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환자들의 어머니’ 하이디 부라우크만 수녀(51). 나환우 결핵환자들의 고단한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는데 일생을 바쳐온 그녀의 삶은 그가 지나온 흔적 곳곳에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처럼 피어 있다.
30여 년간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물을 쏟아온 그의 따뜻한 영혼은 그를 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좀처럼 접하기 힘든 평안함을 느끼게 한다.
독일의 산간지방 ‘멘덴’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하이디 수녀가 머나먼 이국땅 한국에 삶의 닻을 내린 것은 한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66년 8월 23일, 그녀 나이 23세 때이다. 62년 아일랜드의 성 골롬반 선교수녀회에 입회, 4년간 수도생활을 하며 고교교사로 일하던 하이디 수녀에게 한국파견은 급작스런 일이었다.
“영어가 통하리라 생각했던 것부터가 잘못이었죠. 그전까지 한국에 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말이 막혀 애를 태우던 하이디 수녀는 이때부터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봉사하자’고 다짐했다.
청계천 ‘하꼬방’ 아이들을 돌보며 메리놀 간호학교를 1년만에 수료한 그녀는 가톨릭의대에 진학, 만학도의 길에 들어섬으로써 의료봉사의 삶을 준비하게 된다. 의대에 다니는 동안 주말이면 라자로마을을 찾아 봉사했다. 말이 ‘마을’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손·발이 떨어져 나가고 짓이겨진 육체, 구멍만 남은 얼굴들. 그러나 이때의 경험은 의학공부에 더욱 정진케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75년 졸업 후 아일랜드·필리핀·홍콩 등지에서 결핵환자들을 돌본 하이디 수녀는 79년 다시 한국에 입국, 삼척 성요셉병원에서 본격적인 의료활동을 전개한다.
하이디 수녀가 원주에 정착한 것은 “결핵환자들을 위한 사업을 해달라”는 지학순 주교(전 원주교구장·93년 3월 선종)의 간곡한 요청 때문. 지 주교는 필요하다면 수도회 설립까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81년 11월 하이디 수녀는 원주 가톨릭센터 내에 방 하나를 얻어 ‘가톨릭의원’이란 이름으로 진료소를 개설하고 결핵환자들을 일일이 찾아 나섰다. 당시만 해도 원주엔 아파트 한 채 없었다. 흙으로 만든 빈집들이 즐비했고 어딜 가든 걸인들과 결핵환자들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진료소를 찾는 환자들은 계속 늘어나, 86년 10월 지금의 가톨릭병원을 신축하기에 이르렀고 이 병원은 현재 원주지역 결핵전문 의료기관으로 지정돼 있다.
하이디 수녀는 82년 초 빈집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바오로 할아버지(89년 사망)를 발견, 보호하기 시작한 것이 노인요양원 사업으로 발전해 지금은 원주 제천 대전 등지에 4군데 노인요양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결핵요양원(경기도 금천)과 장애인 재활원 ‘사랑의 집’을 운영 중이다.
83년 9월 지학순 주교의 설립 허가로 3명의 수녀가 모여 시작한 ‘프란치스코 전교 봉사수녀회’는 지난 11월9일자로 교황청의 인가를 받았다. “지금 하는 사업들이 하느님이 원하시는 일임을 알려주신 것 같아 기쁘다”는 그는 지난 91년 결핵퇴치 사업과 사회봉사 사업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결핵협회가 주는 복십자 대상 문화부문상을 수상했고, 88년엔 춘천 MBC제정 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하이디 수녀는 그러나 이런 모든 사업들이 미리 계획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결핵퇴치 사업이 주목적이었지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런 저런 일들을 벌여나간 거지요. 모두가 하느님 당신이 뜻하시는 일에 우리를 쓰시려는 큰 축복이었다고 느껴집니다”
‘금발의 하이디’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하이디 부라우크만 수녀. 인터뷰 중에도 환자가 찾는다며 급히 달려 나가는 그의 모습에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을 향한 진한 사랑이 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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