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과 세계 각국 정치지도자들의 평화협상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빚어진 걸프해상의 위기는 기어이 전쟁으로 터지고 말았다.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은 이번 전쟁에 어떡하든 이스라엘을 끌어들여 다국적군을 와해시키고, 이른바 ‘아랍의 성전(聖戰)’이라는 명분아래 이스라엘과 아랍민족국가들 간의 전면적인 중동전, 더 나아가서 세계전의 양상으로 바꾸어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후세인은 전쟁발발 열흘이 지난 1월 29일 현재 벌써 7차례에 걸친 스커드미사일 공격을 감행, 이스라엘의 분노를 증폭시키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에 대해 미국의 강력한 제지를 받아들이는 한편 언제까지나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놀랄만한 자제력을 보여주고 있다. 걸프해상을 둘러싸고 있는 위기는 전쟁으로 터졌고 그것은 ‘인류의 위기’로 치달을 수 있는 불씨를 안고 있다. 이번 걸프전쟁을 계기로 이 해상을 둘러싸고 있는 종교·민족·문화적 배경을 살펴보고 이지역의 평화 정착을 위한 염원을 가슴 가득히 담아 위기와 갈들의 해소를 위한 향후 전망을 진단해본다. <편집자 주>
분노를 이기지 못한 이스라엘이 전쟁에 참여 할 경우 이번 걸프전쟁은 자칫 유태교·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간의 종교전쟁적 양상으로 비화되고 이 전쟁은 걷잡을 수 없는 위기를 맞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틀 뒷받침하듯 사담 후세인은 애당초 이번 전쟁은 ‘신(神)’의 이름으로 ‘악마’를 격퇴한다는 범아랍 민족들의 성전(聖戰)을 호소하면서 ‘제2의 십자군 전쟁’이라고 선전하고 나섰다. 전쟁이 성전의 명분으로 치러질 때는 강한 종교적 민족적 유대감과 함께 이교도(異敎徒)에 대한 배척의식을 그 밑바탕으로 한다.
이른바 성전의 명분으로 전쟁이 발발한 것은 역사적으로 1096년에서 1270년에 이르기까지 약 2세기동안 전후 8차에 걸쳐 행해진 중세 ‘십자군 전쟁’을 가장 뚜렷한 예로 들수 있다.
10세기말에 이슬람교도가 된 셀주크 투르크족은 소아시아로 진출하여 동로마군과 싸워 콘스탄티노플을 위협하고 다시 팔레스티나에 침입하여 성지(聖地) 예루살렘을 점령하고(1071) 순례자를 박해함으로써 그리스도교도(敎徒)들의 격분을 샀다. 이에 따라 당시 비잔틴황제의 구원요청에 따라 로마 교황 우르바노 2세(1042~1099)는 그리스도교국가의 귀족과 성직자들을 프랑스 클레몽에 소집, 성지회복을 위한 다국적 원정군을 일으킬 것을 선언함으로써 십자군 전쟁은 막이 오르게 되었다.
이 전쟁은 원정군의 계속적이고 조직적인 군사력의 미흡과 각종 유행병 등으로 결국 ‘성지회복’의 대과업을 이루지 못하고 원정군의 패배로 종결됐다.
십자군 전쟁은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봉건사회가 붕괴되고, 아라비아의 학문·문학, 비잔틴의 미술·문학 등이 유럽에 교류됨으로써 유럽문화의 향상에 이바지한 큰 계기를 이뤘다는 긍정적인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고 오늘날 역사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한편 중동지역에서의 이같은 종교·민족적 갈등과 반목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그리스도교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미국·유럽 등지의 세계열강의 지원과 보호를 등에 업고 1948년 팔레스티나인지역에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를 창설하는 과정에서도 깊이 있게 응축돼있다. 특히 중동지역에서의 아랍국가들은 2차 대전을 전후로 한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통치로 그들은 종교적 모독감과 함께 민족적 자존심이 심하게 훼손당했다는 자각심이 팽배, 이를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을 늘 간직해 왔다.
중동지역의 아랍인들은 사담후세인이 비록 독재자이기는 하나 아랍권에서 이교도들과 대항해서 그들의 자존심과 대의(大義)를 회복, 지켜줄 수 있는 신(神)의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후세인은 걸프전쟁을 아랍인들의 성전이라고 선언할 수 있으며, 특히 그가 미군주둔을 용인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친서방 아랍국가들을 배신자로 비난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아랍인들의 성전의식은 그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있는 이슬람교의 신앙관에도 또 하나의 뿌리를 두고 있다.
