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적대하는 자들과 ‘조상들의 전통’에 관한 논쟁을 벌인 후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따로 불러 중요한 실천적인 교리를 그들에게 가르치셨다. 그 교리는 ‘정결’과 ‘부정’(不淨)에 관한 교리였고 이 표현은 구약시대적인 표현이고 새 시대의 표현으로는 ‘죄’와 ‘은총’의 상태를 말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구약시대의 예식적인 뜻을 지닌 부정개념으로 바꾸는 중대한 설교였다. 사람을 더럽히는 것으로는 하느님께서 내리신 십계명이며 이 십계명은 열개 조항으로 세분된 자연법의 표현이다. 이 십계명에서 금지된 사항들이 사람을 더럽히는 조항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유대아인들에게는 이 십계명을 충실히 지키기 위한 실증적인 규정들이 있었고 이것들은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의 인가를 받아 그들 민족의 생활 모법(母法)이 있었다. 이 생활모법을 그들은 ‘레위법’이라고 불렀으며 그들은 이 법을 하느님이 명하신 실증법으로 선조 때부터 성경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법은 정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에 관한 규정(레위11장) 산모의 부정에 관한 교정과 그 부정을 벗기는 예식(레위12장)부정한 질병 문둥병(레위13장) 악성 피부병과 그 부정을 벗기는 예식(레위14장) 남자·여자의 몸이 부정하는 것과 그 부정을 벗기는 예식(레위15장)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이 법에는 사람을 부정케 하는 모든 음식물의 목록이 있다. 그 음식물들이 왜 부정 타는 음식물로 목록에 올랐는가에 관한 토론은 여기서 할 일이 아니고 구약성서 해설에서 할 일이지만 예수께서 문제 삼은 것은 그 법을 폐기해야 된다는데 있지 않고 그 모법을 또 자세히 규정한 그들의 ‘조상들의 전통’ 즉 오늘의 법개념으로 말하자면 모법의 시행령에 관한 반대토론이었다.
그 전통에 따르면 어떤 음식이든 손 씻는 예절을 거치지 않고 먹으면 부정을 탄다는 것이었다. “왜 당신 제자들은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습니까” 이것이 논쟁의 트집이었다. 손뿐 아니라 음식 그 자체도 물 뿌리는 예식을 해야 했고 음식 담는 그릇까지 그 예식을 거쳐야 했다. 손 씻고 깨끗이 씻은 음식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먹는 위생적인 견지의 법이 아니었고 형식적으로 예식을 거치는 종교예절 이었다.
예수의 쟁점은 여기에 있었다. 사실 예수님도 성서에서 금한 금기음식은 드시지 않았다. 서민에 속했던 예수의 일행은 지체 높은 사람들이 행하는 조상들의 전통을 지킬 의무도 필요도 없었다. 이 논쟁을 기화로 예수께서는 정결과 부정의 새로운 가르침을 내리시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정·부정의 문제는 초대 사도교회가 당면한 신자들의 윤리생활의 원칙을 반영하는 문제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부정 타는 동물이 있고 먹어서는 안 될 음식의 목록을 조상 때부터 물려받아 내려온 유대아인들에게 이 말씀은 충격적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옛날 개화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돌아가신 선조들의 제사를 지내면서 고인이 된 부모님들이 잡수시라고 제사상에 음식을 차려 놓던 풍습을 미신이라고 몰아붙일 때 받던 충격을 생각하면 짐작이 간다.
유대아인들은 예수의 말씀이 걸림돌이 되어 분노에 차 팔작팔작 뛰었고 제자들은 스승님이 율법을 무시하는 듯하여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께 적대자들의 비위를 건드렸음을 걱정하였고 집에 돌아가서는 그 비유의 말씀을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해 주실 것을 요청하였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안심시켰다 :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바리사이들, 율법학자들, 그들은 민중을 인도하는 소경들이다. 그들은 스스로 하느님의 선민(=이스라엘)으로 자처하며 하느님의 포도밭이라고 자칭하지만 그들은 잡초 우거진 가시덤불일 뿐이다. 하느님께서 심지 않은 나무는 결국 뽑아 버릴 것이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야 하는데 너희들(제자들)도 못 알아듣느냐?
구체제에서 새 체제로 넘어가는, 말하자면 종교관의 혁명을 선언하시는 대목이다. 새 체제에서는 겉으로 하는 예식으로 사람을 다듬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을 깨끗이 하고 거룩하게 하여 사람을 물질에서 영성으로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속으로는 강탈과 착취의 영욕의 악심을 품고 겉으로는 ‘나를 더럽힐까 염려되니 나에게 손대지 말라’는 것을 종교생활의 모범으로 생각하는 것은 웃지 못 할 희극이다.
참된 종교생활은 십계명을 진심으로 지키는 데서부터 시작되며 그것을 어기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그 악덕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마르코는 12가지를 꼽는다. 음행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바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하느님을 모른다고 하는 자)이다.
성 베다는 “불경건이 경건의 탈을 쓰고 사람들을 유인한다”고 하였고 “나쁜 생각은 악마가 넣어주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의지에서 빚어지는 것이며 악마는 부추길 뿐”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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