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3일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극기와 희생으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사순절이 시작된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고통이 절절히 와닿는 사순시기가 되면 우리는 참회와 보속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작정하게 된다. 그러나 이 사순시기가 아니더라고 극기와 희생의 마음으로 이웃에게 다가가 그리스도의 참사랑을 전하는 이들이 있다. 본보는 참회와 보속의 시기인 사순절을 맞아 특히 이웃과 함께 나누는 생활, 기쁨으로 회생과 봉사를 실천하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을 찾아가 본다.
(편집자 주)
조숙자(보나·65세·서울 잠실본당)씨는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껴안으며, 스스로 사랑의 징검다리를 놓는다. 그들의 외로움과 자신의 사랑을 서로 나누는 일은 또 하나의 기쁨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조숙자씨의 얼굴은 항상 웃음꽃이 핀다.
지역노인과의 만남, 지난 88년부터 서울대교구 가톨릭 사회복지회에서 실시해 오고 있는 이 운동은 영세지역 할머니·할아버지들에게 성탄시기에 털실로 짠 조끼를 선물하는 것.
그러나 지역노인과의 만남은 일회적인 조끼 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방문과 나눔을 통해 참사랑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조숙자씨는 더욱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외로운 이들에게는 배고픔보다 사랑의 굶주림이 더욱 견디기 힘들지요. 서로 마음을 나누면서 만나니까 이제는 정말 가족같은 그리움이 생깁니다. 지역노인과의 만남은 바로 내가정안에서 소외된 우리의 부모님들과의 만남이기도 하지요. 이웃의 아픔을 내가정의 아픔으로 받아들여야 해요”
방학동, 삼양동, 미아3동 봉천5동에서 9동까지 소위 달동네라 일컫는 지역치고 조숙자씨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아니 아파트 단지로 이름난 본당 관내 영세민에게도 일일이 방문하면서 사랑을 전하는 조숙자씨는 희망이란 이름의 ‘사랑배달부’이기도 하다.
조숙자씨는 아침 9시면 집을 나선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할아버지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또 자신이해야 할 많은 일을 위해 일터로 향하는 발걸음은 젊은 사람 못지않게 경쾌하다. 오후 6시 귀가시간까지 조숙자씨의 활동량은 엄청나다.
레지오 단원으로 활동 중인 조씨는 병자방문, 연도, 장례봉사 등은 으레 자신의 몫으로 생각한다. 장애자 공동체인 신망애의 집 재정후원자는 물론 봉사활동으로 이발봉사, 김치 담그기 등을 한다. 베들레헴의 집에 가면 음식을 만들어 주고 이불을 꿰매기도 한다.
보훈병원은 거의 매일 간다.
그곳에 가면 또 조숙자씨를 반기는 일이 있다. 환자와의 대화는 물론이며 특히 척추장애자들을 위해 식사 거들어 주기를 한다. 전입교우를 찾아가 이웃이 된 기쁨을 함께 나누기도 하고 냉담자들을 방문해서 성당에서 만나자고 은근히 권유하는 조씨의 봉사활동은 끝이 없다.
“본당활동은 하면 할수록 많아집니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고 생각하면 즐거워집니다. 나 자신은 작고 보잘것없지만 사랑을 나누려는 많은 이들이 있어 기쁜 마음으로 심부름을 해 주지요. 걸어다닐 힘이 없어질 때까지 구석구석 찾아다니고 싶지만 시간이 너무 적어 안타깝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말과는 달리 조숙자씨는 시간을 잘 활용한다. 조씨는 본당의 어머니 성서모임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빈첸시안이기도 하다.
또 나눔의 전화상담봉사적십자사 자원봉사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다.
자신의 희생과 봉사가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데 작은 보탬이 되기를 소망하는 조숙자씨는 사순절이라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것도 없다. 매일매일을 극기와 보속의 마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도 해마다 사순절이 되면 또 한 가지 하는 일이 있다. 소년소녀 가장 돕기가 바로 그것이다.
여러 가지 극기의 마음들을 모아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청소년을 돕는다. 결코 내세우는 법이 없는 조씨의 선행이었지만 그것을 알게 된 주위의 몇 사람들이 또 뜻을 함께 해주었다. 그래서 조씨는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소년소녀 가장들과 후원자들을 연결시킬 수 있다. 그것이 고마워서 더욱 열심히 살아간다는 조씨의 모습 속에서 사랑의 큰 힘을 보는 듯 했다.
슬하의 딸2명도 다 출가해서 미국에서 살고 있다는 조씨는 해야 할 많은 일들 때문에 결코 외롭지 않다고 말한다.
“지역노인들과의 만남에서 만난 할머니들이 다 나의 가족들입니다. 그리고 재정후원자들, 조끼를 짜 주는 봉사자들이 모두 사랑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지요. 조끼를 받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이제는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겁니다. 조씨는 한 바늘 바늘에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으니까요. 사랑은 나눌수록 커지는 것 아닙니까?”
자신이 말한 대로 나눌수록 커지는 사랑의 전달자로, 조숙자씨는 올 사순절도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묵상하며 묵묵히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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