이슬람은 아랍어로 ‘복종’ ‘굴복’ ‘순종’이라는 뜻으로 ‘알라(神)에 대한 완전한 복종과 순종’을 의미한다. 또 ‘알라’는 유태교의 ‘야훼’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과 같이 완전한 유일신(唯一神)을 의미한다.
오늘날 그리스도교·불교와 함께 세계 3대종교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는 이슬람교는 AD622년(이슬람원년) 선지자 마호메드가 대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전지전능한 알라의 계시를 받아 창시 됐다고 한다.
이슬람교도들은 그들의 교리서 ‘코란’을 바탕으로 이교도와 싸워 격퇴시키는 것은 코란의 계시이며, 지상명령이고, 코란을 지키기 위해 전사하는 것은 곧 순교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걸프전쟁에 임하는 아랍군인들은 마치 중세기 십자군전쟁 때 동원된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신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성전의식을 가슴깊이 가질 수가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슬람교는 7세기 초 ‘코란이 아니면 칼’이란 깃발아래 유태교와 그리스도교가 진출해 있던 아라비아 반도를 정복하고 시리아·이라크·북메소포타미아·아르메니아·이란·이집트 등지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이들의 정복전쟁은 8세기 초 중앙아시아를 점령했고, 이베리아반도(스페인)를 침입, 그 세력을 확장시켜 왔으나 11세기말에서 13세기말까지 거의 2세기에 걸친 십자군전쟁을 고비로 주춤했으며, 15~16세기 들어 서구 그리스도교 세력의 탄압으로 다소 쇠락의 길에 봉착했다.
오늘날 이슬람교는 중동을 비롯 북아프리카 동남아를 위시한 우리나라·일본 등지에 널리 퍼져 있으며 신도수는 대략 10억여 명인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서는 3만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슬람교의 교리서 ‘코란’은 “우리는 알라를 믿으며 우리에게 계시되고, 아브라함과 이스마엘과 이삭과 야곱과 모세와 예수와 다른 예언자들에게 알라로 부터 계시된 것을 믿는다. 우리는 그들 중 아무도 구별하지 않으며 알라에게 복종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코란’에는 유태교·그리스도교의 신약과 구약성경이 일부 포함돼 있으며 유태교·그리스도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은 여전히 메카·메니나와 더불어 이슬람교의 3대 성지중의 하나이다.
근본적인 교리상으로 볼 때 이슬람교는 모세나 예수를 하느님(유일신)의 계시자로 인정하고 있는 데에서 유태교와 일맥상통하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가 예수의 강생을 신의 육화로 이뤄진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 반면, 이슬람교는 신의 계시가 마호메드에 의해 완성된 것으로 고백하고, 이에 반해 유태교는 신이 계시하고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구세주(메시아)는 아직 강생하지 않았다고 믿고 있는 데에서 큰 차이가 난다.
한편으론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간의 갈등과 대립은 수천년의 역사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유대민족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대거 이주한 역사는 구양성서 탈출기에 잘 나타나있다.
모세의 시대인 RC13C경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탈출한 유대민족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하지만, 이미 이때 아랍인들의 조상들은 현재의 이라크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고대국가체제를 갖추고 번성하고 있었으므로 민족 영토분쟁의 갈등이 싹트게 된다.
유대민족의 수난은 사담 후세인이 즐겨 자신과 비유하는 신(新)바빌로니아 왕국의 느부갓네살왕이 BC6세기 예루살렘을 점령, 그 유명한 유대인들의 ‘바빌론 유페’가 시작됨으로써 재개되고, 그들의 떠돌이 생활은 현세기까지 계속 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들 조상들이 가진 특유의 ‘선민사상’을 세계1차대전을 전후해 ‘시오니즘’으로 결집시킴으로써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으로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으며, 1948년 이 지역에서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 ‘약속의 땅’을 다시 회복했다.
그러나 이즈음 이미 이곳에는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민족(팔레스타인인)이 자리를 잡아 살고 있었으므로 주위의 아랍국가들은 이교도 이스라엘의 건국을 인정치 않았고, 오히려 침공으로 규정함으로써 73년까지 네 차례의 중동전쟁은 불가피하게 됐다.
건국 후 이스라엘은 아랍민족국가들과의 전쟁에서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으며, 더군다나 67년 6월 제3차중동전쟁인 이른바 ‘6일전쟁’에서 요르단으로부터 요르단강 서안을, 시리아로부터는 골란고원을, 이집트로부터 가자지구 등을 각각 차지, 상대국의 반환요구와 유엔의 점령지 철수 결의 등을 무시하고 각각 국내법을 적용, 병합했다.
