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1,1-6)
예수께서 죽은 친구 라자로를 소생시킨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때 예수의 일행은 유대아 지방 밖 요르단강 계곡을 따라 여행하고 계셨다. 이 여행은 예루살렘 성전 봉헌절(겨울 요한 10, 22)과 봄에 있을 과월절(요한 11,55) 사이에 예수를 음해하려는 유대아인들을 피하여 요르단강 건너편을 편력하던 여행길이었고 아마도 최후 목적지는 십자가가 기다리는 예루살렘이었을 것이다.
이야기는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작은 동네 베타니아라는 곳에서 시작된다. 이 베타니아는 예수의 친구 마르타와 그의 누이 동생 마리아 그리고 이 자매들의 오빠 라자로가 사는 유대아의 동네였고 예수와 그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 행사에 참석하실 때 머무시던 곳이다. (마태 21,17). 예수께서 전교여행을 하시며 그 행보가 닿았던 곳 중에서 베타니아라는 곳이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요르단강 건너편의 베타니아이고(요한 1,28 : 10,41)또 한 곳이 지금 이야기의 현장이 되는 마르타와 마리아가 사는 베타니아이다. 전자는 아나니야의 집이 그 원명칭이었던 것으로(느헤 11,32) ‘증언하는 집’이란 뜻이다. 세례자 요한이 구세주 예수를 이곳에서 증언한 것과 후자 베타니아는 예루살렘에서 오마일 정도 떨어진 곳으로(요한 11,18) 오늘날에는 ‘엘아자리야’(아자리야는 라자로에서 나온 발음)라고 하는 동네이다.
마르타와 그 자매 마리아 그리고 그 오빠 라자로는 주님이 사랑하고 계셨던 한 가족으로(요한 11,5)주님이 그 집에 자주 들러 쉬시던 한 가족이다. (루카 10,38-42)이 자매에 대해서는 대목 179에서 자세히 말한대로 주님 일행을 물심양면으로 보살펴 드렸고 또 자기 집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예수님의 은혜를 청하여 받기로 하였다. 특히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아 드린 여자이며(마르 14,3) 주님께서 집에 오시면 주님의 구원의 말씀을 들으며 명상에 잠기던 여자였다.
이렇게 친밀한 관계에 있던 집안에 우환이 있었다. 이들 자매의 남동생 라자로가 중병에 걸려 살 희망이 없어 보였다. 이 자매들은 주님이 어디에 계시는지를 알고 있은 듯 곧바로 주님께 전갈을 보냈다. 빨리 오셔서 손을 써 주시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아마도 자매의 아버지 혹은 언니 마르타의 남편 시몬(대목 179 참조)의 나병 치유의 기적을 생각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기별을 받고서 이틀 동안 거기에 머물러 계시다가 사흘만에야 마르타의 집으로 향하셨다. 예수께서 마르타의 집에 도착하였을 때는 라자로가 죽은 지 나흘 후였다고 한 것을 보면(요한 11,17) 자매들이 기별을 보내는데 하루, 예수께서 그 집으로 가시는데 하루가 걸린 셈이다. 그리고 라자로는 누나가 예수께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보내고 나서 곧 죽었다.
하여튼 예수께서는 기별을 받드시고 제자들에게 느긋하게 말씀하셨다 “그 병은 죽을병이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하느님의 아들로 그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게 웬 말씀일까. 무슨 뜻일까. 얼마전에 소경을 고쳐주실 때에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오직 이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요한 9,3). 여기서 예수님의 복음신학이 드러난다. 즉 예수께서는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의 정도에 따라 은혜를 베푸신다는 뜻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죽기 전에 병의 치유라는 은혜를 주시지만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죽음이라는 고통을 받은 후에 죽음을 넘는 생명을 주시며 그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라자로’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된다.
이 사상은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의 영광을 받은 데서 드러난다.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은 어둠을 비추는 창조에서 드러났고 하느님의 사랑은 죽음을 이기는 인간부활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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