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 의정부교구 파주 참회와속죄의성당에서 열린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제2회 국제학술대회 중 발표자와 토론자들이 ‘한반도 평화 구축 과정에서 교회의 역할’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모든 곳에 진정한 ‘평화의 문화’를 널리 퍼트려야 한다는 교회의 신념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소장 강주석 신부)가 주관하고 가톨릭신문사(사장 이기수 신부)와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강주석 신부)가 공동주최한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가톨릭의 역할’ 제2회 국제학술대회가 11월 6일 의정부교구 파주 참회와속죄의성당에서 열렸다.
이번 학술대회는 세계 곳곳에서 그리스도 정신을 바탕으로 평화와 화해의 실천을 모색해 온 신앙인들이 한반도의 정의로운 평화 건설 방안을 찾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특히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로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평화를 위한 실마리를 찾는 것에 집중했던 제1회 국제학술대회와 달리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1년 만에 급변한 국제 정세로 새롭게 열린 지평에서 교회는 어떻게 평화의 사도로서 소명을 다할 수 있을지 구체적 실천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주한 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는 축사를 통해 “이 행사는 평화를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주체로서 신앙인들의 핵심적인 역할을 고찰하기 위해 열린 것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학술대회를 공동주최한 가톨릭신문사 사장 이기수 신부 또한 환영사를 통해 “제1회 학술대회가 어둠 속에서 빛을 갈망했던 모임이었다면 이번 제2회 학술대회는 평화라는 빛을 구체적으로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며 “시의적절하게 열린 이번 학술대회가 한반도의 항구한 평화 정착을 위한 청사진을 그리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기조연설: 동북아 평화와 교회의 역할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는 ‘동북아 평화와 교회의 역할’을 주제로 한국전쟁과 분단의 역사, 평화를 위한 한국교회의 활동을 소개했다.
이 주교는 “한국전쟁과 분단 후 갈등은 우리 민족에게 씻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지만, 누구보다 교회가 우리 사회가 집단으로 공유한 아픔을 치유하는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용서 없이 평화의 여정에 참된 진전이 있을 수 없다”면서 “우리 마음 안에서 먼저 종전과 평화협정이 이뤄질 때 정치적 선언과 협정이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북한교회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주교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열 명의 의인만 있으면 멸하지 않겠다는 소돔과 고모라 속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한국교회는 북한에 남아 있는 신자들이 속해 있는 장충성당을 존중하고 신앙 공동체가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 제1회의: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한 정의로운 평화의 원칙
아메리카가톨릭대학교 메리앤 쿠시마노 러브 교수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정의로운 평화’를 주제로 ‘정의로운 평화 접근법’에 대해 소개했다. 러브 교수는 “정의로운 평화의 원칙과 실천 관행은 전쟁을 예방하고 분쟁을 조정하며, 지속 가능한 평화를 건설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면서 이제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정의로운 평화의 원칙과 실천 관행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브 교수가 제시한 정의로운 평화는 세 가지 ‘I’로 대표된다. 아이디어(Ideas), 상상력(Imagination), 기관(Institutions)이다. 올바른 의도와 정의로운 명분을 바탕에 둔 평화를 향한 ‘생각’과, 소외된 자들의 참여와 부당한 착취를 바로잡는 올바른 관계를 기반으로 한 ‘종교적 상상력’이 정의로운 평화 원칙의 핵심이다. 특히 러브 교수는 세 번째 ‘I’(Institutions), 즉 협력이 교착 상태에 처했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종교단체들의 초국가적 네트워크를 강조했다.
러브 교수는 “단편적이고 특정 인물에 대해 좌우되는 것이 아닌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일관된 평화의 문화를 조성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종교기관들이 중심이 된 평화 구축 네트워크”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시간이 지나도 평화가 지속할 수 있도록, 올바른 관계 재건을 위한 정의로운 사회구조를 구축하는 데 한국교회의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제2회의: 동북아시아 평화 건설을 위한 다자간 외교
아일랜드의 외교관으로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오랜 분쟁을 종식한 이른바 ‘성금요일 협정’(Good Friday Agreement) 체결에 ‘평화 특사’로 결정적 공헌을 했던 필립 맥더나 전(前) 아일랜드 대사는 풍부한 외교 경험을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에 대해 제언했다.
맥더나 대사는 ‘아일랜드, 유럽, 그리고 동북아시아 평화 건설에 대한 개인적인 시각’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그리스도교적 신념은 다자간 외교 과정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평화를 향한 비전, 폭력과 불의를 외면할 수 있게 하는 겸손, 합의를 이루고 정당성을 구축하는 깊은 대화는 새로운 연대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그리스도교적 신념을 바탕에 둔 다자간 외교 과정이 동북아시아에서 시작된다면 전쟁은 끝났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줄 수 있으며, 신뢰 구축과 협력을 위한 구체적이고 전향적인 의제(agenda)를 설정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한 앞으로 한반도 평화 건설 과정에서 ‘경제적 신뢰 구축 조치’들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맥더나 대사는 “실질적이고, 점진적인 경제적 조치들은 앞으로 다가올 전환의 핵심에 있으며 재계 지도자들은 경제적 협력과 장기적 평화를 위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다가오는 시대에 발맞춘 장기적이고 진취적인 국제적 대화 기구의 필요성에 대한 강조도 있었다. 맥더나 대사는 “기후변화, 이주, 무역, 군축에 대한 국제적 협상에서는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새로운 프로세스가 필요하다”며 남북화해 과정이 21세기 인류 공동의 평화를 새롭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 제3회의: 한반도 평화 여정 위에 선 그리스도교 신앙
제3회의에서는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백장현(대건 안드레아) 박사의 사회로 한반도 평화 구축 과정에서 교회가 당면한 과제들을 주제로 종합토론이 진행됐다.
전(前) 미국주교회의 의장 윌리엄 스카일스타드 주교는 “평화는 사람들이 함께 걸을 때 올 것”이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인용해 “신앙 공동체로서 우리는 함께 행동하며, 갈등 상황에서 평화를 향할 수 있도록 정치 지도자들의 합의를 독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정교회 모스크바교구의 스테판 이그노프 신부는 “러시아 정교회 또한 한반도에 시작된 평화의 움직임을 환영한다”며 “오직 평화적인 수단을 통해서만 한반도의 문제가 극복되고 안정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러시아 정교회 모스크바교구에는 사제가 되기 위해 수학하는 북한 젊은이들이 있고, 그 중 일부는 사제품을 받고 북한으로 돌아갔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그노프 신부는 “신앙이 한반도의 평화로운 통일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에 대해서도 긴 시간 논의가 이어졌다. 스카일스타드 주교는 “북한교회에 완전히 동의할 수 없더라도 긴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대학교 한국학센터 나가사와 유코 교수 또한 북한교회의 정통성 문제를 언급하며 “정통성 논쟁은 전통적으로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배제하기 위한 수단일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장 변진흥(야고보) 박사는 “북한 사회와 북한교회가 가진 문제는 ‘일종의 질병’이라고 볼 수 있는데 교황님께서는 오히려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해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정다빈 기자 melani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