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오후 8시부터 새벽 5시까지 묵상하고 기도하듯 그림을 그립니다.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에 제 소명을 다하는 거죠.”
71세의 나이에도 꾸준히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는 서양화가 박중식(시몬) 화백은 “매일 그림을 그리는 것이 지치지 않는 비결”이라고 간단히 말한다. 매일 작업실에 앉아있는 박 화백을 지인들은 ‘붓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이라 부른다. 농부가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쉼없이 생명을 키워내듯, 박 화백도 한결같이 붓을 잡고 캔버스를 채워나간다.
작년에 칠순을 맞은 박 화백은 화집을 발간했다. 2014년부터 최근까지의 작품 200여 점을 한 권으로 묶었다.
화집 출판을 기념해 마련한 27번째 개인전도 진행 중이다. 대구시 중구 봉산문화회관 1·2전시관과 예송갤러리에서 11월 18일까지 여는 전시에서는 2017년부터 창작한 작품 10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늘 이렇게 꾸준히 작업을 해온 것은 아닙니다. 25년 전, 대도시에서 달아나듯 농촌으로 들어왔죠. 고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직업도, 화가라는 정체성도 모두 내려놓고 하루하루를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가족이자 화가 동료였던 형의 죽음은 박 화백의 삶을 크게 바꿔놓았다. 그를 지치게 했던 모든 것을 떠나 삶의 거처를 옮겼을 때, 성당 건립 기금 모금에 도움이 필요하다며 근처 본당에서 그를 찾아왔다. 유아세례를 받고 평생 당연하다 여겨온 신앙이었기에,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기존 작품들과 지인의 작품까지 기증 받아 1995년 전시회를 열었고, 그 수익금을 대구 가창성당 건립에 봉헌했다. 그리고 십자가의 길 14처와 제대 뒤편의 성화 등 자신의 작품으로 성당을 꾸미며 붓을 다시 잡았다.
“서양의 것을 따라 그리는 데에 그칠 것이 아니라 동양적인 것, 나만의 것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는 박 화백의 최근작에는 ‘동양적’ 느낌이 가득하다. 따뜻한 색감을 한껏 살려낸 ‘정담’, 돌에 새긴 조각을 평면에 옮겨낸 듯한 ‘달빛가족’ 등 다양한 주제들이 박 화백만의 화풍으로 표현된다.
늘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을 표현한 달과 해태상 등을 그림 속에서 찾아보는 것도 박 화백의 작품을 보는 또 다른 재미다.
박 화백은 “나이 칠순이 넘어서야 그림을 조금은 알 것 같아 지금부터 시작하는 마음”이라면서 “부족하지만 세상에 온기를 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붓을 잡는다”고 전했다. ※문의 053-661-3500 대구 봉산문화회관
이나영 기자 lala@catimes.kr
사진 박원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