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초하루에 뜨는 해는 한 해에서 가장 큰 해다. 이 날은 한 해에서 마음속에 제일 크게 희망을 품어볼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러이러한 일을 꼭 이룩해내야지, 또는 뭣보다 앞서 이러저러한 일만은 먼저 해놓고 보리라, 등등의 희망사항과 계획에 마음이 부푸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지난해 신년벽두에 같은 식으로 마음먹었던 일들이 거의 결실을 보지 못하고 일년이 너무 빨리 가버려서 세월의 덧없음을 한탄한 일이 바로 엊그제였음이 생각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참으로 제일 어려운 일이 자기와의 싸움이요 그중에서도 제일 어려운 일이 마음을 다스리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이리저리 궁리를 해보는 것인데, 매사에서 그 일에 재미를 붙이는 것보다 더 무서운 추진력을 발휘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재미보다 더 무섭고 큰 추진력은 없다.
가령 놀음에 한번 재미를 붙여 푹 빠진 사람의 말로가 어떻게 되어 가는가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바와 같다. 물론 이것은 나쁜 쪽에 추진력이 붙어버린 경우의 예이지만 있는 재물을 모두 날려버리고 빈털터리가 되고 나서야 어쩔 수 없이 놀음을 여의게 된다. 이와 같이 재미는 무서운 힘이지만 한편 마치 불이나 칼날 같은 연장의 경우처럼 좋은 쪽으로 무한한 힘을 발휘한다. 우리는 이 점을 깨닫고 좋은 쪽으로 이 재미의 힘을 이용하면 좋을 것이다.
숭고한 도덕적 기준에 비추어서 또는 유리적인 의무감에서 어떤 일을 결심하고 그 일을 실천에 옮기는 경우도 물론 그것이 추진력으로 작용하긴 한다.
그리고 그것이 참으로 갸륵하고 영웅적인 행동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신 아닌 인간이기에 그러한 의무감 하나만으로 지탱해나가기엔 너무 힘이 든다. 어떤 다른 힘의 도움을 받아야 힘이 덜 든다.
1~2년 후에 입시를 치러야하는 수험생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무조건 좋은 대학을 들어가야 되니까 좋은 대학엘 가야 출세하니까, 부모님이 좋아하시니까 또는 이보다는 훨씬 지각 있는 생각이지만, 공부를 잘하는 일 자체가 좋은 일이니까, 하는 따위의 이유에서 이를 악물고 커피를 마셔가며 스스로에 채찍을 가하는 학생은, 이미 말한바와 같이 비길 바 없이 갸륵하고 숭고하고 영웅적이긴 하지만, 그런 노력을 지속하는 일이 옆에서 보기에 딱할 정도로 힘이 든다. 그러한 노력을 한 3개월 지속할 수 있다면 대단한 학생이다. 3년을 지속할 수 있다면 두말 할 것 없이 초인적이다. 그만큼 힘이 든다. 대개 이런 학생은 말로는 ‘공부해야 한다’하면서도 가만히 보면 고달픈 표정으로 책상위에 머리를 얹고 잠이 들어있기 쉽다.
반면에 공부를 하는 일에 재미를 붙인 학생은 틈만 나면 공부에 매달리게 된다. 본인이 재미가 나서 열중하는 일이니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다. “얘야, 너 너무 그렇게 무리를 하면 건강에 해로울라”하고 주변에서 염려를 해주면, “네”하고 얌전히 대답은 하지만 한밤중에 가만히 살펴보면 불을 켜놓고 몰래 공부를 하고 있다. 공부하는 일이 일단 이러한 궤도에 오른 학생은 어떻게든 공부가 늘지 않을 수 없다. 재미라는 무서운 힘이 그 학생을 밀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공부뿐이랴. 아무리 잡박한 일상적인 일도, 아무리 무미건조한 직장생활도 일단 그 일에 재미를 붙이기만 하면 어느 틈엔가 이리 잘 돌아가고 잘 풀려나가게 마련이다. 나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해야 할 모든 일에서, 그중에서도 특히 매일매일 되풀이해야 하는 직업상의 일에서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사람은 이미 넓은 의미에서 성공줄에 들어선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동서고금에서 남들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엄청나고 초인적인 일을 해낸 사람들, 위대한 학자, 예술가 천재들도 가만히 보면 다 그러한 사람들이다. 그러면 그것은 그렇다 치고, 어떻게 하면 일에 재미를 붙일 수가 있는가가 문제 아니냐고 반문할 것이다. 일에서 재미를 느끼게 되는 방법은 꼭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무슨 일이건 간에 우선은 그 일에 정성을 기울여서 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괴롭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동안에 차츰 재미가 나기 시작하고 재미가 나기 시작하면 그만큼 힘이 덜 들게 된다. 이렇게 해서 이윽고 깊은 재미를 알게 되면 일은 본궤도에 오른 거나 다름이 없다. 어떻든 간에 맨 처음에 정성과 열주이라는 투자와 제물은 꼭 바쳐야 하는데, 이것만은 절대적인 조건이다. 결국 이러한 재미의 원리는 고통을 통한 즐거움의 원리라 할 수 있는데 알고 보면 이것이 쾌락의 원리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가장 높은 차원의 원리가 아닌가 싶다.
정성들여 일을 하며, 그렇게 일을 해서 창의성을 발휘하고, 그러는 가운데에서 일에 재미를 느끼게 된다는 것은 결국 일을 사람하고 있다는 말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러고 보면 사랑의 원리는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만 구원의 원리가 될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일의 관계에서도 구원의 원리이며, 그러고 보면 사람은 있는 모든 것을 구원하는 원리이다.
공산주의 방법이 이제 완전히 파산해 버린 셈인데 알고 보면 공산주의의 방법 안엔 일을 사랑으로써 해야 한다는 생각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그 파산의 원인일 것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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