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교회 문화운동 중에서 가장 커다란 관심을 모았던 것은 바로 ‘교회미술의 쇄신’의 기치를 들고 일어선 서울대교구 가톨릭 미술가회(회장 최종태, 지도 장익 신부)의 활동이다.
‘교회미술 이대로는 안 된다’는 반성아래 일어난 가톨릭 미술가회의 움직임은 단순히 교회미술에 대한 쇄신만이 아니라 늘 있어왔지만 결코 큰 소리로 외쳐지지 않았던 교외문화의 척박한 현실을 전반적으로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지게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매우 크다.
미술은 물론 문학, 음악, 연극, 영화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활동이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과연 한국 가톨릭교회만의 문화가 있는가’의 문제는 늘 꼬리를 물고 따라 다녔다. 교회안의 예술가들에 의해 이러한 문제가 종종 표출되기도 했지만 그 목소리는 너무도 미약했었다.
따라서 가톨릭 미술가회가 올해 터뜨린 ‘교회미술 쇄신’의 목소리는 한국교회 문화가 가진 일련의 위기를 교회 구성원들에게 주지시키고 토착화와 발전을 함께 모색하자는 즉, 교회문화가 가진 거대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 셈이 됐다.
값비싼 외제 성물의 범람, 무분별한 외국 성당의 모방, 영혼성과 신성을 표현하는 예술적, 문화적 공간이기보다는 기능적인 요소만이 강조되는 오늘의 교회건축 현실이 쇄신되기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교회 구성원들이 교회미술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부터임”이 미술가회의 주장이었다.
이러한 교회문화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바로 교육과 관련되는 것으로 교회가 교회의 위대한 문화적 전통을 발전시키고 우리의 심성에 맞게 토착화시킬 수 있도록 교회 구성원들에게 풍부한 교육을 실시, ‘안목’을 갖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올해처럼 ‘책’이라는 문화매체가 교회 안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교회 구성원들에게 인식의 재고를 가져다 준 시기도 드물었을 것이다.
‘93 책의 해’를 맞아 각계각층에서 높아진 ‘책읽기 운동’은 교회 안에도 확산됐다. “책 안 읽기로 유명한 가톨릭 신자들에게 이번 기회를 이용해 보자”는 교회 안의 목소리는 5월 홍보주일에 명동성당에서 열린 ‘도서전’을 비롯, 독후감쓰기 대회 등 본당 주최의 다양한 행사로 이어지는 듯 했으나 한 해의 중반을 넘어서자 그 열기가 한풀 꺾였다. 한 해를 총결산해 보면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독서라는 것이 한 해 책을 읽자는 모토를 걸어 놓음으로써 활성화 될 문제는 아니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계획과 목표아래 본당 사목차원에서, 교회출판사 등에서 신앙서적에 끊임없는 신자들의 손길이 닿도록 다양한 기획의 실시가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올해 교회문화계의 또 하나의 큰 소식은 한국 천주교 2백주년을 기념, 84년부터 계획해왔던‘가톨릭 음악원’이 10년만에 완공돼 교회음악의 연주와 교육에 한 몫을 담당하게 됐다는 것이다.
전문연주홀이 전무했던 교회 안에 5백석 규모의 전문공연장이 마련된 것은 위축돼 왔던 교회 안 연주활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게 됐다.
한국교회 사상 두 번째 신부였으며 ‘한국에서 최초로 풍금을 칠 줄 알았던’ 최양업 신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름 붙여진 전문연주장 ‘최양업 신부 기념관’은 전례음악 연주뿐만 아니라 국악, 연극, 세미나 등 각종 문화활동에 필요한 장소로도 쓰일 예정이다.
세계교회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가톨릭 음악원은 교수실, 강의실, 도서관, 소강당, 구내식당,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된 연주홀, 각 연습실마다 피아노를 배치하는 등 총 3백여 명이 공부할 수 있는 영재음악교육의 전문기관으로서, 우리의 심성에 맞는 전례음악과 세계 전례음악을 연구하는 기관으로서 그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또한 올해 교회 안에는 역사적 인물들의 신앙인으로서 삶과 행적을 재고하는 세미나가 다수 열렸다는 점도 하나의 특징을 나타나고 있다.
교회 안팎의 커다란 관심 속에 열렸던 ‘안중근(도마) 학술 심포지엄’과 ‘제1회 다산 현양문화제’ 등이 그것이다.
한국 가톨릭 문화사 연구회(회장 노길명)가 주최하고 본보의 적극적인 후원아래 8월21일 오후 6시 서울 가톨릭교회 신학원에서 개최된 ‘안중근 학술 심포지엄’은 안의사의 신앙과 민족운동에 대한 재이해와 학술적 구명작업을 통해 민족복음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 특히 일제수탈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암살해 일제치하의 제도교회에서 단죄받았던 안의사는 이날 공식 추모미사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공개사과로 84년만에 의거의 정당성을 인정받게 됐다. 이것은 일제치하의 한국 가톨릭교회가 범한 과오를 사과하고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교회사의 일대 전환점으로 평가됐다.
또 서울대교구 제5지구 사제단과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의 주최로 10월18일 경기도 남양주군 마재 다산유적지에서 개최된 ‘제1회 다산 현양문화제’는 “배교의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가톨릭 신자로서 순교의 삶을 살았던 다산”을 추모했다.
이번 문화제에서는 다산의 신관과 영성을 종합정리, 다산의 서학사상을 통해 한국 가톨릭 신학의 토착화를 재조명하는 새로운 접근을 시도, 호평을 받기도 했다.
과학과 신앙의 올바른 관례를 정립한 ‘대전엑스포 바티칸관’도 올해 가톨릭 문화선교에 한 몫을 단단히 해냈다.
‘인류의 빛’을 주제로 정하고 ‘진보와 친교를 위하여’를 부제로 지난 8월6일 축복식을 갖고 7월부터 공개된 바티칸관은 1백50만명에 육박하는 인원이 관람, 대성공을 거뒀다. 바티칸관 안에 전시된 갈릴레오의 망원경, 바티칸 천문대 망원경은 물론 라파엘로의 성화와 미켈란젤로의 조작 피에타상 등은 관람객들에게 가톨릭 문화의 찬란한 한 일면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사본이여서 큰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크고 작은 연주, 공연, 전시 등이 잇따랐던 올 해 문화계를 결산하면서 특별히 공통적인 의견으로 대두된 것은 교회의 문화운동을 주관하고 지원할 ‘제도적 장치’가 절실히 요청된다는 점이다.
가톨릭 미술가회도 교회미술의 쇄신을 위해서는 이러한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대부분 영세한 교회안의 공연단체들도 문화선교라는 목적아래 일관성을 갖고 교회 문화활동을 보다 풍요롭고 다양하게 실시하고 관장할 교회안의 기구가 마련되거나 기존의 문화위원회가 활성화됐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
구심점의 마련이야말로 오늘의 교회 문화활동에 있어 가장 필요한 요소로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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