이스라엘은 점령지에 살고 있는 1백70만명의 팔레스타인계아랍인들을 강압통치하고 현재까지 세계 각국의 유대인들을 귀국토록 하여 계속 이주시키고 있으며, 앞으로는 수년 내에 소련거주 유대인 1백여만명을 점령지역에 집중적으로 이주시킬 계획을 세워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생존의 터를 잃은 팔레스타인들은 점령지역에서의 독립을 요구하는 항쟁을 계속 벌여왔으며 이스라엘은 이들의 요구를 무력으로 진압, 분쟁과 갈들의 먹구름이 걷힌 날이 없는 것이다.
중동지역 아랍국가들은 그들 내부적인 정치문제 혹은 국익에 따라 서로 대립하거나 충돌할 때도 있지만, 대(對)이스라엘을 향한 팔레스타인 문제만큼은 늘 의견일치를 견지하고 있다. 그들은 시온주의자 유대인의 나라, ‘정복자’ 이스라엘을 팔레스타인에서 축출함으로써 옛 아랍의 영광을 되찾고 코란을 사수하는 길이라는 데에 공감하고 있다. 또한 이들 가운데 이라크는 무력이외 다른 방법을 취할 수 없다는 강경노선을 고수하는 국가이다.
반면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조상이 기원전 11세기에 이 지역에 왕국을 건설하고 살았다면서 잃어버린 땅을 2천년만에 가까스로 찾게 되었다고 강변, 어떠한 침공에도 ‘고향’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후세인의 의도대로 걸프전쟁에 이스라엘이 참전하게 되면 수세기에 걸쳐 내재돼온 유대민족과 아랍민족의 갈등과 불화가 새로이 외형적으로 표출, 화학전이나 핵전쟁보다 더 무서운 종교 이데올로기적 양상으로 진전될 수 있는 우려가 높다. 이 종교전쟁은 엄격히 따지자면 중세 십자군전쟁을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와의 불복으로 풀이한다면, 이 전쟁은 유태교와 이슬람교간의 종교·민족전쟁이 될 것이다.
또한 한 측면에서 중동지역에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미국을 비롯 그리스도교 문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유럽국가들이 다국적군으로 확산 참전, 세계적인 전쟁으로 비화되면서 사담 후세인은 결국 아랍세계의 성전의 명분하에 그리스도교에 대한 증오심을 가일층시켜 결국 유태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간의 종교전쟁으로 독려시켜나갈 공산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학자들은 유대인과 아랍인은 구약성서와 코란에 동시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셈계인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곧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배다른 두 아들 가운데 ‘이삭’의 자손들이 유대인이고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아랍인이라고 한다.
창세기 17장은 “아브람이 구십구세 되던 해에 야훼께서 나타나시어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신이다. 너는 내 앞을 떠나지 말고 흠 없이 살아라. 나는 너와 나 사이에 계약을 세워 네 후손을 많이 불어나게 하리라.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삼아 너에게서 많은 자손이 태어나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 같은 하느님의 계약대로 아브라함의 후손은 오늘날 자자손손 번성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들 후손들의 갈등과 대대립은 갖가지 인간적인 욕망과 이해관계에 편승, 자기식의 아집과 독선에 사로잡혀 수세기를 걸쳐 가일층 심화되어 왔고 이른바 ‘성전’이라는 명분하에 전쟁을 일으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해 오기도 했다.
또한 이번 걸프전쟁에서 이라크가 걸프해상에 대규모의 기름을 유출시킴으로써 생태계 파괴, 해상오염 등 돌이킬 수 없는 지구환경의 오염을 초래하는 만행도 자행되고 있어 또 다른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이번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이라크를 비롯 중동지역의 아랍국가들과 또한 이스라엘, 더 나아가 세계의 모든 국가·민족들이 그들 생명의 원천이 하나의 뿌리(조상)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새로이 깊이 인식할 수 있을 때 중동지역을 포함,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을 것으로 전망해 본다.
왜냐하면 ‘부시의 하느님’도 ‘이스라엘의 야훼’도, ‘후세인의 알라’도 성전의 미명하에 자행되는 참상보다 오히려 보다 끈끈한 형제애·인간애를 통한 ‘평화’와 ‘상호생존’을 구축해 나갈 것을 계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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