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두려워하며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다 받아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제2독서). 이는 사도 베드로께서 하느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아, 이탈리아 부대라는 로마군대의 백인대장인 고르넬리오의 집에서 행한 설교의 한 구절이다. 그가 설교하고 있는 동안 성령이 그 곳에 모인 이 방인들 위에 내리셨다. 역시 하느님은 만민의 하느님이시며, 그리스도는 만백성의 구세주이시다.
오늘의 복음에서는 메시아의 내림 전에 반드시 선구자가 오리라는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그 선구자의 증언은 너무나도 엄청난 소식이다. “나보다 더 훌륭한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만한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그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사실은 엘리아의 화신이다. ‘낙타 털옷을 입고 가죽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는’ 그 모습은 바로 엘리아다. 예수님도 그 사실을 천명하셨다.(마태 11,13-14 참조) 그만큼 그는 대단한 인기를 모았다. 그를 메시아로 오인할 정도로 위대한 인물이었지만, 그러한 분이 예수님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제일 낮은 종의 신분도 못 된다는 사실을 스스로 대중에게 고백한다.
이는 곧 “모든 예언서와 율법이 예언하는 일은 요한에게서 끝났음”(마태11, 13)을 예수님께서 직접 선언하신바 그대로이다. 예수님의 세례는 곧 구약의 문이 닫히고 신약의 새로운 메시아의 세계가 전개됨을 의미한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에게는 율법의 색깔이 남아 있다. 그것도 아주 질게 깔려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도 바울로의 말을 빌린다면 율법은 가정교사 혹은 후견인에 불과하다.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후견인 구실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신 뒤에는 우리가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믿음의 때가 이미 왔으니 우리에게는 이제 후견인이 필요하지않습니다”(갈라 3,24-25). 바울로는 이런 율법 하에 있는 것을 종의 신분에도 비했다(갈라 4,2-3 참조).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아직도 아들딸로서의 신분을 생각지 않고 오직 종으로서의 두려움을 갖는 ‘노예로서의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보다는 약간 다른 ‘고용인으로서의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는 공로를 많이 쌓아야 천당에 간다는 일종의 거래와도 같은 것이다.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어떠한 인간적인 공로나 선행으로도 천국을 차지할 수는 없다.
오직 하느님의 사랑으로써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을 밝히시려 오셨다. 이제 어둠의 세상은 지나가고 밝은 새 날이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도 이 세상의 관습이나 제도를 결코 무시하시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나자렛에서 멀리 요르단강까지 세례를 베풀고 있는 요한을 찾아가 그에게서 세례를 받으셨다. 그때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내려오시는 것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오늘의 제1독서를 통해 다시 율법과 대비(對比)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이사야 예언서에는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그는 나의 (성)영을 받아 뭇 민족에게 바른 길을 펴 주리라.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잘라 버리지 아니하고 심지가 깜박거린다 하여 등불을 꺼버리지 아니하며 성실하게 바른 인생길만 펴리라. …나 야훼가 너를 부른다. 정의를 세우라고 너를 부른다.… 너는 만국의 빛이 되어라. 소경의 눈을 열어주고 감옥에 묶여 있는 이들을 풀어주고 캄캄한 영창속에 갇혀있는 이들을 놓아주어라”
즉 그리스도는 사랑 그 자체로서 오직 아버지께 묵묵히 순종하시며, 온유하고 겸손하고 다정한 손길을 펴실 것임을 예언한다. 그리고 그분은 부러진 갈대(상한 갈대)라 하여, 즉 인간의 나약성으로 해서 결점과 죄악 등으로 좌절했다 하여 버리는 일 없으시고, 등불이 꺼져간다 하여, 즉 강하지도 못한 연약한 믿음이라 하여 내치시는 일이 없이, 오히려 그러기에 더욱 사랑의 손길로 용기와 믿음을 북돋아 주시는 분이심을 강조한다.
그뿐인가,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능력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시어, 온 천하 만백성에게 진리의 눈을 뜨게 하시고 (소경의 눈을 열어주고) 온갖 탐욕과 세속적인 것에 노예가 돼있는 자들에게 그 집착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며, 캄캄한 미신 속에 (캄캄한 영창 속에) 갇혀있는 자들을 모두 해방시킬 것을 역설한다.
실로 그리스도 예수의 세례는 이제까지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하늘나라의 영광과 능력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과 은총을 충만히 내려주심의 시작임을 알리는 환희의 종소리이다. 이제 하늘이 열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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