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다 때가 있습니다. 뿌릴 때가 있으면 거둘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계절적으로 수확의 철이면서 교회의 전례력으로 봤을 때는 지난 1년의 삶에 대해서 하느님께 셈을 바치는 때입니다.
오늘 성서의 주제는 ‘포도밭’입니다.
포도나무는 올리브 나무와 무화과나무와 더불어 성서에 자주 등장되는 나무중의 하나입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포도밭이 널려 있기 때문에 성서에서는 포도원, 포도밭의 비유가 자주 등장합니다. 즉 포도밭은 이스라엘이요 그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1독서(이사 5,1-7)에서는 하느님의 포도밭인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정성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 열매를 내지 못하고 먹지도 못하는 들포도가 열린 내용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즉 하느님의 사랑과 정성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타락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란 고작 그런 것뿐입니다. 하느님의 정성이 담겼다면 좋은 열매가 나와야 하는데 오히려 신포도처럼 먹지 못하는 열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작품이요 또한 인간이 하느님께 바치는 셈이 됩니다. 어쩌면 우리 자신들도 지난 1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는지 모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은 늘 풍성했건만 우리의 삶의 결실은 늘 부실했습니다.
복음에서도 예수께서는 하느님께서 포도원의 시설을 잘 마련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도지를 주었건만 그들은 때가 되자 하느님께 도조를 바치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이 보내신 종들과 그 아들을 죽이고 있다는 내용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늘 베푸시고 인간은 늘 그 사랑을 이용하고 배신합니다. 이것이 하느님과 인간의 길의 차이점입니다.
오랫동안 성당에 나오지 않던 어떤 냉담자가 자기본당 신부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존경하는 신부님, 저는 봄에는 일부러 주일에 씨 뿌렸고 여름에는 주일에 들에 나가 있었으며 가을에는 또 주일에 곡식을 거둬들였습니다. 그래서 주일에 열심히 성당에 나간 사람들보다 농사를 훨씬 잘 지었습니다”
신부님이 답장을 썼습니다.
“형제의 편지는 잘 읽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선 계산서를 꼭 가을에만 청산하시지는 않습니다”
냉담자는 신부님의 답장 내용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몰랐습니다. 다만 냉담을 해도 열심한 자들보다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에 기쁘기만 했습니다.
그런걸 보면 참으로 이상 합니다. 안 믿고 안 나오면 무엇인가 고장 나서 벌 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상을 받는 듯이 더 잘되는 경우를 우리는 봅니다. 그래서 갈등도 큽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하느님의 계산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어찌 보면 신앙은 역설적으로 진행될 때도 있습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도 있듯이 열매는 없는 것이 꽃만 요란한 나무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그가 세속적으로 돈을 많이 벌고 성공을 했다 해도 그것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아니라면 그것은 실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포도나 들포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단돈 1원이라도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신 사랑이 담겨 있을 때 바로 거기에 참된 부와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지난번 재산공개와 금융실명제 실시를 통해서 우리는 권력을 쥔 자들과 돈있는 자들의 속을 잠시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실로 충격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위장된 가면 속에 자신을 가두고 있는지 모릅니다. 권력이나 부안에서 자신들은 누구보다 많은 수확을 했다고 승리의 쾌재를 불렀을테지만 하느님의 계산은 그렇게 편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셈은 재산 공개보다 열배, 백배 더 엄격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성실하게 살았던 이들에게는 그날이 기쁨과 참된 승리의 날이 될 것입니다.
교회는 이제 연중 마지막 시기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마지막 시기에 우리는 세상의 종말을 생각하고 또한 우리의 죽음도 묵상하게 됩니다. 누가 과연 하느님께 칭찬받는 종이 될 것이냐는 그날 가봐야 합니다. 지금 우리 눈에는 감춰져 있습니다. 따라서 세속 사정에 현혹되거나 방황하지 말고 신앙의 올바른 길을 진실하게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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