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입니다. 그는 주위의 여러 세력들을 평정하여 나라를 최초로 통일시켰으며 또한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높은 신심을 가지고 백성들을 다스렸습니다. 이후로 다윗에 버금가는 인물은 등장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무능하고 불충실한 왕들만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점차로 ‘새 다윗’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메시아 사상이 등장하는 발단이 됩니다.
오늘 제1독서(2사무 7,1-16 참조)에서는 다윗이 하느님께 좋은 집을 지어드리겠다는 아름다운 정성을 봉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의 갸륵한 마음만을 받으시고 오히려 다윗의 가문에 큰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즉 다윗의 후손 하나를 당신의 아들로 삼아 국권을 튼튼히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하느님께 집을 지어드리겠다는 효성스런 마음 때문에 하느님은 오히려 그의 집(가문)을 좋게 지어 주셨습니다. 바로 그 ‘후손’이 예수님이십니다.
아름다운 봉헌에는 위대한 축복이 따릅니다. 부모들은 어버이날에 자녀들이 꽃 한 송이 달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감격과 기쁨을 만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도 우리의 작은 정성을 그처럼 크게 받아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축복의 비결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바라고 청하는 것보다도 항상 넘치고 풍요롭게 채워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을 봉헌했을 때도 그랬고, 사렙다의 과부가 마지막 먹을 빵을 하느님의 사람 엘리야에게 주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아니, 실제로 살아가는 각자 우리 인생의 여정에서도 그런 놀라운 은혜는 수시로 만나게 됩니다. 봉헌은 이처럼 늘 축복과 연결이 되며 삶의 소중한 가치를 바로 거기서 발견하게 됩니다.
‘봉헌’과 ‘축복’이라는 개념은 이렇습니다.
인간이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 봉헌이라면 그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내려주시는 것이 축복입니다. 따라서 봉헌과 축복은 서로 상대에게 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리고 같은 길에서 만나게 됩니다. 이것은 신앙 안에서 쉽게 배울 수 있는 진리인데도 신앙인들은 잘 모르고 있으며 또한 믿지도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다윗이 하느님께 집을 지어 봉헌하겠다는 그 갸륵한 정성을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바로「봉헌」이라는 인간의 신앙의 길을 통해서 당신 축복의 길을 열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다윗에게 약속하셨던 ‘아들’, 즉 메시아가 드디어 한 작은 처녀의 몸을 통해서 오게 된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마리아는 주님의 어머니가 된다는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습니다. 마리아는 본래 보잘것없는 처녀였습니다. 그녀는 일찍이 하느님께 당신 자신을 온전히 봉헌했던 소녀요 아가씨였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 여인에게 당신 자신을 온전하게 내맡기셨습니다. 역시 봉헌과 연결된 축복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새 다윗’으로 오십니다. 물론 본래의 다윗보다 훨씬 더 크게 위대하신 분이지만 다윗을 통해서 내려주셨던 하느님의 약속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면에서 예수님은 새 다윗이십니다. 그리고 이제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며 그의 왕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이 오시는 길은 다윗이 열어 주었으며 그의 갸륵한 정성과 충실한 신앙을 통해서 약속되어졌던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분께 충성심을 가지고 효도하고 좋은 것을 해드리려는 갸륵한 신앙 안에서 그분은 언제나 새 축복을 가지고 오십니다. 우리는 그래서 다윗의 신앙을 배워야 하며 마리아의 봉헌을 실천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다윗과 마리아는 ‘하느님의 집’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먼저 그들의 집이셨습니다.
이제 성탄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고요한 밤시간을 통해서 하느님의 거룩한 아들이 인류를 찾아오십니다. 그러나 자신의 신앙을 다윗처럼 위대하게 봉헌할 수 있는 자만이, 또는 마리아처럼 그분의 종으로서 온전히 내맡기는 자만이 바로 그분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손수 만드신 당신의 방이요 거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우리 안에 그분의 방을 마련할 때 주님은 우리 안에서 다시 태어나실 것입니다.
오소서, 주 예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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