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차 주회합 가진 지체장애인 Pr. ‘든든한 힘이신 동정녀’
“신앙 안에 서로 의지해 온 우리는 한 가족”
2009년 6월 창단해 9년째 이어와
거동 불편함에도 왕성하게 기도 봉헌
환자 방문 등 사랑 실천에도 앞장
2018년 12월 29일 교구청에서 ‘든든한 힘이신 동정녀’ 쁘레시디움 단원들이 500차 주회합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12월 29일 오전 10시30분, 교구청에 휠체어를 탄 단원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지난주에도 만났지만 꼭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처럼 반갑다는 얼굴이다. 이윽고 10명의 단원이 모이자 단원들은 묵주를 꺼내들었다. 오늘은 수원 천지의 모후 레지아 직속 지체장애인 쁘레시디움 ‘든든한 힘이신 동정녀’ 쁘레시디움(단장 문란희, 영성지도 박태웅 신부)의 500차 주회합이 있는 날이다.
묵주기도 소리가 회합실을 가득 채웠다. 거동이 불편한 이들이 모여 만든 쁘레시디움인 만큼 왕성한 외부활동이 어려웠기에, 단원들은 주로 기도로 활동을 하고 있다. 매주 적게는 100단을 바치는 단원부터 많게는 800단 이상 바치는 단원들도 있다. 단원들은 직장생활 등으로 바쁜 와중에도 늘 기도를 잊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렇게 매주 회합을 하며 레지오마리애 교본과 훈화를 통해 교리를 배우고, 주중에도 늘 기도하다보니 점점 단원들의 신앙이 깊어져 갔다. 이미 30년 전부터 교구 지체장애인선교회가 설립돼 활동해왔지만, 매월 1번 모이는 모임만으로는 더 깊은 신앙생활을 하기가 어려웠다. 단원들은 레지오마리애를 통해 신앙을 배우고 기도생활을 하다 보니 얻는 기쁨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 신앙의 기쁨이 있어, 단원들의 활동은 기도에만 그치지 않았다. 단원들은 여건이 되는대로 환자방문이나 목욕봉사 등을 하고, 지난 2017년 지적장애인 작업장인 원천그룹홈이 문을 닫기 전까지는 매주 꾸준히 단원들이 함께 봉사하기도 했다. 거동이 불편한 만큼 할 수 있는 봉사를 찾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앞으로도 할 수 있는 봉사를 찾아 해나갈 계획이다.
9년째 활동하고 있다는 강미향(데레사·57·제1대리구 동수원본당)씨는 “레지오마리애 활동을 하면서 신앙을 다지고, 그 결과로 신앙을 통해 웃을 수 있는 삶을 살게 됐다”면서 “신앙이 최고의 선물이란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사실 쁘레시디움 창단 당시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다. 지금은 장애인콜택시가 있어 교구청까지 이동하는 어려움이 많이 해소됐지만, 그 전에는 개인이 차를 운전하거나 운전이 불가한 사람은 일반 택시를 이용해야했다. 특히 비나 눈이 오는 날에 휠체어로 이동하는 일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빙판길에서는 걷는 사람들도 위험하지만, 휠체어는 그 이상으로 위험했다. 그런 어려움에도 단원들이 꾸준히 모여온 것은 매주 모여 신앙을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창단 당시부터 쁘레시디움에서 활동해온 문란희(요세피나·62·제1대리구 동수원본당) 단장은 “거동이 어렵다보니 본당에서는 레지오마리애 활동을 하기 어려웠다”면서 “그동안 쁘레시디움 창단과 운영에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단원들과 함께 기도하면 기쁘고 즐거웠기에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했다.
지체장애인들은 몸이 불편한 것뿐이지만, 본당에서는 레지오 활동 자체가 어렵다. 일단 성당 자체가 장애인에게는 불편한 장소다. 요즘 새로 짓는 성당들에는 휠체어를 위한 경사로나 엘리베이터들이 있는 편이지만, 오래된 성당은 들어가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 성당에 들어갈 수 있더라도 회합실까지 가는 길이 계단으로 돼있기도 하고, 고해성사를 하고 싶어도 좁다란 고해실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었다. 이 모든 게 갖춰져 있더라도 장애인 화장실이 없으면 성당에서 무언가 활동할 생각을 접어야 했다.
곽애경(요세파·64·제1대리구 동탄영천동본당)씨는 “꼭 지체장애인이 아니더라도 고령화 사회에 휠체어가 필요한 어르신도 많기 때문에 앞으로 짓는 성당들이라도 휠체어를 고려한 설계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2009년 6월 3일 창단한 쁘레시디움의 원동력은 무엇보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단원들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원들은 매주 주회합을 마치면 함께 식사하고 차를 마시곤 한다. 같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인 만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신앙 안에 한 가족이라는 끈끈한 유대가 있다.
임생린(프란치스코·62·제1대리구 상촌본당)씨는 “비장애인 신자분들의 경우 배려해주려고는 하시지만, 함께 활동하는 데 많은 제약이 따른다”며 “장애인이 겪는 불편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경우 작은 상처가 괴롭게 다가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불편 없이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어 주회합이 있는 토요일은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기쁘다”고 밝혔다.
영성지도 박태웅 신부는 이날 훈화를 통해 “장애인들이 모인 쁘레시디움은 비장애인에게도 모범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가운데 하느님과 성모님께서 항상 동행하고 계심을 잊지 말고, 늘 건강하고 또 하느님께 충실한 단원들이 되길” 당부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