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티로를 떠나 시돈을 거쳐 또 다른 이방인들의 지방 데카폴리스를 향하여 여행을 계속하셨다. 시돈에서는 머물지도 않았고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없지만 이 지방을 거쳤다는 것이 중요하다.
시돈은 페니키아(지금의 시리아)의 옛 수도였고 인근의 도시 티로(현 레바논의 옛 도시)와는 늘 적대관계에 있었고 티로에 대해 좀 열세에 있었다. 티로에서 시돈까지는 약 50킬로미터가 되니 우리 리수로 백리가 훨씬 넘는 거리이다. 복음사가들이 예수의 여정을 이교도들의 하느님의 구원의 손길이 이미 유대아를 떠나 이방인들에게 뻗힘을 뜻한다.
여기서 데카폴리스로 가려면 동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국토를 가로질러 갈릴래아호수 동쪽으로 가야한다. 나마부 레바논의 여러 산을 넘어야하고 헤로데의 통치구역을 피하여 간다고 가정할 때 그 여정은 퍽이나 오래 걸린다. 이 고된 여행은 사도 바오로의 이교도 전교여행의 모형이며 그후 교회의 많은 선교사들의 이국포교를 방불케 한다.
하여튼 도달한 곳은 데카폴리스이다. 데카폴리스는 이미 소개한대로 (대목 56참조) 10개도시 연맹체란 뜻이며 세속문화에 젖어있던 헬렌문화권의 이교도지방이었다. 이곳에 도착한 예수는 산에 올라가 않으셨다.
성서에서 산이 언급되면 무슨 중요한 일이 전개된다.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았고 예수께서 산상교훈을 베풀 때도 산에 올라가 앉으셨다. 그리고 5천명의 군중을 먹이신 첫 번째 빵의 중식 기적도 산에서 이루어졌다. 지금은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인간들의 귀를 열어 주고 혀를 풀어주는 인류구원의 상징이 구체적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이어서 제2의 빵의 증식 기적이 있을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군중은 많은 병자들을 고쳐달라고 데리고 왔다. 마르코복음서는 귀머거리 벙어리 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고 전한다. 인류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입으로 온 세계에 전파하는 선교의 영상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귀머거리는 듣지도 못할 뿐 아니라 말도 못한다. 무슨 소리를 낸다 해도 불분명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낸다. 하느님의 복음의 말씀을 듣지 못한 이교도들을 상징한다.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구원의 때가 오면 소경은 눈을 뜨고 귀머거리는 귀가 열리라고 하였다 (35장5).
여기서 사람들은 귀머거리 한 사람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주시기를 간청하였고 예수께서는 그를 따로 데리고 군중이 보지 않는 곳으로 가 고쳐주셨다. 병자를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주시기를 요청하는 것은 복음서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마르 6,5 : 8,23·25). 안수는 사도교회에서 사용한 예절중의 한 가지이며 성령을 불러 죄악의 병폐를 치유하는 전례적 몸짓이었다.
예수께서는 다른 때와는 달리 그 벙어리를 외딴 곳으로 데리고 가 고쳐주셨다. 이것은 구약시대에 엘리야와 엘리사가 죽은 아이를 골방으로 데리고 가서 다시 살려낸 이야기를 상기시키며(열왕 상 17,19 : 열왕 하 4,33) 구세주 메시야의 은밀한 도래를 말하려는 마르코의 특징적 서술이다. 예수께서는 그의 귀구멍에 손가락을 넣었고 글의 혀에는 침을 발라 듣게 하고 말하게 하셨다.
환부에 손가락을 대고 침을 바르는 것은 고대사회에서는 치유효과가 있다고 생각되었고 유대아인들은 이것을 마술행위로 금지하고 있었다.
예수의 이번 치유행위는 후대에 하느님의 은총을 내려주는 성사의 표시로 사용되었고 이 치유를 일으킬 때 하늘을 우러러 보신행동과 ‘에페타’라고 한말과 함께 세례성사를 집행하는 예절에서 사용하였다. 하늘을 우러러 보는 것은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행위이며 에페타라는 말은 아라메아어로 ‘열려라’라는 뜻이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사람들은 막혔던 귀가 트이어 복음말씀을 듣게 되고, 닫혔던 입이 열리어 하느님을 찬양하게 된다, 하늘을 우러러 보는 동작은 초인적인 힘을 이끌어 내는 몸짓으로 이교도들이 사용하였고 기적의 말 에페타는 아라메아라곤 했지만 그 어원이 서아랍계통의 말에서 왔다는 설도 있고 해서 일종의 주술적인 말로도 들렸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귀머거리 벙어리를 치유하는 기적을 행할 때 귀속에 손가락을 넣고 혀에 침을 바르며 하늘을 우러러 보고 에페타라는 용어를 쓰는 등 이교도들의 주술적인 몸짓과 말을 사용하여 하느님의 은총을 실질적으로 작용시켰다. 이것은 후대 교회에서 모든 성사를 집행하는 예절에서 가시적인 언동을 하게 된 근거가 된다.
마태오복음서는 벙어리가 말을 하고 곰배팔이가 성해지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걷고 소경이 눈을 떴다고 전하고 있다. 이것은 이사야 예언자의 말과 일치한다. “그 때에 소경은 눈을 뜨고 귀머거리는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절름발이는 사슴처럼 기뻐 뛰며 벙어리도 혀가 풀려 노래하리라”(35장 5절~6)
예수께서는 침묵을 지키라고 명령했지만 기적적인 치유사실을 보고 놀라 마지 않은 군중들은 그분이 하신 일은 훌륭하다고 찬탄하며 이 사실을 사방에 퍼뜨렸다. 이것은 하느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후 ‘참 좋았다.’라고 한 말씀을 연상시키며 예수의 기적을 구원의 새 참조로 사도교회는 받아들였고 구원의 소식이 사도시대의 복음선포적 상황을 말해 준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