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 (肝癌)신드롬’. 지난 92년 4월 보사부가 발표한 보건지표에서 국민의 사망원인 중 간암이 1순위라고 알려지자 전국 대도시 종합병원이나 건강진단센터에 간질환을 검진하려는 ‘유사환자’들이 몰려들면서 일어난 상황이다.
당시 밝혀진 바로는 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간암환자가 23.6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고, 그때까지 의학계에 보고된 2백70여 종의 암 가운에 간암의 경우 ‘5년 생존률’이 5%선을 밑돌아 췌장암과 함께 치사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
이 같은 현상은 외식과 술자리가 잦은 직장인은 물론 간질환의 가계(家系)ㆍ병력(病歷)이 있는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검진을 받게 만드는 촌극을 빚었다.
한국 사람들의 간암사망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달갑지 않은 사실은 이미 의학계를 비롯한 각종 통계·보고자료에 나타나 있다. 지난 89년 경제기획원이 밝힌 우리나라 사람의 사망원인별 통계에 의하면 간암으로 인한 사망자가 한국(87년 기준)은 인구 10만명당 22.3명으로 미국(84년 기준)과 영국(88년 기준)의 1.3명, 프랑스(85년 기준) 4.2명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이 수치는 같은 동양권인 일본(86년 기준)11.6명, 홍콩(85년 기준)의 19명보다 높은 것이다.
이 보고서는 또 81년 인구 10만명당 11.4명이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간암 사망률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92년 통계청의 자료에서는 인구 10만여 명 당 24.1명이 간암환자로 조사됐고, 서울대 예방의학과 팀이 85년부터 87년까지 3년간 의료보험관리공단, 피보험자 중 건강한 성인남자 37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항원 항체 모두 없는 경우 10만명당 연간 간암 발생자가 40.4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 시기 방법 등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한국=간암사망률 1위’라는 불명예는 기정사실화 되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간암발생 빈도가 이처럼 높은 것은 대부분 B형 간염 바이라스가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일반적으로 술(음주)이나 화학물질, 곰팡이 등을 간암의 원인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얘기다.
통계에 의하면 간암환자 가운에 B형 간염보균자는 보고자 따라 40∼60%로 보고하고 있다 “B형 간염은 혈액을 따라 전파된다. 모체로부터 태아에 감염되는 수가 많으며 오염된 혈액이나 혈액대용물을 수혈할 때, 불량한 주사기로 혈액을 채취하거나 정맥주사를 맞을 때 발생한다”고 가톨릭의대 김동구 교수는 설명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성인의 10% 정도가 몸에 B형 간염 바이러스를 지니고 있고 이들 중 15% 정도가 만성으로 발전해 간다는 것이 의학계의 정설.
간암의 발생률은 사회에서 한창 활동할 나이인 40∼50대에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어 사회적으로도 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특히 50대가 가장 많다. 역시 서울대 예방의학과 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55~59세 연령층이 가장 높아 10만여 명 당 72명이었으며, 그 다음이 50~54세(68명), 45~49세(61명), 60~64세(50명)순으로 나타났다.
40대의 경우도 각종 간질환으로 인한 사망이 전체의 22.2%나 되어 사망자 5명 중 1명꼴은 간 때문에 목숨을 잃고 있다. 이 중 간암은 40대 전체 사망의 7.4%를 차지, 일반적으로 국내 사망원인 중 최고로 알려진 위암보다도 사망자가 많았다. 이처럼 숙련된 기술을 갖고 한창 일할 나이에 걸리는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은 개인예방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40~50대에 간암이 많이 생기는 것에 대해 의학자들은 B형 간염이 간암으로 발전해 가는데 30~40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함께 간암 발병의 또 다른 주요인이 되고 있는 한국 남자들의 술(음주)버릇도 간암예방 차원에서 되짚어 봐야 할 대목. 가톨릭의대 김동구 교수는 “과량의 알코올 섭취자는 간암의 발병위험이 4배 정도 높고, 소량으로 장기간 알코올을 섭취해도 3배 정도의 위험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알코올을 끊어도 상당기간 동안 위험은 지속 된다”고 밝히고 있다.
3차 4차까지 가면서 뿌리를 뽑지 않고서는 끝을 보지 않는 것이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 중년 남성들의 음주문화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러한 술버릇은 어떤 경우 ‘미덕’으로까지 여겨지기도 했다.
어느 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간암도 치료보다는 예방이 일차적 관건. 간암의 경우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다는 점이 더욱 예방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많은 간장약이 나와 있지만 더 악화되지 않게 한다든지 일시적인 호전을 기대할 수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간 전문의들은 간염 예방접종이야말로 간암을 막는 적극적인 대책이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산모가 B형 간염 바이러스를 갖고 있으면 아기가 태어난 지 24시간 안에 예방 백신을 면역 글로브린과 함께 맞힐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간절제·이식 등 다양한 치료술의 발전으로 5년 이상 생존하는 환자가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의학계는 머지않아 간암도 ‘완치될 수 있는 암 중의 하나’로 인실 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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