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은 ‘‥‥하지 말라’는 금지명령으로 표현되어 소극적인 계명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십계명 전체는 ‘사랑하라’는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음은 알 수 있다. 십계명의 처음 세 계명은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이고 나머지 일곱 계명은 사람을 사랑하라는 계명이다. 십계명의 이러한 정신을 예수께서도 가르치셨다. ‘하느님은 오직 한 분뿐인 주님이시니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이며 이 두 계명은 모든 율법서와 예언서의 골자이다’ 그러니 하느님을 공경한답시고 사람 특히 가까운 사람을 등한시 할 수 없으며 미워할 수는 더군다나 있을 수 없다. 하느님께 바치는 사랑 따로, 사람에게 대한 사랑 따로 생각할 수는 없으며 특히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재물로 표시하면서 이웃을 희생시키는 것은 하느님이 반기시지 않는다. 인간은 재물과 자기희생이 뒤따르는 이웃사랑의 실천을 뒤로 미루어 놓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하여 종교적인 경건생활에 몰두하다 보면 하느님 사랑의 길에 멀어질 위험에 빠져들게 된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표면적인 행동으로 평가하고 그 행동을 실천한다는 것을 잴 수 있는 방법을 율법으로 청하다 보면 그 율법이 남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는데 그 율법준수 자체를 자기의 경건생활의 척도로 삼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착각이다. 십계명에서는 이웃사랑의 첫 번 계명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적극적인 명령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모든 이웃사람의 첫걸음이며 결국은 하느님을 받들어 모시는 가시적인 사랑실천이 된다.
부모님을 어떻게 공경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법은 가르칠 필요도 없이 마음과 정성을 다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자연이치이다. 이 계명준수를 돕기 위하여 랍비들은 부모에게 음식과 물을 주고 입을 옷과 덮을 이불을 주고 길을 인도하고 맞아들이도록 하라고 자세하게 해석하였다. 그런데 이 권유는 재물이 많이 드는 일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정성표시는 물질적인 희생으로 할 수 있는 노릇이다. 따라서 부모께 대한 공경표시가 신체적인 보살핌을 포함하듯이 부모를 홀대하는 일도 신체적인 보살핌을 소홀히 또는 거부하는 행위로 나타난다. 그러면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가. 탈출기(21,17)와 레위기(20,9)에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홀대하는 자는 사형에 처해진다’는 율법규정이 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채우기 위하여 들어가는 재물의 손실과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서 처벌받는 사형벌 둘 다를 피하기 위하여 유대아인들은 교묘한 전통을 만들어냈다. 이 전통은 성서외적인 ‘조상들의 전통’이란 이으로 시행되어왔다. 그것은 하느님께 봉헌하겠다는 봉원(奉願) 맹세이다. 그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일과 인간에게 봉사하는 일을 구분하고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인간에게 봉사하는 일보다 우선시켰다. 여기에다가 하느님께 봉원을 선서한 일은 어겨서는 안 된다(탈출 30,3)는 봉원준수의무규정과 이 봉원으로 바쳐진 재물은 다른 사람이 손대지 못한다는 조상전통과를 혼합하여 ‘코르만’(봉헌물이라는 뜻)이라는 말을 하며 봉원맹세를 하면 되었다. 이 맹세로써 자녀는 부모에게 드려야 할 몫을 하느님께 바친 경건한 행위로 간주하였다.
이 물건은 거룩한 봉원 서약으로 봉헌 되었으므로 그 자체가 거룩하게 되었고 부모라도 거기에 손을 대지 못한다. 그런데 하느님을 물질로 공경하는 데는 도피로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 탐욕스러운 사람들에게는 아주 편리한 율법준수법이다. 하느님의 계명은 하느님 자신을 위하여 주어진 것이 아니며 그 말씀은 양심적으로 사랑에 입각해서 해석해야 한다. 하느님의 사랑을 저버리고 성서를 해석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사람이다. 구약성서의 여러 가지 봉원맹세는 결국 하느님을 진정으로 섬기기 위한 것이지만 예수께서는 하느님을 섬기는 일과 인간에게 봉사하는 일을 다른 일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을 비난하며 그 사기성 있는 조상들의 전통을 통렬히 비판하셨다. 코르반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부모 공경의 계명을 도피하고 그 처벌도 교묘히 피하는 그들의 전통은 하느님의 이름과 거룩함이란 구실을 팔아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는 처사이다.
‘이것이 바로 조상들의 전통을 핑계 삼아 하느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랴?’ 인간이 자기 편리한대로 만들어 놓은 규율을 하느님의 것인 양 가르치는 그들, 그들은 참으로 종교의 노름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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