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 10,28-31 마태 19,27-30 루카 18,28-30)
부자청년은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예수를 따르지 않았다. 재물에 대한 애착과 주님께 대한 애착은 병립할 수 없다는 것에 청년은 몹시 서글펐다.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성을 보시고 예수께서도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 점을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낙타와 바늘귀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다. 재물에 대한 애착을 간직한 채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숯과 얼음이 공존할 수 없으며 기름이 물에 섞일 수 없는 이치와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말씀을 듣고 베드로도 불안해졌다. 자기 자신도 과연 재물에 대한 애착심을 완전히 버리고 지금 주님을 따르고 있는지 예수의 다짐을 받고 싶었다. 그는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부르심을 받고 그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나선 것을 상기하였을 것이다(마태 4,20 마르 1,18 루카 5,11). 부르심을 받고 베드로와 그 일행은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 예수를 따라 나섰다(마태 4, 22)라고 마태오는 덧붙였다. 그 후 근 2년이 지난 오늘, 같은 부르심을 받고 주님을 따르지 않는 부자청년 때문에 아쉬워하시는 주님을 보고 베드로는 주님을 위로해 드리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주님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고 주님과 함께 있지 않습니까” 베드로는 주님께 대한 충성을 확인받고 싶었다. “저희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말마디를 대부분의 번역들은 ‘그러니 우리는 무엇을 얻게 되겠습니까’라고 번역하여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보상이 무엇이겠느냐고 물어본 것처럼 처리하고 있다. 원문을 자구대로 번역하면 ‘그러니 무엇이 우리에게 있겠습니까’이다. 부자청년이 재물을 버리지 못하고 예수를 떠났던 일과 이 질문에 대한 예수의 대답을 보면 베드로의 이 말마디를 보상이 무엇이겠느냐고 물어 본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듯하다. 그런데 종이 자기 할 일을 다 했다 해서 칭찬을 기대할 권리가 없다고 말씀하신 대목을 생각하면(대목 237 참조) 이 문제는 확실히 집고 넘어 가야 할 대목이다.
베드로를 비롯하여 제자들은 ‘해야 할 일’ 이상의 일을 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따르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렸다. 그러니 보상에 대하여 물어볼 자격이 있다. 풍성한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예수의 대답에서 확실하다. 그런데 이 질문과 대답은 제자들 개인을 위한 보상문제를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예수직후 사도교회가 예수를 믿기 때문에 받는 온갖 불이익 속에서 그들은 참된 보상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증하는 교육용으로 알아 들어야한다. 그들이 예수를 따랐기 때문에 받을 보상은 굉장하다. 이제 새 세상이 올 것이고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과 함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다스리게 (심판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새 세상은 구원의 새 세상, 즉 교회의 창립을 말하고 이스라엘의 12지파는 온 세상을 말한다.
이 세상은 그리스도의 구원 왕국의 시작이며 사도 바오로의 말대로 새 창조의 세상이다(갈라 6,15 : 고린후 5,17). 그들은 주님을 위하여 집 부모 형제자매 자녀 전답을 버렸다. 루카복음에는 아내가 덧붙여졌다. 이 7가지는 인간생활의 모든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위하여(마르코) 하느님 나라에 종사하기 위하여(루카)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는 (마태오) 모든 것을 버리고 종사해야 한다. 그들은 그저 버린 것이 아니다. 그들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버린 것의 백배를 보상받을 것이다. 여기서 주님을 따르기 위해 아내나 자녀들까지도 버려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러나 여기서 의도하는 것은 기존의 결혼생활을 파기하라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결혼을 하지 말고 종사해야 된다는 뜻을 이해해야 한다. 사실 사도 요한을 제외한 다른 사도들은 기혼자였고 사도교회 시대에는 다시 아내와 함께 살았다(고린전 9,5).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마르 10,31: 마태 19,30: 20,16: 루카 13,30)라는 마지막 말은 새 나라에서 종사하는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마지막의 조건이다. 그들은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렸고 가족관계를 포기했는데 그것은 새로운 공동체를 다스리는데 필요하다. 그들은 목숨까지도 버려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첫째 되는 것에 대한 탐욕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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