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고향땅인 가파르나움으로 돌아와 오랫동안 머무셨다. 아마도 긴 여름을 이곳에서 지내셨다. 가파르나움이 위치한 갈릴래아지방은 지금까지 예수께 대하여 호의적이었으나 지금은 이곳에서 반대자들의 감시의 눈길을 피할 수가 없었다.
바사사이파 사람들의 집요한 공세,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율법학자들의 추적감시, 이곳에 뿌리내린 헤로데파당원들의 적대시 등 예수께서 고향땅도 몸 둘 곳이 아님을 느끼셨다. 그래서 이방인들의 땅으로 가시려는 것이었다.
어느 특정한 곳을 향한달 것도 없이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지중해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발길을 옮겨 티로라는 해변도시를 거쳐 좀 더 북쪽에, 있는 시로까지 다다랐다. 이 도시들은 현대의 레바논국의 도시로서 예수당시에는 로마제국통치의 시리아지방 이었고 이 지방을 그리스인들이 페니키아라고 불렀던 지방이다. 그래서 신약성서시대에는 이 지방을 시로페니키아라고 불렀다.
페니키아는 그 옛날에는 가나안지방이라고도 불렀던 관계로 성서에서는 이 지방 사람들을 시로페니키아출신 그리스인(마르 7,26) 또는 가나안사람이라고 불렀다. 하여튼 예수의 이번 여행은 전교를 목적으로 한 여행이 아니었고 적대자들을 자극하지 않고 그 영역을 피하여 조용히 제자들과 함께 지내려고 떠났던 일종의 도피여행이었다.
민족도 다르고 종교도 다른 이 이방인지방에서 안식을 얻으려는 예수의 계획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전에 예수께서 겐네사렛호수가에서 전교하고 병자를 고쳐주실 때에 티로와 시돈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예수를 따른 일이 있었고(마르 3,8) 예수의 명성은 온 시리아에까지 퍼져나갔었다 (마태 4,24). 그러니 예수께서 이 지방에 오셨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아무도 모르게 어떤 집에 들어 조용히 계시려 하였으나 결국 알려지고 말았다”라고 마르꼬복음서는 전하고 있다. 한 어머니가 자기 딸의 사정을 호소하며 큰 소리로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소리소리 지르는 것이었다. “다윗의 아들이신 주님, 제 딸이 마귀에 걸렸으니 제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소리 질렀다. 예수께서는 들은 척도 하지 않으셨는데 제자들이 끼어들었다. “저 여자가 소리 지르며 귀찮게 구니 청을 들어주시고 돌려 보냅시오”
예수의 여행목적은 이방인전교가 아니었다. 예수의 구세사업은 먼저 동족 이스라엘인들에게 펴는 것이었고 이방인들의 전교는 그 다음으로 미루고 있었다. 전에 주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임명하시고 전교에 파견하실 때에도 “이방인들이 사는 곳으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도시에도 들어가지 말라. 다만 이스라엘의 길 잃은 양들을 찾아가 하늘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여라”라고 분부하신 일이 있다. (마태 10,5-7)
이것은 ‘내 백성에게 찾아 구세주 메시아를 보내겠다’는 구약성서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 구약의 말씀을 염두에 두신 듯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제안에 대하여 “나는 이스라엘 민족의 길 잃은 양들을 돌보러 왔다”고 대답하셨다. 그러나 구원의 복음은 유대아인들을 구원의 복음은 유대아인들을 떠나 로마인들과 그리스인들과 같은 이방인들을 찾아 갈 것이며 끝내는 세계만방 모든 민족에게 전해질 때가 올 것이다.
집요하게 예수께 요청을 드리던 가나안 여자는 예수께로 다가와서 그 앞에 엎드리고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하고 간청하였다. ‘다윗의 아들’ ‘주님’이라는 호칭은 이스라엘인들이 구약성서의 정신을 따라 하느님의 파견자 메시아를 부르는 전통적인 명칭이다. 가나안사람(마태오) 또는 시로페니키아인(마르코)은 예부터 이스라엘인들이 적대시하던 민족이었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의 구원밖에 있다고 생각하던 민족이었다.
이러한 민족의 한 여자가 ‘주님’이라고 부른 것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이 이방인들 사이에 싹트고 있음을 복음사가들이 알리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전통적으로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구원 우선권을 주장하시면서(이 우선권은 이미 여러 번 피력되었다) 식사하는 한 가족의 그림을 연상시키며 ‘자녀들이 먼저 배불리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주어서야 되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이방인에게 은혜를 베풀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하신 것이다.
유대아문학에서는 하느님의 자녀들인 자기들을 ‘자녀’라고 부르고 (탈출 4,22 : 14,1 : 이사 1,2 : 호세 1,10 : 로마 9,4) 이교도들을 ‘개’라고 부른 흔적이 있다 (사무 17,43 : 욥 30,1 : 열왕하 8,13 : 그밖에 랍비문헌들) 그리고 이 호칭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이와 같은 이교도 모독적인 표현을 부드럽게 하기 위하여 강아지라는 애칭을 사용했고 공동식사 하는 주인 밥상에 함께 있는 그림을 표상하셨다.
유대아인들은 식탁에서 식사가 끝나면 빵부스러기로 손을 비벼 씻는다. 그 때 떨어지는 빵부스러기는 강아지 차지이다 가나안 여인은 이 점을 들어 자기 간청을 철회하지 않았다. 강아지는 떨어지는 빵부스러기를 먹지 않느냐고.
이 집요한 요청은 은혜를 거절하던 예수님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네 딸은 이미 다 나았다” 이 이야기에서 하느님의 자녀도 선택된 유대인들의 불신앙과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이고 신앙을 가지게 된 이방인들이 대조된다.
성 베다는 시로페니키아여인은 예수께 대한 신뢰심으로 신앙의 모범이 되었고 끈기에 있어서 인내의 모범이며 예수의 냉정한 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겸손의 모범이 되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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