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죽음을 진정한 생명으로 보시고 제 생명을 진정한 죽음으로 보셔요. 저를 잃은 것을 슬퍼하지 마시고 지난날의 천주를 잃은 것을 원통히 생각하며 그분을 다시 잃을까 두려워하십시오”
박해시대 옥중에 갇혀있는 많은 신자들이 순교를 결심할 용기를 얻기 위해 기억했고 험한 산속의 피난지에서 고통을 받던 교우들이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 사본을 베껴 돌려 읽던 이순이 루갈다의 옥중서한은 세련되고 미려한 문체뿐 아니라 문장 전체에 전통적인 가톨릭 사상이 강하게 표출되고 있어 오늘날 교회사뿐 아니라 국문학사, 한민족 정신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순이 루갈다가 순교하기 직전 유필로 남긴 옥중서간은 현재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와 「루갈다 초남이 일긔 남매」 사본에 두 편의 서간이 남아있다. 초남(草南)은 이 루갈다가 결혼하여 살았던 전주 부근의 마을 이름이다.
「루갈다 초남이 일긔 남매」에는 이 루갈다의 오빠 순교자 이경도(가롤로)의 옥중서한 1통과 이 루갈다의 옥중서한 2통, 막내동생 이경언(바오로)의 옥중수기 1편 등이 수록돼 있다.
달레는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이 루갈다의 옥중서한을 “일찍이 신앙과 순결과 순박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이 이보다 더 아름다운 말을 한 적이 없다”며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교회 최초의 동정부부이며 동정 순교자인 이 루갈다의 옥중서한은 1801년 9월27일 그의 어머니께 보낸 편지와 11월 ‘낭위형쥬젼’ 제목이 붙은 그의 친언니와 큰 올케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어머니께 보낸 이 루갈다의 첫째 편지는 비록 자신이 죽음을 당할지라도 상심하지 말고 천주의 명을 거역하는 일없이 평온하고 침착하게 그분의 뜻을 따르고 천주의 은혜에 감사할 것을 당부 하고 있다.
이 루갈다의 어머니 권씨 부인은 조선이 불교를 배척하고 주자학을 국가이념으로 삼는데 이바지한 권근(權近)의 14대 후손인 권암의 딸로 권철신 일신의 누이동생으로 이윤하와의 슬하에 5남매를 두었고 그 중 이경도 이순이 이경언 세 남매가 순교했다.
이 루갈다가 벽동의 관비로 유배를 가다가 다시 붙잡혀 냉옥에 갇힌 후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관헌의 눈을 피해 언니와 큰 올케에게 틈틈이 쓴 장문의 편지인 ‘낭위형쥬젼’은 이 루갈다의 사상과 영성의 깊이를 엿볼 수 있다.
편지를 통해 아버지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며 죽기까지 따르는 ‘대효’(大孝)를 하느님께 대한 순명으로 제시한 이 루갈다는 “순명이야말로 하느님께 대한 희망과 사랑의 표현이요 신망애 삼덕에서 피어난 결실”임을 강조한다.
이 루갈다는 “육신을 효양함도 좋으나 마음을 효양함이 더욱 좋다”고 피력하고 “천주의 섭리에 순종하고 선을 행하고 공을 세워 열렬한 애덕의 정을 발하는데 항상 노력할 것” 권고한다.
유교의 핵심 사상인 효(孝)를 그리스도교적으로 영성화하여 한국 특유의 대효(大孝)사상을 탄생시킨 이 루갈다의 옥중서한은 “효의 영성화야 말로 오늘의 한국 민족이 하느님께 걸어가야 할 은총의 길을 제시해 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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