가 10월16일부터 20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총회관 제1전시실에서 그동안 전신마비의 고통을 딛고 틈틈이 그렸던 작품을 일반인들에게 선보인다.
“음악을 듣고 있으면 소리가 들리기보다는 색채가 들린다(?)”는 박보현씨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음악뿐 아니라 자연,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내 생활 속에서의 하느님 체험을 표현한 그림들을 선보이고자 애썼으나 세상에 내놓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 같다”며 겸손하게 전시회 개최목적을 설명한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아버지 박 화백과 함께 그렸던 동양화 다수와 처음 시도해보는 서양화를 선보일 예정으로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는 박보현씨는 전시회 준비기간 중 건강이 악화돼, 전시회를 연기하는 등 가히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한때는 전신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심한 중증장애인이었지만 어머니의 극진한 간호와 본인의 삶에 대한 의지와 사랑으로 불행을 딛고 일어선 박씨는 곱은손에 붓을 들고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젊었을 때 나는 건강한 두 발로 전 세계를 두루 돌아다니고 싶었다”고 지난날을 회상하는 박보현씨는 “어느날 갑자기 불구가 돼, 젊은날의 꿈을 실현하기 어렵게 됐으나 오히려 이것이 주님이 내게 주신 은총”이라며 “아버지의 화풍을 이어가라는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덧붙였다.
박보현씨는 또한 “항상 끝없는 방랑기로 거의 집에 있지 않았던 아버지를 어렸을 때는 정말 미워하기도 했으나 고인이 되신 아버지가 당신의 그림을 통해 내게 끝없이 말을 걸어오고, 영감을 주고 있어 오히려 지금이 아버지를 더욱 가깝게 느낀다”고 말하면서 “이 전시회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끝없이 추구하셨던 아버지의 넋이 세상에 나를 통해 드러나길 바란다”고 강조한다.
도(道)와 예술(藝術)이 일체된 삶속에서 인간과 우주의 본질을 추구했던 고 박봉수 화백의 화풍을 이어받아 인간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박보현씨가 세상에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이제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화가로서의 출사표를 던지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까지 어눌하고, 험난했던 박씨의 삶이 이제 새롭게 펼쳐질 10월의 전시회를 통해 박보현씨는 물론 마음과 몸이 병든 현대인들에게 진한 인간애(人間愛)가 전해지길 기대한다.
“누군가에게 등을 떠밀려 이렇게 큰일을 시작하게 됐다”는 박보현씨는 수줍은 미소 속에서 무언가를 사랑하는 인간의 모습이 이처럼 아름답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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