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에게 듣는다
“가정과 본당-대리구와 교구,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기도 안에 머물며 그리스도 닮도록 노력하는 한해 되길”
<과학의 급격한 발전, 신앙인은…>
인간 소외시키고 있는 과학의 질주 윤리성 망각한 채 발달해선 안돼
인류·세상에 선익되도록 이끌어야
<생명경시 풍토 속에서>
공감·유대감이 바탕 이루는 평화와 사랑의 공동체 만들어야
생명문화 전파 위해 노력하고 소외되고 아픈 생명 곁 지킬 것
<교구 평협 설립 50주년 맞아>
사제·수도 성소의 시작은 가정, 평신도 노력으로 교회가 발전
신앙 떠나는 이들 많은 것이 현실, 교회 부흥·쇄신 운동 노력해주길
2019년 새해가 밝았다. 우리는 새해를 맞으면 집안의 어른을 찾아 인사를 올리고, 덕담을 들으며 한 해를 살아갈 지혜와 힘을 얻는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는 새해를 맞아 우리 교구의 어른, 교구장 이용훈 주교를 찾았다.
이 주교는 교구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며 “구체적인 사랑 실천을 통해 그리스도의 평화 안에 머물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소외되고 아픈 생명들을 돌보는 일”에 함께해주길 부탁했다.
-지난 한 해는 여느 해보다도 교구가 쇄신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해가 아닌가 합니다. 지난 2018년을 돌아보시면서 지난 한 해 교구의 전체적인 모습을 돌아보신다면.
▲올해는 정말 다사다난하다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한 해였습니다. 교구 안에서도, 밖에서도 그렇고, 사회·정치적인 상황도 그랬습니다. 우리 교구뿐 아니라 우리 교회가 여러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교구 대내적으로는 대리구를 개편했는데요. 대리구가 비교적 빨리 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를 위해서 교구민들과 신부님들이 애를 많이 써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대리구제 개편은 교구뿐 아니라 한국교회 차원에서도 돋보이는 결단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개선된 대리구제 시행의 소회도 부탁드립니다.
▲이전에는 교구 안에 6개 대리구를 운영하다보니 집중력도 떨어지고 봉사자들을 비롯해서 각 대리구 자체가 힘겨워하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조금 판을 다시 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고요. 많은 절차와 과정을 통해 합의해서 내린 결정입니다.
6개 대리구가 2개로 개편되고 각 대리구장을 보좌주교님들이 맡게 됐는데, 6명의 대리구장 신부님들이 하시던 것을 주교 3명이 맡다보니 일도 많아졌고, 일정을 소화하는 것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개편된 대리구는 보다 체계적으로 역량을 집중하고 일을 추진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보다 활력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복음화국 1·2국, 청소년 1·2·3국은 대리구에만 존재하고, 본 교구청에는 지원부서들만 남아있어 모든 힘을 복음화에 주력하게 됩니다. 대리구 개편에 큰 결실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대리구제에 관해서 기대하시는 바에 관해 조금 더 자세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아울러 대리구제에 관해 교구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도 부탁드립니다.
▲사실 이번 대리구제의 목표로 삼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본당 자체의 활성화’입니다. 교구 편제와 대리구제가 변화하기는 했지만, 교구청과 대리구청은 일선 사목현장인 지구와 본당 사목이 활성화 되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는 기관일 뿐입니다.
특히 사목연구소에서는 연구와 논의를 통해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수집된 정보들, 자료들을 사목현장에 제공하고 그 구체적인 방법이나 실행사항들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도움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교구, 대리구, 지구, 본당이 혼연일체가 되어 움직여야 합니다. 결코 상명하달식이 돼서는 안 되고 지침이나 방법을 알려주는 일에 그쳐서도 안 됩니다. 함께 하는 사목, 동행하는 사목을 펼쳐야 합니다. 그야말로 교황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함께 고민하고 힘을 모아 앞을 향해가는 사목(synodality)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계획과 목표가 있더라도 참여하는 이들이 소극적이거나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합니다. 본당, 지구 신앙공동체 구성원들이 무엇보다 먼저 교회와 단위 신앙공동체를 위해 함께 해야 한다는 의식전환이 요청됩니다. 하느님 백성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하는 일이 선행돼야 할 것입니다.
