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자연(하느님의 품)속에서는 병이 없지만, 인간이 만든 문명(바벨탑)속에서는 그렇게도 많은 병이 있다. 그뿐 아니라, 갖은 고통과 번뇌, 갈등과 다툼,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그래서 이 세상을 고통의 바다(苦悔)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제1독서에서 욥은 자신에게 닥쳐온 연고 없는 재난과 질병에 대해 이렇게 한탄한다.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요, 그의 생애는 품꾼의 나날같지 않은가?…날마다 돌아오는 것은 허무한 것일 뿐, 고통스런 밤만이 꼬리를 문다네… 나의 나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덧없이 사라져 가고 만다네. 잊지 마십시오, 이 목숨은 한날 입김일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내림으로 해서 인생은 완전히 바뀌고 만다. 진정 「하느님 나라」가 이 세상에 도래한 것이다. 악령이 쫓겨나고, 많은 병자가 고침을 받고,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듣고, 온갖 고통에서 인간이 해방된다.
오늘의 복음은 바로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실질적으로 인간이 보고 듣고 체험한 사실을 전해준다.
우선 수제자인 시몬(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신다. 우리사회는 지금 심한 열병을 앓고 있다. 이간들은 돈과 권력, 타락과 사치 때문에 들떠 있다. 일찍이 이런 열병을 앓아본 일이 없는 상태이다. 인간이 하느님을 떠나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복음에서는 “해가 지고 날이 저물었을 때 사람들이 병자와 마귀 들린 사람들을 모두 예수께 데려왔다”고 전한다. 물론 그 당시 율법주의자들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안식일에는 병자든, 짐이든 운반할 수 없었다. 해가 지면 그 법에서 해방되어 병자들을 데려왔지만, 여기에는 또다른 의미가 있다. 즉 인생은 제멋대로 놀아나다가 이제 생명이 다 됐다싶을 때 당황해서 결국 의지할 곳은 하느님 밖에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는 법이다. 젊은 날에 그렇게도 혈안이 되어 찾아 헤매던 것들이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죄목과 타락의 증거로 밖에는 되지 못함을 깨닫고, 애달프게도 하느님을 찾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들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사랑과 자비로써 “온갖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 누구도 또 어떤 죄를 지었든 간에 그리스도 예수 앞에 나오기만 하면 용서받고 구원을 얻는다.
한편 복음은 구원된 자들이 행할 바를 전해준다. 열병에서 해방된 베드로의 장모는 주님과 사도들의 시중을 들었으며, 또 예수께서는 몸소 “새벽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외딴 곳으로 가시어 기도하셨다”고 기록되었다. 이는 곧 구원받은 자들의 삶은 주님을 위한 봉사에 바쳐야 함을 뜻하는 동시에 항상 내적으로 신앙을 굳건히 하면 서 성숙시켜 나가기 위한 기도를 계속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예수께서 친히 그 모범을 보여주셨으니, 신자들은 마땅히 새벽 일직 동이 트기 전에, 한적한 곳에서 기도해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신앙을 위해서, 그리고 보다 효과적인 봉사를 하기 위해, 주님과의 일치로 인한, 하느님의 사랑과 능력을 기르고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한 가장 확실한 길이다. 따라서 기도하지 않는 신앙인, 봉사하지 않은 신자생활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되지 못한다.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로는 제2독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매어 있지 않는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다인들에게는 유다인으로 행동하고, 율법주의자들에게는 율법주의자로 대했으며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그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그들처럼 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중에서 다만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봉사함으로써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여러 상황에 따라 적응하고, 그들의 심성이 되어줌으로써 그들과 고락을 함께 나누며, 이세상의 덧없음과 복음의 진실성 그리고 그에 의한 구원된 삶을 몸소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타협이 아니며, 진리에 대한 양보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세주이시다. 그분이 세상에 오심은, 오직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준행하기 위함이다. (요한 6,38-39 참조). 마찬가지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남도 오직 하느님아버지의 뜻에 따라 살기 위함이다. 우리인생의 고통과 질병, 전쟁과 재앙들은 모두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았기에 때리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오직 아버지의 뜻만이 이루어지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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