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사업은 번성해야 하며 따라서 많은 협조자가 필요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를 택하실 때까지 혼자서 일을 해오셨지만 이제는 단지 당신의 말씀을 열심히 듣기만 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당신의 사업, 즉 하느님의 일을 협조해줄 사람을 필요로 하신다. 인간이 하느님의 일을 협조한다는 것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놀라운 일이다. 그 놀라운 일은 그대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제일 첫 번째 제자가 시몬 베드로이다.
구약시대에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예언자로서 심부름꾼을 간택하셨다.
오늘의 제1독서가 그 사실을 전해준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의 성경 말씀들 중에서 진정 상상할 수 없는 사실들을 볼 수 있다.
즉 하느님께서 사람을 택하시는 방법은 결코 인간들이 택하는 기준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다. 즉 그의 타고난 재능이라든가 기질, 도덕적인 수준이나, 종교적인 열성 때문에 불리움을 받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그가 가지고 있는 재산이라든가, 사회적 지위 혹은 그의 출중한 외모 따위는 더욱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한 것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의 기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 ‘하느님의 부르심’ 바로 그것이 중요하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잘 낫거나 종교적으로 우수하다거나 가진 것이 많다거나 혹은 지식이 많기 때문에 부르심이 아니라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가진 바가 없고 지식도 없으며 무능함에도 불구하고 당신께서 택하심으로써 당신의 제자가 되어 아버지의 일을 하도록 하신다. 이것이 바로 성소(聖召)의 신비이다. 즉 사람은 자신의 나약함을 겸허하게 자인함으로써만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절대적인 순종을 할 수 있게 된다.
옛날 모셀 택하셨을 때도 이 사실은 적용된다.
즉 모세는 40세의 장년시에 자신의 힘으로 자기만족을 구하려는 열성을 가지고 거사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그는 미디안 땅으로 망명하여, 40년을 그곳에서 보낸다. 그때 그는 이미 노령에 이르렀고, 자신감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이제 자기의 힘으로는 도저히 민족의 구원이라는 대사업은 불가능 하다고 체념(?)했다. 바로 그때 하느님께서 모세를 부르신다.
인간의 힘의 무력함은 절감했을 때, 하느님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이 사실이야 말로 그리스도교의 기적 중의 기`적이다. (탈출기 3.4.5장 참조)
진정 그리스도인의 참 모습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바꾸는데 있다. 즉사도 바울로처럼“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19b~20a)라고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오늘의 말씀을 살펴보자. 사무엘은 아직도 소년이었다. 그에게 어떤 자격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또 시몬(베드로)은 어부였다. 그는 동생 안드레아의 말을 듣고 한걸음에 예수께로 달려갔다. “예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시며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 아니냐? 앞으로 너를 게파라 부르겠다’하고 말씀하셨다.”(게파=베드로=반석)
그런데 여기에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 불리움을 받은 사람은 그 부르심에 응답하기만 하면, 그의 말은 단순한 언어 이상의 것이 된다는 사실이다(창조의 능력을 가진다. 생명의 능력) 그 말들은 곧 하느님의 능력이 되어 실현되기 때문이다. 제1독서에서도 “사무엘이 자라는 동안 야훼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그가 한 말은 모두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셨다”고 전한다. 나중에 사무엘은 예언자로서 충실한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서의 더 큰 사명을 다하게 된다.
베드로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가 감옥에 갇혔을 때 쇠사슬이 저절로 끊기고 옥문이 스스로 열려져 탈출할 수 있었고(사도 12,6-19 참조) 낳을 때부터의 앉은뱅이에 베드로가 손을 얹자 그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걸었고 뛰었고 하느님을 찬미했다(사도 3,1-10 참조). 그뿐 아니라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한날 어부에 불과했던 그가 너무나도 감동적인 설교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 등은 복음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회의를 자아낼 정도로 놀라운 사실로 되어있다. 사도행전은 이러한 警異로운 사건들의 연속이다.
성직자로 불림을 받았든 수도자로 뽑힘을 받았든, 평신도로 불리움을 받았든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일을 하도록 불리움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다시 한번 자각심을 일으키자. 그리하여 말씀을 듣는 일뿐만이 아니라, 말씀을 전하는 일까지도 사명으로 불리움을 받았음을 명심하자.
그리고 우리의 몸은 이미 우리 자신의 것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이 계시는 성전이라는 것을 모르십니까?”(제2독서 중)그러므로 온갖 정욕, 즉 분노, 탐욕, 나태, 교만, 미색이나 인색함 등의 노예가 돼서는 안 될 것이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1코린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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