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목단강에서
① 상황
흑룡강성에 속한 목단강시는 하얼빈시와 함께 가장 많은 조선족이 생활하는 곳이다. 인근부락을 합치면 약17만명에 이르는 우리 동포들이 모여 산다.
한국으로 돌아오신 임복만 신부님이 지하교회 활동을 계속하던 곳이다. 이곳의 책임자는 조정태(안젤로)회장이다. 이분은 75세의 노인으로 지하교회에서 활동하다 그 한계를 인식하고, 보다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결심으로 1989년 12월24일 정부의 허락을 받아 2백40명의 신자와 함께 애국교회를 시작하였으며, 현재는 목단강시 애국회와 교무회 책임자로 있다. 그 뒤 눈부신 전교활동으로 현재 목단강과 인근 시와 현·향·촌을 두루 다니시며 복음의 씨앗을 뿌려 현재 공소회장이 있는 곳은 71개 공소를 세웠고, 아직 공소회장이 임명되지는 않았지만 설립을 추진 중에 있는 공소는 9개에 이르며 총 신자 수는 2천9백65명에 이른다.
젊은 비서들은 주로 행정적인 문제를 맡아서 처리하고 복음전교는 조 회장과 여 회장이 하고 있다. 아직 초보적인 단계라 기본적인 조직이 미흡하지만 더 큰 원인은 성서와 기도서 성가책 등 기본적인 신앙의 도구가 절대 부족한 것이 원인이다. 처음에는 공과책을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북한 선교회에서 보내온 기도서로 기도를 하고 있다. 곳곳에 개신교가 먼저 시작되었고 많은 집사나 전도사 목사까지 방문하거나 한국으로 초청을 하여 공부를 시키는 상태이나, 천주교회는 성당이나 신부도 없고 교육을 위한 한국 천주교회의 연대가 없기에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한다. 그러나 각 공소 책임자들의 열의는 실로 대단해서 며칠씩 조 회장의 집에 와서 교리와 기본적인 신앙생활 지침을 배워 익히고 각 공소 신자들에게 다시 학습을 시킨다.
② 공소방문
7월14일부터 20일까지 조선족 사람의 차를 빌려서 발 빠른 방문을 했다. 대부분의 공소신자들은 조선에서 온 신부를 매우 신기하게 생각했고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한 공소에서 대략 2~3시간 동안 인사말로 시작해서 기본교리와 미사해설 성서의 중심사상을 쉬지 않고 설명한 뒤 질문을 받는 형태로 진행했다. 7, 80에 가까운 노인들의 눈물어린 신앙고백은 ‘박해받는 나를 따르라’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목단강에 있는 공소를 다 다니진 못했으나 20여 군데의 공소를 들르면서 참으로 많은 감동과 아픔을 느꼈다. 특히 노인들의 박해시대에 겪은 아픔은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내가 공산당에게 묵주와 십자고상을 빼앗기기 싫어 불에 태웠는데 하느님이 용서해 주실는지요?” 공산당이 매일 찾아오기에 귀찮아서 “천주교는 무슨 천주교, 당신이나 믿으시오”라고 대답한 뒤 하느님을 배반했다는 죄의식에 가슴앓이를 하며 40년 동안 고통을 지니고 살아왔다는 노인들의 고백은 신앙의 깊이를 헤아리게 한다.
영산공소를 방문했을 때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다.
공소회장이 불구자들, 알코올로 인해 버림받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천주교 집회를 시작했을 때 많은 이들의 빈정거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공소회장의 노력과 신자들이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나누어 주는 모습에 감동되어 지금은 82명의 식구를 거느린 커다란 공동체가 되었다는 소식은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루카 4,18)는 그리스도의 소명사화를 떠올리게 하였다. 이곳은 대부분 독립군의 후예들로 남다른 자부심과 열정을 갖고 있었다.
강서공소에서도 매우 기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여기는 조 회장과 지서(지서는 공산당원으로 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다)의 관계가 매우 좋은 곳이기에 낮에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모임을 갖고 저녁에는 교실에서 81명의 신자와 함께 미사를 드릴 수 있었다. 근처 공소의 신자들이 미처 연락이 되지 않아 많이 못 오셨는데 자기들의 공소에도 꼭 와달라고 간청하였다. 조 회장이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자”고 하자 그들의 서운한 눈빛은 말할 수 없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마지막 날에는 가장 구석에 있는 공소를 찾았다. 경박호 근처에 위치한 이곳은 아직 정식으로 공소가 형성되지 않은 곳이었다. 여기에서 나는 몇 시간에 걸쳐 공동체를 엮어내는 조 회장의 활동을 간단히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 작업이 끝날 무렵 나는 그들과 격 없는 대화를 나누고 경박호 여행을 한 뒤 늦게 목단강으로 돌아왔다. 알 수 없는 뿌듯함과 아쉬움이 교차되는 시간의 연속이었던 공소 방문 일정이 마무리 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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