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유년 93년 한 해도 벌써 저물어가고 있다. 제45차 세비아 세계 성체대회와 교황회칙 「인간생명」 반포 25주년, 가톨릭 새교리서 반포 등 굵직한 세계 교회사 안에서 궤적을 같이해온 한국 가톨릭교회 93년 한 해를 결산해본다. 올 한 해 동안 한국 가톨릭교회가 추진해온 인권활동을 시작으로 사회복지운동, 생명과 환경문제, 문화문제 등 총 4회에 걸쳐 다룰 93년도 교회 결산은 갑술년 새해의 교회 사목방향을 미리 조명해볼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93년도 한 해 동안의 인권활동은 복음화 사업과 연계,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고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의 보편적 권리를 신장시켜 나가는데 집중됐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올 한 해 동안의 인권활동에 있어 가장 돋보이는 점은 지엽적이고 단편적인 고발, 저항운동에서 탈피, 민족적 공감대속에서 초종파적, 탈종교적, 탈지엽적 국민운동으로 승화, 발전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한국 가톨릭교회가 주최가 돼 성사시킨 ‘한베트남 직업훈련원 범종교인 후원사업회’ 발족과 ‘외국인 근로자 처우개선’ ‘정신대 진상규명 및 배상시위’ 동참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또한 ‘윤금이양 살해사건’과 ‘가정폭력문제’ ‘재소자 처우개선활동’ 등 힘없고 소외된 이들의 권리 신장을 위한 적극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실천사업을 전개해 인간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성숙한 면모를 보여줬다는 평을 받고 있다.
93년도 인권활동
93년도 한국 가톨릭교회의 인권활동 방향과 정신적 기반은 새해 첫날에 발표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에서 찾을 수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제시한 ‘연대성 안에서의 정의구현과 공동선 실현’이라는 세계 평화의 대전제가 바로 올 한 해 동안 한국 가톨릭교회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상대로 실천해왔던 인권운동의 지표였다.
한국 가톨릭교회가 올 한 해 동안 우리나라 인권사에 있어 가장 큰 족적을 남긴 것으로는 단연 베트남 한인2세를 위한 사업을 손꼽을 수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불우했던 과거사의 앙금으로 세인들의 입담에서조차 떠올려 지기를 거부되어 왔던 베트남 한인2세 문제를 한국 가톨릭교회가 공개화하고 국민적 관심을 유도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사회 일반 여론도 한국 가톨릭교회의 베트남 한인2세 후원 사업에 대해 “보수화된 교회의 한계를 극복하고 교회의 근본적인 특성인 수용성을 십분 발휘한 괄목할만한 인권운동”이라고 평가하고 있어 앞으로의 발전 향방이 주목되고 있다.
‘한베트남 직업훈련원’ 후원 사업은 지난해 말 서울 한마음한몸 운동본부가 한베트남 수교를 계기로 한국 정부와 베트남 정부 양쪽으로부터 소외돼왔던 1만5천여 명의 베트남 한인2세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시작됐다.
단순한 인권문제 제기만이 아닌 총체적 복지지원사업으로 기술교육을 통한 자립기반을 마련해주기 위해 8월 범종교인 후원 사업회를 결성하고 9월부터 베트남 현지에 기초과정의 직업훈련원을 개설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베트남 한인2세’ 후원 사업은 전쟁고아와 혼혈아들의 처우문제를 민족적 연대감 속에 국민운동으로 끌어올려 한국 인권사에 있어 가톨릭교회의 독보적 입지를 또 한 번 구축했다.
올 한 해 인권운동에 있어 한국 가톨릭교회의 또 다른 개가는 최근 서울고법 특별9부가 ‘산업재해를 당한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해서도 산업재해 보상보험법에 따른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첫 승소판결이 나오게끔 투쟁해온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들에 대한 인권운동이다.
노동현장에서 기계화된 산업 도구로 전락한 10만여 명의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해 한국 가톨릭교회가 공식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92년 인권주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의 담화문을 통해 이들의 정당한 인권을 보장하는 법과 제도의 확립을 정부 당국에 촉구하면서부터였다.
정평위 92년도 인권주일 담화문에서 예견됐듯 년 초부터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 인권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에 관심을 표명해온 한국 가톨릭교회는 7월29일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관한 실태 자료집과 함께 ‘너희는 나그네였으니 나그네를 소홀히 말라’는 대정부 성명서를 발표하는가 하면 남자수도회 장상연합회는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사목대책 협의체’를 구성, 이들에 대한 사목적·물질적 지원방안을 모색해 왔다.
교회 산하 각 노동단체들은 또한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들의 인간다운 처우 및 임금개선, 산재보험과 의료혜택 등 이들이 누려야할 기본권 보장에 일차적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왔다.
이러한 교회 제단체들의 노력의 결과로 외국인 근로자 상설 상담소와 신앙 소공동체 등을 마련했고 한국 가톨릭교회가 이들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협력단체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간과할 수 없는 올 한 해 동안의 또 하나 한국 가톨릭교회의 인권활동은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노력들이다.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가 주축이 된 여권신장운동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정신대 진상규명’ 운동과 ‘윤금이양 살해사건 진상규명’ 운동, ‘가정폭력 추방운동’ 등 예년과 비교도 안될 만큼 굵직한 활동을 추진해 왔다.
전망과 과제
93년 한 해 동안의 한국 가톨릭교회의 인권운동은 연대성을 통한 탈지엽적 국민운동으로 발전돼 사회 계층 전반으로부터 지지와 호응을 받았다는데 일차적으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한국 가톨릭교회 활동에 관한 국민적 호응은 복음화 사업과 연계해 한국 가톨릭교회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일연의 성공적인 인권활동에 대해 교회 관계자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한 교회의 예언자적 토양이 내외적으로 구축되고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회정의 실현의 토대가 마련된 이상 사회 구성원들을 상대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우선적 선택’을 명확히 제시하는 것이 앞으로, 교회 내 인권단체들이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고 사목자들은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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