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이해
사랑은 ‘내리 사랑’이란 말이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사랑은 우선 하느님 사랑을 의미한다. 하느님 사랑이란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다”(1요한 4,10).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하느님은 사랑 자체이시기 때문에 하느님을 알기 위해서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이 사랑을 받고 그 사랑 안에서 이웃과 자연을 받아들이고 사랑하여야 한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7-8)
사랑이신 하느님은 창조와 구세사 안에서 당신을 드러내셨다. 하느님은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이 피조물을 당신 뜻대로 다스리고 보살피도록 ‘당신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셨다(창세기 1,26-31:2, 15-24). 인간이 비록 하느님의 뜻을 거역했어도 그가 불행과 죽음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도록 잘못과 죄를 용서하시는 데서 하느님의 더 큰 사랑은 드러났다. 이는 자비와 은혜의 사랑이다(지혜 11,21-12,2). 이 하느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치유와 구원의 사랑이다(코린 5,17-21:에페 2,12-22:루카 15,1-32 참조).
하느님의 사랑이 육화(肉化)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요한 9-10) 하시고 “나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하시면서 육화된 사랑이 인류의 역사 안에 계승되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제자의 길은 곧 사랑의 길이며 이미 받은 사랑을 닮고 실천하는 길이다.
사랑의 특성
1, 계명으로서의 사랑
그리스도교적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에 기초와 원리를 두고 있는 사랑으로서 빚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로마 13,5:마태 18,25-35). 이 그리스도교적 사랑은 다음 네 가지 특성을 포함시켜야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이 사랑은 사랑받는 자의 어떤 조건이나 자격을 전제로 하는 사랑이 아니다. 은혜로 주어지는 사랑이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비로소 자격을 얻게 된 것이다. 즉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시어 비로소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의 자격을 얻었고 사랑이 무엇인지, 왜 사랑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로마 5,1-11:요한 3,15-17).
둘째, 영원한 삶의 조건으로서의 사랑이다. “하느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1요한 4,12-13). 그러므로 이 사랑으로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에 동참하게 된다(레위 19,2:11,44:호세 11,9:1베드 2,9 등).
셋째,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조건으로서의 사랑이다. 인간의 연대성과 공존의 의무에서 서로 받아들이고 인간다워지기 위한 사랑이다: “내가 너희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마태 18,33).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지 말라. 이웃의 잘못을 서슴지 말고 타일러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 죄에 대한 책임을 벗는다. 동족에게 앙심을 품어 원수를 갚지 말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아껴라”(레위 19,17-18).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이웃은 단순한 남이 아니다.
넷째, 이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의인화(疑人化) 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분으로 인간의 우정이나 이성과의 사랑과 혼동하면 우상숭배가 될 수 있다. 지나치게 이념화하거나 속화시키는(기복신앙적인) 양극의 현상을 피해야 한다.
2, 사랑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행위
사랑의 길이란 사랑이신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받드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받드는 것은 하느님이 명령하신 이중계명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는 곧 경천애인의 행위를 의미한다.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마태 22,37-40).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알아보는 길은 성령의 비추심으로 나타난 성서(2티모 3,15-17)와 교회 공동체(교회의 교도권과 신도의 공통의식 등)를 통해서(고린 12-14)이다.
첫째, 하느님은 자연을 사랑으로 창조하였으므로 자연의 질서를 따른 것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자연의 질서는 과학이 증명해 준다. 즉 과학적으로 알고 지키게 한다. 가설이 아닌 실험과 증거로 제시된 과학적 진리를 따라야 한다.
둘째, 물리(物理) 와 생리(生理)를 다스리는 것은 지성을 기초로 한 합리(合理) 의 질서다. 이는 상식과 통하는 것으로 인간의 공통의식, 관습과 통한다.
셋째, 윤리이다. 인간은 하느님을 닮은 존재로 물리나 생리나 합리를 초월하는 경건함과 윤리를 알고 지키게 되어있다. 즉 도덕적 가치와 윤리를 아는 양심을 가지므로 양심을 따라야 한다.
넷째, 종교적 진리의 추구다. 인간의 마음에 타고난 종교적 심성은 예의나 관습이나 합리를 초월하는 것으로 하느님의 절대 명령을 알아듣고 따르는 것이다. 종교인은 예언자적 소명을 수행하여 이상을 향해 살도록 자극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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