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을 비롯한 전 국민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쌀을 비롯한 기초농산물 수입개방 일정이 확정됐다.
7년간에 걸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쌀수입을 절대 않겠다던 정부는 농촌문제의 구조적 모순을 방치한 채 쌀수입 개방을 발표, 농촌과 농민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그러나 정작 우리농업은 지난 수년간 경제성장의 희생물로 전락, 경쟁력 상실은 물론 회생의 기미조차 찾을 수 없는 허탈감과 좌절에 빠져 있다. 뚜렷한 농업정책도 없이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쌀수입 개방 발표를 전후해 농업구조 조정이다, 신농정이다 하며 정책 당국이나 언론은 야단법석을 떨고, 당장 농촌이 회생할 것처럼 온갖 대안들을 즉석으로 토해내고 있다.
이를 두고 뜻 있는 관계자들은 “농민피해를 보상하는 차원에서 이뤄지는 ‘농촌종합대책’으로 과거와 같은 인기전술이나 졸속대책을 반복해서는 곤란하고 또 쌀개방을 막지 못한 정치적인 부담 때문에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분명히 못박고 있다.
전화위복의 호기
우리는 과거 역대정권으로부터 ‘농가부채 탕감’과 같은 달콤한 논리에 번번이 속아왔지만 핵폭탄보다 더 무서운 식량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제 더 이상 농촌을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렇다면 벼랑의 끝에 선 농촌을 살리는 길은 무엇인가? 양곡유통위원회 김동희 위원장은 “86년 이후 정부가 내놓은 농촌 지원책이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정치적인 배려에 의한 즉흥적 지원책이었기 때문”이라며 “땜질식이 아닌 농촌의 구조개선에 초점을 맞춘 지원책이 반드시 수립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쌀개방을 농촌희생의 전화위복으로 삼아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농촌 현실 타개에 돌파구로 삼아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은 농촌발전을 가로 막아온 최대의 걸림돌인 정부의 과도한 농지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경자유전(耕者有田)원칙폐지, 농외소득 향상, 수출농 육성정책으로 신농정을 펼쳐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로 상대적 이익을 보는 집단에 목적세를 신설하고 농지은행을 설립, 농민에게 재정적인 뒷받침이 되도록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농촌의 다각화/모색
그동안 정부는 농지소유와 전용을 규제하고 경자유전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가구당 평균 영농규모를 하락시키고 농사를 짓는 사람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제한, 경쟁력을 갖춘 대규모 영농이 불가능 하도록 부채질해 왔다.
또한 농지를 절대농지로 묶어 땅 중에서도 생산성이 떨어지는 논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한 규제를 해제, 농업의 다각화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함께 농촌소득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쌀농사에 의존해서는 농업 생산력 향상에 한계가 있다고 볼 때 우리나라 농가의 농외소득 비중을 소농구조의 일본과 대만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작년 현재 우리 농가의 순수 농외소득은 3.5%로 일본의 86.2%, 대만의 64.2%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따라서 농외소득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농촌의 공업화를 통한 농외소득 증대방안이 요청되고 있지만 그나마 논공단지 유치에 필수적인 도로시설과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기업체 유치에도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수출 유망종목 지원
농촌의 공업화와 더불어 사과와 감귤 닭 돼지 버섯 신선채소 화훼 등을 수출 유망종으로 선정, 수출농의 기반을 다져가는 것이 우루과이라운드 파고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다행히 우리는 세계 최대의 농림수산물 수입국인 일본을 이웃하고 있고 사계절의 뚜렷한 기온차로 채소와 화훼재배에 좋은 잇점을 안고 있다.
지난해 일본의 농림수산물 수입규모는 5백59억달러. 신선도 유지에 유리한 강점을 갖고 있는 데도 전 수입량의 3%정도만을 우리농산물이 차지했을 뿐이며 지리적으로 불리한 미국 캐나다 호주 대만 등이 수입량의 대부분을 차지해 버렸다.
농촌경제 연구원의 한두봉 박사는 “우리가 공업화 초기에 공산품 수출에 기울였던 지원과 노력의 절반만 농림수산물에 투입한다면 수출 농업의 전망은 매우 밝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적절하고도 다각적인 지원책과 함께 우루과이라운드 타결로 얻어지는 비농업부문의 이익을 어떤 형태로던 농업부문에 재투자되는 정책이 수립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우리농촌 살리는 길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로 공산품 수출은 95년부터 연간 45억 달러의 국제수지 개선효과가 기대되고 농림수산물은 쌀과 쇠고기 등 기초농산물 수입에 따른 피해액이 연간 수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상대적인 이익을 보게 되는 기업으로부터 ‘농촌 부흥세’와 같은 목적세를 거둬들여 농촌의 경제적 파탄을 막는데 사용토록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쌀수입 개방은 상대적으로 가난했던 농민들의 소득이 더욱 줄어들고 도시민들의 소득은 늘어나는 형평성의 원리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결국 벼랑 끝에 선 우리 농촌을 살리는 길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실제적인 투자, 수입쌀이 싸더라도 우리농촌을 살리겠다는 희생으로 우리쌀을 먹는 소비자들의 의식이 앞서야 가능해 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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