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러분과 함께 지내는 동안 그리스도, 특히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가진 것 없거나 버려진 사람들,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가가 좀처럼 헤아리기 어려운 희생으로 자신을 송두리째 내던지며 이 땅에 사랑을 심어온 벽안의 노사제, 파레이몬드 신부(72세·수원교구 소속)의 일과는 자신의 사제모토를 외우는 일부터 시작된다.
벽안의 선교사로 한국에 처음 왔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 기도는 항상 변하지 않는 파 신부의 다짐이자 자신을 지탱해온 삶의 결정체로 사리처럼 굳어져 가고 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땐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아 거리엔 온통 거지들로 가득했고 생활수준이 형편없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부모들과 함께 살 수 없는 나환우 자녀들을 내버려 둘 수 없어 그들을 모아 공부를 가르치고 기술을 익히게 했지요”
초창기 노동사목의 개척자로, 노기남 대주교 당시 노동자 사목을 위해 한국에 파견됐던 파 신부는 서울 도림동본당 보좌신부, 구로본당 주임 등을 거치는 동안 주로 노동사목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러나 광주 살레시오 수도회 수련장을 맡게 되면서 파 신부는 소록도 나환우촌을 방문하게 되고 자신이 돌봐주지 않으면 안 될 불우한 이웃들을 이곳에서 처음 만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을 찾는 나환우 자녀는 늘어갔고 많을 때는 1백여 명이 넘는 나환우 자녀들을 돌봐야했던 파 신부는 중대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을 내버려두고 새로운 사목지를 찾아 갈 수는 없었던 파 신부는 수도회 총장신부의 허락을 얻어 수도회를 나오게 됐고 자신을 흔쾌히 받아준 수원교구로 78년도에 옮겨와 현재에 이르고 있다.
파레이몬드 신부는 보다 체계적인 사업을 펼치기 위해 ‘다미안 사회복지회’를 수원에 설립, 나환우 자녀만이 아닌 버림받은 남여 어린이와 노인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뻗치기 시작했다.
현재 ‘예수 그리스도의 집’과 ‘데레사의 집’ 등 남녀 기숙사 3곳과 섭리의 집 등 양로원 5곳을 설립, 운영하고 있는 다미안 사회복지회의 가족은 총 8개 공동체에 1백30여 명으로서 가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책임자를 두어 가족들을 돌보게 하고 있다.
이제까지 파 신부가 운영하고 있는 남녀 기숙사를 거쳐 간 고아들만 7백여 명, 양로원까지 합칠 경우 1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파 신부의 도움으로 새로운 삶을 찾거나 아직도 함께 생활하고 있다.
경기도 안양시에 본부를 둔 다미안 사회복지회에 거주하며 수원교구 하우현본당 주임을 겸하고 있는 파레이몬드 신부.
“죽기 전에 하느님께서 원하셨던 사랑을 다 하느님께 바치고 떠날 수 있게 해 달라고 항상 기도한다”는 파 신부는 “처음 한국에 와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는 김치냄새가 지독해 미사집전을 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이제는 단 한 끼라도 김치가 없으면 식사를 못 한다”며 영락없는 한국인으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