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오로 정하상의 아버지 정약종이 저술한 「주교 요지」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교리서라면 정하상이 쓴 「상재상서」(上宰相書) 는 한국교회 최초의 호교론서(護敎論書)이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시금석이었던 이 두 부자(父子)는 교회 고전(古典)을 전하는데 있어서도 빼어놓을 수 없는 소중한 인물들이다.
「상재상서」(相宰相書=재상에게 올리는 글)는 순교자 정약종의 둘째 아들로 신유박해로 와해된 조선교회를 재건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다해왔던 정하상이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자신이 체포될 것을 알고 미리 저술해 두었다가 1839년 8월15일 서소문 밖에서 치명되기 전 종사관을 통해 재상 이지연에게 올리는 글을 두고 말한다. 모두 3천4백자로 쓰인 「상재상서」는 천주교가 무부무군(無父無君)하는 사교(邪敎)가 아님을 증명하고 신앙의 자유를 허락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상재상서는 내용상 ‘천주교 기본 교리에 관한 설명’ ‘호교론’ ‘신앙의 자유에 대한 호소’ 부문으로 나눌 수 있다.
정하상은 또한 영혼의 불멸과 상선벌악의 당연함을 통해 천당, 지옥의 존재를 밝히고 “국가의 상과 벌은 아무리 크게 오래되어도 일평생이지만 하느님이 내리시는 상과 벌은 영원한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상재상서가 가장 돋보이는 점은 정하상의 「교회론」과 천주 십계를 인용한 거침없는 호교론이다. 상재상서에서 정하상은 천주교는 “지극히 거룩하고, 공번되고 바르고 참되며 완전한 유일무이의 종교”라고 정의하고 하나씩 그 이유를 설명한다.
정하상은 “성교회가 거룩한 이유는 천주께서 친히 세우셨기 때문이며 공번된 것은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학식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 세계의 모는 인류가 다같이 실천할 수 있는 종교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하상은 “천주교가 인류의 내력과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갖추고 있으니 완전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전통적으로 사도신경을 통해 내려오는 교회의 4가지 특징 ‘하나이고 거룩하고 공번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와 비교해 볼 때 정하상이 교리지식에 얼마나 해박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상재상서는 ‘천주교를 아비도 임금도 모르는 사교’로 정한 조정에 대해 십계명의 실천윤리를 말하면서 천주교야말로 “충성과 효도 우애 용서 인애 의지 예의 지혜를 실천하는 참 종교임”을 피력하고 있다. 정하상은 교우들을 무부무군(無父無君)의 무리라는 주장에 대해 천주 4계를 들어 “아비와 임금을 깍듯이 받들고 있음”을 말하고 “가정의 아버지보다는 나라의 임금, 나라의 임금보다는 천주를 섬기는 것”이라 하여 천주가 절대 무부무군의 종교가 아님을 변호하고 있다. 정하상은 아울러 천주 제6계와 제9계를 들어 재물과 여색을 공유한다는 통화통색론(通貨通色論)에 대해 저항하고 있다.
상재상서 마지막 부분에서 조상제사와 신주를 모시는 일이 이치에 맞지 않음을 설명한 정하상은 천주교를 자유롭게 믿을 수 있는 자유를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따라서 정하상의 상재상서는 천주교에 대한 박해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신앙의 자유를 당당히 주장하고 있는 호교론서로써 한국 초기교회 정신사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상재상서에 대해 “참다움을 사랑하며 참답게 살아가려던 한 사람의 굳은 의지가 깃든 글”이라고 평가한 고려대 조광 교수는 “상재상서는 순교자의 용기와 성인의 믿음이 스며있는 한국교회의 성전(聖傳)”임을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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