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저주하고 인간마저 더불어 살기를 외면한다는 ‘지상의 연옥’ 소말리아. 수십 년간 계속되고 있는 내전과 금세기 최악의 한발로 수백만명의 난민들이 들끓고 있는 수단.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총무 최기식 신부와 가톨릭신문사 사장 최현철 신부, 마산교구 사회복지담당 이창섭 신부 등 한국교회 대표단 일행이 지난 9월1일부터 보름간 이 두 곳의 난민촌을 방문했다. 한국교회 최초로 이루어진 이번 방문에는 본사 전대섭 기자가 동행 취재했다. ‘신조차 버린 곳’이라 일컬어지는 현지 난민촌 상황을 4회에 나누어 싣는다.
지구의 저쪽, 아프리카로 가는 길은 멀기만 했다. 서울을 출발한지 3일만인 9월 3일 새벽 3시50분(현지시간 2일 밤10시)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 도착했다. 비행시간만 24시간 30분. 이래가지고는 ‘지구촌’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아프리카는 아직도 너무 멀다.
소말리아와 수단 난민촌은 방문하게 된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 지난 7월말.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외원조에 나선 한국 주교회의 사회복지원회가 직접 가서 그곳 사정을 살피고 지속적이고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아 볼테니 동참해서 취재하라는 것이었다. 주교회의 관계자로 사회복지위원회 총무 최기식 신부와 마산교구 이창섭 신부 그리고 작년부터 소말리아 돕기 모금운동을 전개해 온 가톨릭신문사 사장 최현철 신부 등 한국교회 방문단이 짜여졌다.
한국을 벗어나 초행길인 내겐 “하필 아프리카인가”라는 낭패감(?)과 함께 자칫 남의 고통을 엿보는 구경꾼에 지나지 않을까 내심 찜찜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촉박한 여행일정을 앞두고 이런저런 자료를 뒤적이는 사이에 작은 바람 하나를 갖게 됐다. “혹 이번 길이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내 삶의 한 모서리를 털어내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나이로비공항에는 뜻밖에도 주 케냐 한국대사관의 박영석(시몬)영사와 포교성 베네딕도회 나이로비 분원 수녀님 두 분, 한국교민 신자회 김성수(아우구스티노)회장 등이 마중을 나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케냐에 거주하는 한국교민 가운데 가톨릭신자는 8가구에 30여 명 정도이고, 워낙 소수인데다 마음 놓고 찾아갈만한 성당이 없어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 김 회장의 설명이다.
9월4일 현지방문이 시작 됐다. 소말리아의 ‘게도’(Gedo)지역과 수단 남부 ‘니믈레’지역을 각각 3박4일씩 방문키로 돼 있었다. 그 전날인 3일은 케냐 주교회의 사무총장 루아(RUWA)신부와 소말리아 모가디슈교구 장서리 버틴(Bertin)신부를 방문, 현지 상황과 국제 원조기구들의 구호활동에 대해 들었다. “단순히 돈이나 구호물자를 지원하는 것보다 학교나 경작지 개발 병원 등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장기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시급하다”는 버틴 신부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버틴 신부는 모가디슈지역에 있는 3천여 명의 신자들을 위해 사목하다 내란으로 더 이상 머물 수 없어 현재는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 있는 성당에 방 한 칸을 빌려 지내고 있으며 소말리아에는 사제가 한명도 없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미국 가톨릭 구제회(CRS)나이로비 사무실에 들러 관계자들을 만났다.
4일 오전 10시, 일행을 태운 경비행기 세스나기가 나이로비 윌슨공황을 이륙, 만데라로 향했다. ‘만델라’는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케냐 등 아프리카 동부 3국이 접한 국경도시로 소말리아 난민 4만여 명이 몰려있는 케냐 내 최대의 난민촌.
2시간 반 동안 8백 km의 비행 끝에 다다른 만델라 상공에서 내려다 본 난민촌은 끝없이 펼쳐진 야영지와도 같았다. 광활한 대지에 시야를 온통 뒤덮고 있는 사막의 붉은 황토는 상상만으로만 그려보던 아프리카를 실감케 했다. 연중기온이 가장 낮은 시기라 섭씨 30도 정도였다. 지열과 따가운 햇볕으로 텁텁함을 약간 느낄 뿐 간간이 부는 바람 탓인지 큰 더위는 느낄 수가 없었다.
오랜 내전으로 지난 한 해에만 35만명이 사망한 소말리아는 전체인구 6백만명 중 2백만명이 아사위기에 놓인 형극의 땅이다. 내전으로 심한 피해를 본 게도(Gedo)지역은 살아남은 어린이의 반수가 식량부족으로 인한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
이곳 국경도시 만델라에 소말리아 난민들이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 작년 5월. 91년 1월 21년간 장기집권해온 독재자 모하메드 세드 바레가 소말리아 반군연합에 의해 축출되자 씨족(Clan)및 분가(Subclan)를 기반으로 하는 무장세력들이 활거, 정부 주도권을 어느 씨족이 잡을 것인가를 두고 다투기 시작하면서 소말리아는 무정부 상태에 빠졌다.
더구나 계속되는 내전 속에 중앙정부를 타도하기 전까지만 해도 민심을 얻기 위해 민폐를 끼치지 않았던 반군들도 군벌로 탈바꿈했다. 이들은 소말리아를 위해 주재한 각종 국제기구 및 단체, 특히 구호단체들을 공격목표로 삼고 약탈을 일삼고 있다.
내전으로 농업생산은 거의 중단되었고 가뭄까지 겹쳐 수많은 아사자와 전사상자가 속출하자 소말리아인들은 살길을 찾아 국경을 넘기 시작한 것이다.
만델라공군기지에서 지프로 5분가량 달려 아일랜드 주교단 해외원조기구인 ‘트로크라’(TROCAIRE)만델라 본부에 도착했다. 트로크라는 소말리아 게도(Gedo)지역 구호사업을 맡고 있는 국제 원조단체다. 트로크라 아프리카 책임자 엘리자베스(여·46)씨는 “소말리아에는 3개의 국제 까리따스가 활동 중이며 수도 모가디슈지역은 이탈리아 까리따스가, 가바하리(GABARHAREEY)지역은 폴란드 가톨릭 구호단체 MEMISA가 구호사업을 펴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1km만 가면 소말리아와 케냐의 국경선이다.
게도지역에도 트로크라 사무실이 있지만 현지 직원들은 만델라 캠프에서 지낸다. “소말리아 정황이 언제 어떻게 급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이다. “전날 총을 겨누던 사람들이 다음날이면 악수를 한다”고 한다. 묘한 긴장감이 우리 일행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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