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을 비롯한 기초농산물의 수입개방으로 농민들의 주름살은 깊어만 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일찌감치 UR이 몰고 올 파장에 대비, 유기농업이나 고품질 농산물 개발로 경쟁력을 키워온 사례도 적지 않다. 갖가지 어려움 가운데서도 신념을 잃지 않고 개방에 대비해온 생산현장을 찾아 시리즈로 소개한다.
“우루과이 라운드가 결코 두렵지만은 않다” 원주 ‘한살림 공동체’의 정현모(바오로·40)씨에게도 쌀 개방은 상당한 충격을 안겨줬지만 유기농업으로 UR을 대비해온 그로서는 “우리 쌀을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있다.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공근리, 일명 내공근부락. 이곳이 정씨를 비롯한 한살림 공동체 회원 13농가가 유기농업으로 UR파고를 극복하고 있는 생산현장이다. 2천5백여 평의 농지에서 정씨가 재배하는 작물은 쌀을 포함해 감자 고추 들깨 콩 마늘 등 십여 가지에 이른다. 물론 전부가 무공해 유기농산물이다.
벼농사 면적은 5백여 평으로 비록 소규모이긴 하지만, 수확기만 되면 이곳 쌀을 찾는 소비자들의 주문이 쇄도해 한 해 동안의 고생은 어느 틈에 큰 보람으로 바뀌곤 한다.
정씨가 유기농업을 시작한 것은 85년부터. 그 는 전국에서 유기농업을 최초로 시도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84년 원주교구 사회사업국과 가톨릭 농민회의 주도로 일본 유기농업 현장을 견학하고 온 형 정현수(요셉)씨와 함께 유정란 생산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듬해 닭에 치명적이라는 뉴캐슬병이 번져 2천여 마리가 떼죽음을 당하는 좌절을 겪기도 했다. 당시 함께 시작했던 6농가 중 3농가만이 이 일을 계속했다. 정씨는 닭의 부산물을 퇴비로 이용, 죽어가는 땅을 되살리는데 온 정성을 쏟았다.
‘유기농업은 잡초와의 싸움’이라는 그의 말처럼 제초제를 쓰지 않는 대신 때를 놓치지 않고 김매기를 해줘야 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다. 이런 노력의 결실로 해가 갈수록 잡초는 줄어들었고 땅도 서서히 되살아났다. 처음 시작 당시 30%정도 줄었던 수량도 3~4년을 고비로 회복됐다.
정씨가 재배하는 유기농산물은 모두가 ‘한살림 공동체’를 통해 원주 등 인근 도시 소비자들에게 공급된다. 가격도 무공해 현미 한 가마에 16만원, 진현미(찹쌀)는 16만5천원에 거래된다. 보통쌀 10만8천원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난다. 그래도 공급량이 딸려 원주 한살림 공동체는 여주 등 타 지역에서 쌀을 들여와야 할 실정이라고 한다.
정씨는 그동안 계분에다 톱밥, 왕겨 등을 섞어 퇴비로 쓰던 것을 내년부터는 ‘흙살림 연구소’(충복 괴산)가 만든 각종 미생물 효소를 본격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쌀 외에도 내공근마을의 유기농산물은 널리 알려져 이 지역 고추농가는 여러 종자 공급업체 홍보지에 다수확 고품질 모델사례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씨에게도 쌀 시장 개방에 따른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격면에서 당초 경쟁이 되지 않는 수입쌀을 소비자들이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겠는가”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 농촌 농산물을 살리려는 국민들의 적극적인 의지 없이는 어떠한 노력도 무위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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