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에바그리우스는 345년 지금의 흑해 남부 연안에 속하는 본도 지방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출생지 명을 따서 ‘본도의 에바그리우스’ 또는 ‘에바그리우스 뽄 띠꾸스’(Evagrius Ponticus)라 불린다. 그는 성 바실리우스에게서 독서직을 받고, 379년에는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우스에게서 부제품을 받은 다음 381년에는 제2차 공의회인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 참석하였다.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본 콘스탄티노폴리스 총주교 네크타리우스는 그를 자기 곁에 머물게 하여 신학적 자문을 하게 하였다. 그러나 에바그리우스는 382년에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한 다음 수도생활에 뜻을 두게 되었다. 그리하여 383년에 이집트의 니트리아 계곡에 가서 2년간 생활한 다음, 첼리아 사막에 깊이 들어가 399년에 죽을 때까지 14년간 생활하였다. 첼리아 사막에서 그는 마카리우스와 암모니우스의 지도를 받았으며, 오리게네스 지지자들과 사귀었다. 그의 성덕과 뛰어난 신학적 재능을 높이 평가한 알렉산드리아의 총주교 테오필루스는 그를 주교품에 올리려고 하였지만, 에바그리우스는 이 청을 극구 사양하였다. 그는 당대에 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얼마 동안 성인으로 존경을 받았다. 사실 그는 오리게네스 다음으로 영성, 수덕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립하였으며, 이에 대한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러나 그의 사후 400년을 전후하여 동방교회 안에 오리게네스 논쟁이 일어나자 오리게네스 신학의 추종자라는 이유로 단죄받기 시작하였다. 이 오리게네스 논쟁은 교회 안에서 끈질기게 계속되었으며, 드디어 제5차 공의회(553년)에서 오리게네스와 함께 그도 공적으로 단죄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영성사상은 루피누스, 팔라디우스, 요한 끄리마꾸스, 증거자 막시무스 등에 영향을 주었으며, 4세기부터 15세기까지, 또 20세기에는 에바그리우스 신비주의 학파가 성행할 정도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저서
안티레티코스 : ‘처방’(處方)이라는 뜻의 이 저서는 수도생활에 방해가 되는 8가지 주요 악습들 즉 탐식, 음욕, 탐욕, 낙담, 분노, 태만, 허영, 교만 등이 생겨나는 원인들을 규명하고, 이를 처방하기 위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모나코스 : ‘수도승’이란 뜻의 이 저서는 두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첫째 부분은 못 배운 단순한 은수자들을 위한 100가지 금언(金言)을 제시하고, 둘째 부분은 지적인 은수자들을 위한‥Tel 가지 금언들을 제시하고 있다.
남녀 수도승들의 거울: 이 저서에는 남녀 수도승들의 생활에 지침이 되는 사항들이 50개 문항으로 제시되어 있다.
지적 문제들 : 이 저서에서는 교의(敎義)와 수덕에 관한 여섯 가지 주요 주제들이 600개의 문항으로 제시되어 있는데, 각 주제에는 100개의 항목으로 하여 모두 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00개 항목씩 묶어 저술하는 방법은 후에 동방교회 안에서 ‘centuria’라 불리는 하나의 문학유형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성서 주석서들 : 에바그리우스는 오리게네스를 본받아 많은 주석서들을 남겼는데, 대부분 단편들만 남아있다. 구약성서에 관해서는 「시편 주석서」, 「잠언 주석서」, 「욥기 주석서」 등이 있고, 신약성서에 관해서는 「루가 복음 주석서」가 있다. 그 외 그는 「민수기 주석서」, 「열왕기 주석서」, 「아가 주석서」 등을 저술한 것으로 보인다.
서간들 : 66개의 그의 서간들이 전해오는데, 대부분 매우 짧은 편이며, 수신인이 명시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만났던 성녀 멜라니아에게 보낸 서간, 체사리아의 수도자들에게 보낸 서간, 성 바실리우스에 보낸 서간 등은 수신인이 명시되어 있다.
영성사상
오리게네스 영성사상에 깊이 영향을 받은 에바그리우스는 스토아 철학적인 요소를 가미시켜 구체적이고 엄격한 수덕체계를 세웠다. 그의 수덕체계에 나타나 있는 심리분석은 가히 놀랄 만하다. 그는 죄와 악습에 물들어 있는 인간이 하느님께 되돌아가는 길을 두 단계 즉 수덕실천적 단계와 관상적 단계로 나누어 제시한다. 수덕실천적 단계는 온갖 악습과 욕정에서 영혼을 정화시키는 것으로서 에바그리우스는 여덟 가지 대표적인 악습들 즉 탐식, 음욕, 탐욕, 낙담, 분노, 태만, 허영, 교만을 열거한다. 이 여덟 가지 욕정 또는 악습은 여덟 약령들의 충동질에 의해 생기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처방 역시 각기 다르며, 가장 좋은 처방은 성서의 말씀들이다. 악습들에서 해방된 수도승은 관상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데, 여기에 두 과정이 있다. 먼저 ‘자연적 명상’ 또는 ‘신체적 명상’을 통해 정신을 집중시키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러한 연습을 거처 점차 ‘신의 명상’ 상태로 들어가는데, 이때 수도승은 무한하며 어떠한 형태도 지니고 있지 않은 하느님 앞에 자기의 정신을 단순화 하여, 하느님의 빛 자체를 보게 된다. 그래서 기도시간에 명상에 깊이 잠긴 영혼은 성삼의 빛이 빛나는 하늘을 닮게 되며, 그의 정신은 성삼위를 직접 뵙게 됨으로써 신비체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에바그리우스의 이러한 관상적 체험 이론은 불교에서 행하는 선(禪) 명상의 과정과 비슷한 면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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