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L 신부님은 수도원 형제들에게 마음 따스한 이야기를 감동스럽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가끔은 썰렁한 유머 때문에 형제들로부터 핀잔 아닌 핀잔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L 신부님 마음이 워낙 넉넉해서, 그 신부님을 만나는 모든 분들은 그 신부님을 참 좋아합니다. 며칠 전 아침 식사 시간에 L 신부님과 나는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습니다. 식사 도중에, L 신부님은 나를 보며 말하기를,
“형님, 어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재미있는 일이 있었어요.” 나는 L 신부님의 넉넉한 웃음을 보며, 호기심에 물었습니다.
“무슨 일인데?”
“아, 제가 잘 알고 지내는 분이 계신데, 며칠 전에 자신의 아버님이 많이 편찮으시다는 거예요. 그래서 서울대 병원에 입원 중인데, 내가 와서 기도해 주고, 자신의 아내와 가족들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 주면 좋을 것 같은데, 시간이 되는지를 묻더라고요. 그래서 어제저녁 시간이 된다고 말했더니, 어제저녁 7시, 서울대 병원 ○○층, ○○○○호실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어요. 그러면서 형제님은 병원을 어떻게 찾아오실 거냐고 묻기에, 수도원에서 서울대 병원이 가까우니까 내가 알아서 잘 찾아가겠노라고 말했지요. 암튼 형제님은 무척 미안해하면서도 너무나 기뻐하더라고요.”
“아, 어제저녁에 서울대 병원을 다녀왔구나. 그런데 좀 늦게 오는 것 같던데.”
“예, 좀 늦었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거리가 꽤 되더라고요.”
“아니, 혜화동에 있는 서울대 병원이 그렇게 멀었어?” 그러자 그 신부님은 어린 아이보다 더 해맑고, 천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저도 저녁 7시, 시간 맞춰 서울대 병원 ○○층, ○○○○호실을 찾아갔는데, 형제님도 없고 그런 병실이 없는 거예요. 이상하다 싶었죠.” “병실을 옮겼구나!”
“저도 그렇게만 생각하고 다시 형제님에게 전화를 걸었죠. 지금 병원인데 어디에 계시냐고. 그러자 형제님은 가족들 모두가 신부님을 기다리며 병실에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병원이라고 했더니, 신부님이 안 보인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여기 서울대 병원이 맞다’고 했더니, 형제님은 지금 ‘분당 서울대 병원’이라는 거예요. 순간, 깜짝 놀랐지 뭐예요.”
그 이야기를 듣는 나 또한 경악하면서,
“아니, 처음부터 분당 서울대 병원이라고 말하지 않았어?”
“헤헤, 그분들이 분당 서울대 병원이라고 말은 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서울대 병원 하면, 혜화동에 있는 서울대 병원만을 생각해서, 그렇게 알아들었을 거예요. 제 이야기 들으니까 어때요, 재밌죠?” “아니, 재미 보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뭐, 내가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고, 그리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양해를 구한 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중교통들을 다 동원해서 분당 서울대 병원을 찾아갔죠. 그 형제님 가족들도 이 이야기를 들으며, 한바탕 웃었대요. 비록 시간은 좀 늦게 도착했지만, 병실에서 가족들과 오히려 더 친근하게 웃음꽃을 피우는 시간이었어요. 암튼 어제는 참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나 같으면 은근히 짜증이 좀 났을 텐데…. 그려, 어제는 정말 수고 많았네.”
L 신부님만이 할 수 있는, 착하고 넉넉한 마음이 담긴 이야기입니다. 누군가 분명한 실수가 있었지만, 실수의 근원과 원인을 캐거나, 따지지도 않고, 어느 누구의 마음도 생채기를 내지 않으면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결국은 사랑으로 만들어가는 L 신부님의 모습. 나 또한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