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계유년도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 거리에서는 성급한 캐롤송도 간간이 흘러나오곤 한다. 이맘때면 우리 주위의 가난한 이들, 불쌍한 이웃들을 위한 각종 자선행사들이 때를 만난 듯 펼쳐지기도 한다.
구세주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시기를 보내고 있는 가톨릭교회는 대림 제3주일을 ‘자선주일’로 정해, 특별히 사회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기억하고 있다.
자선주일을 맞아 93년 한 해 동안 가톨릭신문 ‘호소’란을 통해 소개된 주인공들을 한곳에 모아 보았다. 또 그들의 최근 근황과 아울러 그들에게 쏟아진 각계의 온정도 소개한다. 이런 시도는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는 우리 이웃들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며, 또한 한 해 동안 ‘사랑의 고리’ 역할에 최선을 다해 온 가톨릭신문의 지난 1년 활동을 결산해보는 의미도 담고 있다.
갈수록 자선행위가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들이 우리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가운데 93년 한 해는 도움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았고, 이들에 대한 온정의 손길도 어느 때 못지않게 이어졌던 한 해로 기억된다. 지난 1년 동안 ‘호소’란에 등장했던 인물은 모두 15명. 한 달에 한명이 조금 넘는 정도다. 물론 호소란을 통해 도움을 요청한 경우 말고도 나환우 정착촌 ‘거창 성모원’(8월29일자 14면 보도)처럼 각 기관이나 단체 등에서 어려움을 호소해온 경우까지 합하면 수십건에 이른다.
호소란을 통해 보도된 사람들은 거의가 질병ㆍ사고로 인해 육체적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이었고, 한시바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절박한 상황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이 가톨릭신문의 호소란을 찾게되는 경위도 다양했다. 많은 경우 주변의 보호자 혹은 직·간접적으로 이들을 돕고 있던 이들의 주선으로 신문사를 찾았다. 빈첸시오회나 본당의 레지오 관계자, 마을 주민들이 그 예다. 또 입원중에 병원사회사업과 관계자의 도움으로 소개되는 경우도 있었다. 5월23일자에 나왔던 김선길씨(성남시)는 부인이 파출부로 일하던 집 주인의 주선으로 신문사에 인도된 독특한 경우다.
이 란에 등장했던 이들이 갖고 있던 질병 또한 만성신부전증(신장염), 백혈병, 골수암, 뇌성마비, 자궁경부암, 호흡기 면역결핍증 등 다양했다. 그러나 이 모두가 장기적인 치료를 요구하고 있고, 그에 따른 경비 역시 엄청나게 비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이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취재기자를 포함한 전 직원들은 아직 꺼지지 않은 우리 사회의 따스함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를 위해서라기보다 고아가 될 두 아이가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다”며 살려달라고 호소했던 자궁경부암 환자 오명옥(엘리사벳·서울 길음동 본당)씨(6월20일자 보도). 85년 남편을 잃고 외로움과 설움을 이를 악물고 참으며 두 아이를 뒷바라지 하던 오씨는 “아이들에게만은 자신의 불행한 인생역정을 물려줄 수 없다”고 울먹이며 취재진을 맞았다. 오씨에 관한 보도가 나간 지 한 달이 채 못 된 7월18일 본사는 그때까지 모은 성금 1천4백만원을 오씨에게 전달했다. 그녀는 현재까지 원자력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
빈첸시오 전국이사회를 통해 신문사를 찾은 소병옥씨(전남 목포·9월26일자 보도)는 20세 젊은 나이에 만성신부전증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8평 남짓한 방에 7명의 식구가 살던 소씨 가족은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거동을 못하는데다 누나마저 1급 시각장애자여서 수술비는 엄두도 못내는 형편이었다. 소씨에게도 보도 이후 1천2백여만 원의 성금이 답지, 내년 초에 수술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그는 현재 목포 성골롬반 병원에 입원중이다.
뇌성마비 중복장애아인 송용덕(10세·4월18일자 보도)군. 성장정지 후유증까지 겹쳐 가족들의 애간장을 태우던 송군은 신문사를 통해 전달받은 성금 5백4만원으로 성장 호르몬을 꾸준히 투여, 그동안 10cm가량 키가 컸다고 신문사에 알려왔다.
중국교포로 한국에 들어와 화상을 입고 입원 중이던 박영희(가명·1월31일자 보도)씨는 도움을 줄 연고자 한 명 없는 딱한 처지였다. 남편과 함께 식당,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성실히 살던 그녀에겐 지난겨울이 유난히 춥게 느껴졌었다. 그러나 각계에서 보내온 성금 5백여만 원으로 피부 이식수술을 무난히 마친 박씨는 지난 3월20일 인천항을 통해 중국으로 돌아갔다. 박씨는 귀향길에 “고국의 동포들, 특히 가톨릭신문 독자들의 따스한 정성에 깊이 감사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 밖에도 골수암으로 왼쪽 팔을 절단했던 이시욱(실바노·17세·대구 신천본당)군 백혈병으로 아직 투병중인 정유미(7세)양, 뺑소니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마경렬(비오·29세·인천 주안 5동본당)씨, 만성신부전증으로 도움을 호소한 김선길씨와 김정숙(막달레나·서울 연희동본당)씨, 백혈병으로 사경을 헤매던 장동명(안드레아·광주 염주동본당)씨, 작년 10월 보도된 이후 지금까지 성금이 끊이지 않고 있는 백미숙(요안나·서울 신림동본당)씨 등에게도 적게는 2백만원에서 2천만원 가까운 성금이 답지해 우리 사회의 훈훈한 정을 실감케 했다.
그러나 만성신장염으로 신장이식 수술비와 신장 제공자를 애타게 찾던 조명화(18세)양과 급성 백혈병으로 고통받던 이혜선(글로리아·13세)양의 사망 소식은 우리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특히 이양는 본사가 모은 1천2백만원의 성금을 전해주는 날 오후 끝내 짧은 그녀의 생을 마감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어린 혜선이를 살려 주세요”라고 매달리던 어머니의 모습이 “조금만 일찍 도움을 청했더라면”하는 아쉬움과 함께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았다.
사람들은 “자선이 동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 다리 펴고 누울 방 한 칸 없는 이들에게, 싸늘히 죽어가는 자식을 앞에 두고도 치료비가 없어 절망하는 부모에게 이런 것들은 다 구차한 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가톨릭신문은 지난 한 해 동안 이들을 취재 보도하면서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은 바로 우리 주변에, 우리 가까이 있음을 확인했다. 또 그들이 아무것도 아닌 우리 자신들의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도움이 필요한 더 많은 이들을 담아내지 못한 데에 아쉬움을 느낀다. 아울러 가톨릭신문은 앞으로도 계속 ‘사랑의 고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나갈 것이다. 이 역할이야말로 가톨릭신문이 할 수 있는 또 해야 하는 본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빌려 그동안 십시일반으로 이웃돕기에 참여해준 많은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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