교구민들께서 가정과 본당, 지구, 대리구, 교구가 유기적으로 하나돼 신앙의 보람과 자부심, 행복을 열어가는 데 동참해 주시기를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제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전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과학의 발전과 각 산업의 융합은 기술이라는 미명 아래 인간성을 잃게 만들고 있는 듯합니다. 올해도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질 것 같습니다. 이 현실 안에서 교구민들은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참으로 극복하기 쉽지 않은, 어려운 주제입니다. 과학의 분별없는 질주가 인간성을 말살시키고, 인간을 소외시켜 소위 비인간화하는 흐름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미래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인간의 계층화와 차별대우가 심화될 것이라고 미래학자들은 진단하고 있습니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인공지능과 로봇 권리장전을 제정하려고 합니다. 짐 데이토 교수는 ‘로봇권리장전’ 제정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로봇은 집에 기르는 애완용 동물 수준보다 훨씬 우위에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로봇은 점차 지능이 발전해 인간과 대화를 합니다. 대화뿐만 아니라, 슬프면 울기도 하고, 기쁘면 웃기도 하고…. ‘그런 로봇을 과연 우리는 어떻게 취급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생명조작 기술로 인해 인간과 동물의 중간 형태인 말 잘 듣는 노동자 계층이 출현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옵니다. 이미 인큐베이터 기술도 상당한 발전을 이뤄서 수정된 지 6개월도 안 된 아기도 인큐베이터를 통해 살릴 수 있다고 합니다. 기술의 발달을 생각해보면 초미세아도 성장하게 할 수 있는 인공자궁도 시간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 기술들이 발달하면 사람보다 약간 떨어지는 지능을 갖고 사람의 말에 절대순종하면서 고통을 당하더라도 주인을 위해 희생하는 생물을 만들어 부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죠.
과학이 인류와 세상을 파괴하는데 사용된다면 우리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통해 이를 제재해야 합니다. 우리는 생명복제, 인간성 말살을 주도하는 과학의 발전을 심각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학이 인류에게 선익을 주어야 하는데, 과학이 그 윤리성을 망각한다면 그런 과학의 기술과 발전을 용납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류를 위협하고, 인간과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하는 과학, 로봇의 미래사회는 매우 불안하고 위협적입니다.
-특별히 주교님께서는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계십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기술의 발전과 여러 사상과 권익의 충돌 속에 생명경시 풍토가 사회를 잠식하고 있습니다. 이 안에서 가장 시급하게 우리 신자들이 관심을 갖고 노력을 기울여야할 부분을 말씀 해 주신다면….
▲무엇보다도 나눔, 연민, 공감, 유대감이 바탕을 이루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교 가르침과 윤리는 바로 이런 평화와 사랑의 공동체를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생명윤리는 중요한 사회교리 중 한 부분입니다. 교회는 끊임없이 신앙교리를 바탕으로 인류와 세상의 평화와 화해의 세상을 만들어, 모든 인간과 계층이 그 존엄함과 품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가르쳐 주신 유언을 실천하기 위해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사랑과 희생과 봉사를 통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이기주의, 경제제일주의, 현세적 쾌락주의는 그리스도 사상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해있고, 환경과 조건 때문에 불가피하게 생명을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자비와 용서로 대하는 태도를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를 들면 낙태를 하게 된 여성들이 그런 경우입니다. 그 자체만을 단죄하려는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공동책임을 느끼며 그들이 생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함께 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크게 느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콜로 4,15) 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생명문화를 전하는 것은 교회의 중요한 사명인 것 같습니다. 이 생명문화 전파를 위해 교구 차원에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나갈 생각이신지요.
▲생명과 관련된 일은 복음화 사업의 큰 줄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처지의 소외계층과 함께하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데 가장 우선시되는 일입니다. 교회는 늘 소외되고 가난하고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해왔습니다. 그동안 교구는 외적으로도 세월호, 쌍용차, 용산 참사, 밀양 송전탑 등 이 시대 가난한 이웃과 함께하며 생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우선 건전한 가정, 인간관계, 남녀의 만남이 선행돼야 합니다. 가정은 세상과 인류의 공존, 상생을 위한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단위입니다. 요즘 가정이 와해되고 가족 사이의 대화 단절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가정교육의 부재, 신앙생활의 위기로 이어져 교회와 사회 공동체를 위협하는 요인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 주변에 신음하는 소외계층을 돌보는 일에 관심과 시선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신음하는 생명들이 많습니다. 미혼모와 그 자녀, 이주민과 그 가정, 조손결손가정, 학대받는 여성과 노약자, 가난한 노인들과 병든 이들, 노숙자와 부랑인, 교도소 재소자들과 가출 청소년 문제에 각별한 도움과 애정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외되고 아픈 생명들을 돌보는 일이 가장 중요한 현안입니다. 이는 양보할 수 없는 사회복음화 사업이며, 결코 교구가 포기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를 포기한다면 우리는 우리들만의 단체가 되고 말 것입니다.
