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1,17-27)
오늘의 대목은 마르타와의 대화에서 예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는 요한복음서의 주제가 다루어진다. 이윽고 예수께서는 하룻길을 걸어 마르타 자매의 동네 베타니아에 당도하였는데 제자들은 역시 불안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라갔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러 보니 라자로가 무덤에 묻힌 지 이미 나흘이나 지난 뒤였다’고 했는데 그곳이 무덤이었는지 아니면 마르타의 집이었는지 또는 집에 이르기 전 얼마 떨어져 있는 곳인지 알 수 없다.
30절에 보면 “예수께서는 아직 동네에 들어가지 않으시고 마르타가 마중 나왔던 곳에 그냥 계셨다”고 했고 34절에는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고 물으신 것으로 보아 예수께서 이르렀던 ‘그곳은 동네 밖 어떤 곳임이 확실하다. 그런데 17절에 “예수께서 그곳에 도착했을 때 라자로가 무덤에 묻힌 지 사흘이 된 것을 알았다”고 한데서 라자로가 죽은 지 사흘이 된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마르타 자매의 집에는 문상 온 유대아인들이 있었고 예수가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던 이 자매의 친지들이 유대아인들과의 충돌을 염려하여 미리 동네 밖에까지 나아가 이 소식을 알려주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4일전에 라자로의 중병 전갈을 받았을 때 “그는 죽은 것이 아니고 잠자고 있다”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는데 그때 이미 예수께서는 라자로가 죽은 것을 알고 있었다. 여기서 베타니아에 대한 지리적인 상세한 묘사가 되어 있는 것은 예루살렘에서 많은 유대아인들이 쉽게 문상하러 올 수 있었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것이었고 유대아인들의 문상은 예수의 당도와 마주치면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유대아인들과 대결하게 될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말로 오리밖에 안 되는 거리라고 한 것은 원문의 5스타리온의 번역으로 1스타리온은 1백85m이고 5스타리온은 2.75km의 거리이니 오리라고 번역한 것은 거의 같은 거리이다. 하여튼 베타니아는 예루살렘에서 올리브 산으로 가는 길에 오리쯤 되는 곳에 위치한다. 예수께서 아직 동네 밖에 이르렀을 즈음에 마르타는 이 소식을 듣고 이곳까지 예수를 마중 나왔다. 아마 제자 중 한 사람이 먼저 뛰어가서 마르타에게 예수의 왕림을 알렸을 것이다. 마르타는 주부로서 집안일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며 분주한 여자였고 그 동생 마리아는 고요한 성격의 여자였다(루카 10,39-40 참조).
마르타는 예수를 뵙자 자기 오빠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전한다. 랍비들은 사람이 마지막 숨을 넘기면 영혼이 사흘 동안 육체주위를 빙빙 돌다가 나흘이 지나면 이제는 영영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가르치고 있었다.
마르타도 이 가르침에 따라 자기 오빠가 이제는 가망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마르타는 예수의 어머니 성 마리아처럼 예수께 대한 신뢰심이 굳었다. ‘주님이 하느님께 구하시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이루어 주실 줄 압니다’ 이 말은 가나잔치에서 성모께서 아들 예수께 기적을 청하고 나서 과방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라’(요한 2,5)라고 한 말과 비슷한 신뢰심을 나타낸 말이다. “네 오빠는 살아날 것이다”라는 예수의 대답을 마르타는 유대아인들의 민중신학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마지막 날에 죽은 자들이 부활한다는 것은 기원전 2세기쯤부터 유대아의 골수계층인 바리사이파들이 믿고 있던 교리이다.(다니 12,2). 그들의 유명한 18기도 중 제2기도는 이렇게 기도한다. “주여 당신은 죽은 이에게 생명을 도로 주시니 영원히 전능하신 분입니다” 이 민중신학적 신앙이 바로 예수님 자신 안에 현실적으로 있다는 중요한 가르침을 여기서 표명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이다”라는 표현은 요한 신학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표현하는 속성으로 그 유명한 7가지 ‘에고 에이미’(나는 …이다) 중 하나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대목 108 참조)
그런데 이 부활과 생명은 모든 사람에게 ‘믿음’으로 실현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마르타에게 이것을 믿느냐고 재촉하셨다. 즉 예수가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믿느냐는 뜻이다. 마르타는 올바른 초대교회의 신앙을 고백한다. “주님은 정녕 메시아이며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이 신앙고백은 초대교회의 기본적인 믿음의 신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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