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수입 개방이 확정됐다. 수입 동결기간-관세화 유예기간-관세화 시장개방 등등 그 과정을 두고 말들도 많지만 수입쌀이 물밀 듯 우리 시장을 잠식할 날이 멀지않은 것만으로 분명하다. 생존을 건 농민들의 시위는 끊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어차피 개방불가가 어렵다면 이를 한국 농업 회생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사면초가에 몰린 한국 농업이 안고 있는 문제점과 대응방안을 2회에 걸쳐 정리해본다.
쌀시장 개방에 대한 우려는 열악한 우리 농업의 현실에서 비롯되고 있다. 소위 UR협상이 시작된 86년 이후 지금까지 7년동안 정부가 내놓은 농촌 지원책은 농어촌 발전 종합대책, 농어가 부채경감대책, 농어민 조세부담 경감조치 등 굵직한 것만 무려 8개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농촌 현실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한마디로 “돈이 엉뚱한데 들어가기 때문”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즉 농촌구조 조정과 같은 생산적인 곳에 투자되기보다는 우선 농민들의 인심을 사기 좋은 단기적인 ‘빚가리기’에 돈이 쓰였다는 말이다. 농림수산부 농산과의 허모씨는 “경쟁적으로 남발한 농촌 발전대책은 투자우선 순위에 대한 고려가 미비했고 따라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 이면에는 경제논리를 압도한 정치논리에 대한 비판이 짙게 깔려있다.
영세농구조와 농지제도의 문제점도 우리 농업이 국제경쟁력을 상실하게 만든 원인으로 꼽힌다. 우리나라 농가구당 경지규모는 91년 기준으로 1.26정보에 불과하다. 이는 유럽농가의 20정보, 미국의 1백정보에 비해 너무 영세해 생산성에서 경쟁은 생각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더구나 농업소득으로 가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영농규모인 2정보 이상의 농가는 전체의 9.6%인 16만가구에 그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나라의 농지관련법이 영세 자작농을 보호하는데 치중해 농지거래와 소유에 관한 규제가 오랫동안 경직된데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그동안 주곡자급을 최우선 순위로 놓고 농지를 절대농지, 상대농지로 지정해 전용을 어렵게 하는 등 농지보존을 위해 엄격한 규제를 가해 왔다. 농지를 마음대로 전용할 수 없기 때문에 농민은 죽으나 사나 쌀농사를 짓지 않을 수 없었고, 농사목적 외에는 땅을 팔지도 사지도 못하기 때문에 민간투자가 이루어 질 수 없었다. 곧 농민은 농사만 짓고, 논은 쌀농사만 가능하도록 못박은 ‘경자유전’(耕者有田)원칙이 그것이다.
그러나 농업 전문가들은 “농민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농업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이 같은 경자유전 원칙은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농촌을 농업중심에서 농촌수산물, 유통·가공분야로 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다양한 경제활동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농지거래 자유화는 더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므로 적절한 규제는 계속돼야 한다”는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쌀소비는 해마다 줄어드는데 농가소득 중 쌀이 차지하는 비중은 20.9%로 여전히 높은 기현상이 빚어지는 것도, 농민들이 쌀을 포기하지 못하고 매달리는 것도 이러한 농지규제정책 때문이다. 따라서 농지규제를 과감히 풀어 농지의 전용이 이루어진다면 농가에서 차지하는 쌀 비중도 대폭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며 낙후된 영세농 구조를 타파해 농업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우리 농업의 국제경쟁력과 관련, 또 한 가지 눈여겨볼 것이 있다. 정부예산 편성안 가운데 농림수산 분야 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그것이다. 최근 5년 동안 정부의 예산 평균증가율은 16%인데 반해 이 분야 예산증가율은 3.5%에 그쳐 농업에 대한 재정투자가 소홀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5년간 농림수산 분야 예산증가율은 89년 4.7%, 90년 3.7%, 91년 4.2%, 92년 3.0%, 93년 2.7%로 매년 하향추세를 보이고 있다. 결국 정부의 농업정책이 목청 따로 투자 따로였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겠다.
또 정부가 농가소득 보상차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추곡수매제도도 그 이면에는 쌀 값 억제 기능을 갖고 있어 농가의 어려움을 더해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예천군 농민회장 전병철씨는 이에 대해 “현재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이중곡가제는 농민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도시 소비자를 위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쌀시장의 개방은 농민의 삶만 뿌리뽑는 것이 아니라 존립기반을 농촌에 두고 있는 농협과 소규모 농약상 비료상 기계상 등 관련업계 종사자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나아가서는 우리 조상 대대로 생명줄을 이어온 마지막 삶의 현장인 농촌공동체가 붕괴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다. 쌀농사의 포기는 곧 식량자급률의 저하로 이어져 수출국의 상황에 따라 식량공급이 위협받는 사태도 예상된다. 비단 경제적 피해만이 아니라 수자원 보호와 생태계 보전 등 공익적 측면에서도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전 국민의 시선이 쌀에 집중돼 있긴 하지만 고추 감자 마늘 참깨 쇠고기 콩 우유 등 쌀을 제외한 14개 기촌농산물의 개방에 따른 농가몰락 역시 문제다. 참깨의 주산지인 예천군의 경우 91년 8천가구에 달하던 재배농가가 불과 2년만에 1천6백여 가구로 줄었다는 보고서도 있고 보면 이들 기촌농산물 역시 수입개방과 함께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 뻔하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우리 농촌의 전면적인 와해를 막기 위해서는 농업관련 정부조직을 개편하고 농업관련 법안의 제·개정, 농지의 집단화 기계화를 통한 국제경쟁력 강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근대적 농업경영체제 육성 그리고 수입쌀의 판매차익을 농업 구조개선과 농가 소득보상에 전액 투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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