-지난 한 해는 남북화해의 큰 발걸음을 옮긴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올해는 자연스럽게 우리 교회가 북한 복음화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 신자들은 이런 변화 안에서 어떻게 함께 해야 할까요.
▲우선 남북 정상이 3번이나 만났고, 문재인 대통령도 바티칸에서 교황님을 만나고, 국무장관님과 남북화해를 위해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북한 복음화에 도움이 된다면 북한을 방문하시겠다고 말씀하셨지요.
내외적으로 남북의 평화와 화해는 크게 주목받는 상황입니다. 평화를 향한 진전이 더욱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북한에는 1945년 해방 이전 4개 교구 5만2000여 명의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주교, 사제들, 수녀들이 대부분 처형되고, 수많은 교우들이 살해당했습니다. 이후 북한교회는 침묵의 교회로 남게 됐지만, 사제들의 북한 방문이나 중국 방문 등의 기회를 통해 세례와 견진 받는 신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들은 공개적인 신앙생활은 할 수 없었지만, 여러 증언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비밀리에 사제와 성당이 존재하지 않는 암흑 속에서도 그들의 신앙을 지켰습니다.
매일 북한교회와 남북 화해와 평화를 위해 기도하면서 어서 빨리 북한에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도록 해야겠습니다. 마침 의정부교구에서 매일 오후 9시 ‘평화를 위한 주모경 봉헌’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운동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해는 한국교회 차원의 평신도 희년이었습니다만, 새해는 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설립 5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합니다. 평신도들의 역할과 중요성에 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평신도 희년을 주교회의가 사도좌에 청한 것도 바로 우리나라 평신도의 헌신적인 노력과 결실에 보답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평신도의 중요성과 그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바로 평신도 가정을 통해 사제성소와 수도성소가 나오고, 평신도 지도자들이 배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신도의 탁월한 신앙심과 실천으로 우리나라 교회는 지속적인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240여 년 전 사제와 선교사가 한 명도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천진암강학회가 발족되고, 이승훈을 북경에 파견해 세례를 받게 한 기적과도 같은 일은 세계교회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평신도들의 눈부신 활동으로 이제 우리 한국교회는 신자 수 600만 명, 교구 사제만도 5200명을 헤아리는 큰 나무로 성장했습니다. 이런 외적 성장 이면에 오늘날 미사참례자 수 감소, 세례자 수 감소, 청소년 신앙생활 약화 등 많은 교우들의 신앙생활에 대한 열의가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현세적, 시대적 조류에 편승해 교회를 소홀히 하거나 떠나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우리 교회의 미래는 밝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설립 50주년을 맞아 더욱 우리 마음과 실천을 다져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이 시대 예언자들인 우리 교우들이 힘을 모아 교회 부흥, 쇄신 운동에 열성을 다해 동참해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우리 신부님들과 교우들이 과감하게 젊은이들 신앙교육에 마음을 모아주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교구민에게 새해 덕담을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새해를 더욱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전 교구민이 되새기며 실천할 화두를 권해주시길 청합니다.
▲교구민들을 만날 때마다 늘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콜로 4,15)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안에 머물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도록 노력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서는 그분의 마음을 닮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누구신지,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알고 그분의 마음을 닮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 ‘사랑’ 이야기하지만, 사랑은 참 추상적인 말입니다. 사랑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미워하고 비난하기도 하니까요. 그런 사랑이 아니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바로 용서, 관용, 공감, 연대, 연민, 자비, 자선을 실천하며 이웃들에게 가까이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자연히 주님께서 주시는 평온과 행복, 평화가 가득히 우리 마음을 채우게 될 것입니다. 그를 통해 올 한 해, 보다 행복하고 보람 있는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사진 성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