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한 지 10여 년이 넘는 정 베드로씨는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읽은 서적으로 「손자병법」 뿐이라고 털어놓았다. 직장생활에 쫓겨 책 읽을 시간도 없으려니와 조금 여유 시간이 생기더라도 집에서 쉬거나 가족의 성화에 못 이겨 야외나들이 하기에 바빠 책을 잡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간혹 흥미 있는 기사가 실린 잡지를 뒤적이거나 업무와 관련해 어쩔 수 없이 읽는 전문서적 몇 권을 제외하고 그가 읽어본 것은 처세술에 관한 책이 고작이었다.
올해 대학입시 수능시험을 치룬 이 안나양(18세)은 국어시험에 교과서에 없는 예문이 나와 무척 당황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에 관해서는 작품의 배정, 소재, 주제에 관해 달달 외울 정도로 수준급(?)이지만 정작 교과서 밖의 작품에는 손도 대지 못할 정도로 무지한게 우리나라 고교생들의 현수소다. 평소 교과서 이외의 다른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성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갤럽조사 연구소가 밝힌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가운데 한 달 동안 주간지 월간지 이외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은 사람이 61%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책 안 읽는 비율은 더욱 높아져 20대는 38%, 30대는 57%인 반면 40대는 70%, 50대는 87%가 매달 한 권의 책도 읽지 않고 살아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낄 수 없음이 명백하게 드러났고, 급기야 세계에서 유래 없는 ‘책의 해’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 눈을 우리 교회 내 신자들에게 돌려보자.
가톨릭 신앙생활 연구소(소장 신치구)가 지난 4월에서 5월까지 실시한 ‘평신도 신앙생활 실태’에 관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92년 한 해 동안 11권에서 20권의 종교서적을 읽은 신자가 43.1%, 21권 이상이 5.8%로 나타났고, 무응답자 47.6%가 독서를 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일반사회인(61%)보다 가톨릭 신자들의 독서율이 조금은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여전히 가톨릭 신자들의 절반가량이 일년내내 한 권의 책도 보지 않고 있어 심각한 실정이다. 책을 많이 읽는 일본과 독일 민족이 현대세계에서 단연 돋보이고 있는 것은 높은 독서율과 무관하지 않다고 볼 때 우리 민족, 특히 가톨릭 신자들의 낮은 독서율은 자칫 기복신앙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실상 ‘책의 해’가 선포된 이후, 그 결과야 어떻든 범사회적으로 책을 읽게 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돼왔으나 가톨릭교회는 지난 5월 홍보주일에 가톨릭 매스컴 위원회와 가톨릭 신문출판인 협의회(UCIP)가 서울 명동성당에서 개최한 도서전이 전부(?)일 뿐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높다.
간간이 본당 차원의 책읽기 대회, 독서감상문 쓰기 그리고 교회출판사 자체행사 등이 있었으나 범교회적이고, 지속적인 책읽기운동을 펼치지 못한 것이 현실. 더군다나 교회의 지도자들이 신자들에게 책읽기를 권장하거나, 사회에서 하는 ‘책의 해’ 행사에 관해 관심을 갖고 이를 본당 사목차원에서 이끌 수 있는 의식문제도 의문점이 많다는 게 일반적 견해여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보지않고 믿으라’는 식의 신앙관보다는 신자들 스스로가 성서와 관련 종교서적, 교양서적 등을 통해 신앙심을 키우도록 일선 사목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제들 스스로가 바쁜 사목활동 속에서도 책을 읽는 모습을 신자들에게 보이고, 책과 관련되는 사목적 배려가 뒤따라야 한다.
또 성당의 공간을 지역주민들을 위한 독서실로 개방, 주일학교를 이용 적어도 가톨릭 신자라면 종교서적만이라도 읽게 할 수 있는 노력을 각 본당 차원에서 해야 한다.
아울러 성가정을 강조하는 가톨릭교회가 기도하는 성가정과 함께 부모와 자녀들이 책을 함께 읽고 나누는 가정에 대한 강조도 정책적으로 해야한다는 게 일반 신자들의 바램이다. 왜냐하면 부모와 자녀들이 책을 매체로 신앙과 삶에 대한 자연스런 나눔이 성가정을 이루는데 바탕이 됨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가톨릭교회도 신자들에게 책을 읽게 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사회적 기류에 편승, 책읽기 운동을 범교회적 차원에서 해야 한다는 요청을 받고 있다.
교회 외적으로는 93 세계 박람회(EXPO)를 개최하는 등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열에 끼기 위해 힘찬 행진을 하고 있고, 내적으로는 2천년대 민족복음화란 거대한 과업을 실현키 위해 온 교회 공동체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의 근원적인 힘은 책 읽기에서 온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이제 교회 구성원 모두가 깨달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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