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 천주교 계통이 어느 잡지에서 신년 특집으로 실릴 원고니 신자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글을 좀 써달라는 청탁을 받게 되었다.
처음으로 원고를 쓰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망설임에 고민을 하다가 마침 우리의 이웃에 훌륭한 분이 계시기에 그분을 소재로 글을 써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를 찾는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구자룡 선생님댁이죠?” “예, 그렇습니다만…” “다름이 아니라 선생님이 쓰신 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저도 그 약 좀 먹어 보았으면 하구요” “약요?” “예, 저도 몸이 많이 아파서 그러는데 사모님이 먹었다는 그 약이 아주 좋은 약인가 보군요”
이러한 전화는 그날뿐이 아니라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 걸려 왔다.
순간 나는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봉사하며 기도하는 분을 약장사로 욕되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잡지에 실렸다는 나의 글의 내용인즉 이러한 것이었다.
우리 동네에 열심히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하시는 자매님이 계시다. 최세실리아, 그분은 언제부턴가 불쌍한 이웃을 위해 봉사활동을 했다.
꽃동네, 미라회 등 회비를 받아다가 보내기도 하고, 나환자촌, 수도회 등을 돕기 위해 미숫가루에 새우젓, 각종 생활필수품, 심지어는 약까지 팔기도 한다. 물론 이익금은 모두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쓴다.
세실리아의 봉사적 정신이 얼마나 극성맞던지 아무것도 모르는 신자들은 오해 아닌 오해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자매님은 그런 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세실리아 자매님을 만나게 된 것은 여러해 전이었다. 아내가 하루에도 열두 번씩 영혼의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을 무렵, 본당 수녀님으로부터 소개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세실리아는 좋은 약이라며 아내에게 약을 권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듯이 좋은 약이라고 하니까 아내는 무조건 먹을 수밖에. 그러나 그 자매님은 그 약을 보통 약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했다. 기도와 함께 정성을 드려야 하며 이 약으로 인하여 나도 불쌍한 이웃을 돕는다고 생각하면서 복용하라는 것이었다.
아내는 열심히 기도하며 약을 복용했다.
약 복용과 함께 물론 세실리아의 일을 도우며 봉사도 같이했다. 아내는 몸이 건강치 못하므로 주위에 있는 신자들의 꽃동네, 미라회, 회비를 받는 일부터 시작했다.
얼마나 약을 복용하며 힘겨운(?)봉사를 했을까. 아내는 조금씩 조금씩 건강의 차도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아내는 신이 났다. 건강이 좋아지니 살 것 같았다. 그리하여 아내는 본격적으로 세실리아의 후원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정말 이 세상엔 아름다운 것도 많고 따뜻한 것도 많지만 세실리아의 봉사정신이야말로 아름다운 것이요 우리를 따뜻하게 하는 일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런데 이글을 본 사람들 중에 일부는 세실리아자매님의 정신보다 약에만 관심을 둔 것이 아닌가 해서 못내 아쉬웠다.
물론 사람들은 건강하고 싶어하고 오래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육체만이 건강하다고 오래사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건강하고 건정해야 몸도 건강하고 오래사는 것이 아닌가?
마태오 복음 22장37절에 다음과 같은 말이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내가 발표한 글속에 등장하는 세실리아는 약을 파는 약장사 자매님이 아니시다. 병을 고쳐주는 의사도 아니다. 그렇다고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은 더욱 아니다.
단지 세실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옮기며 사는 사랑의 실천자 일뿐이다.
어제도 누가 현관을 두드려 나가보니 그 자매님이 어느 수도회를 돕는다며 무슨 머플러를 가득안고 있었다. 아내는 서슴없이 한 개를 샀다. 좋아보이지도 않는 머플러를 말이다.
그건 내가 할일을, 우리가 할일을 세실리아가 모두가혹 있기에 비록 한 개지만 사지 않고는 마음이 편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주님, 이 새해엔 당신의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하는 세실리아에게 은총을 가득히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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