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사랑함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받은 사랑이고 자격 때문에 얻은 것이 아니라 사랑을 얻어서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므로 사랑의 대상을 제한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 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로마 5,8).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받아들이신 것같이 여러분도 서로 받아들여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로마 15,7)
그리스도인이 원수를 사랑해야하는 이유와 의미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1,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비하신 아버지 하느님을 닮는 것이며, 하느님의 자비는 공평하고 편애가 없으시다. 악인들에게 자비와 여유를 베푸시는 것은 그들도 회개하여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에제 18,1~32: 지혜 11,21-12,22: 요나: 루카 13,6-9: 로마 12,19-21).
2, 죄스런 우리 자신이 하느님께 용서받기 위한 조건이다. 남을 받아들이고 용서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느님이나 타인에게 용서받기를 기대 하겠는가? 이는 사리에 맞지 않는다. 이웃이 잘못할 때 일곱 번 쯤 용서해 주면 되겠는가 하는 베드로의 질문에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다.(마태 18,22) 우리가 잘못했을 때마다 용서를 청하듯 용서를 청하는 이에게 용서해 주어야 한다.(마태 6,12:18,23-35 참조)
3,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 예수님은 당신을 박해하고 죽이던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고 용서를 해 주셨다(루카 23,34). 예수의 첫 증인이며 순교자인 스테파노는 이 스승의 모범을 따랐다. 원수를 사랑하고 잘못을 용서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의 특권이며 표지다(로마5,6~11: 1베드2,19-25: 로마15,1-6: 1요한 3,11-18).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온갖 두려움에서 해방되고 마음의 평화를 누릴 자격을 얻는다(1요한 4,17-18).
4,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혼란과 무질서를 야기하지 않는다. 불의를 참고 견디면 정의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보복의 악순환은 원수를 사랑함으로써 그 맥이 끊기게 되고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할 때 오히려 새 질서가 서게 된다. 사회 질서나 정당방위를 포기하는 것이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악에 동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악을 제어할 의무가 인간에게 있으므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적개심이나 보복심을 갖지 않는 것이며·
잘못을 뉘우칠 기회를 주는 것이고 용서를 청하는 사람에게 용서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서는 그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바른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선도하고 기도해주는 적극적인 행위를 내포한다.
사랑에 위배되는 행위들
사랑이 모든 법의 완성이므로 법을 어기는 행동은 사랑에 반대되는 행위이다(요한 15,10: 로마 13,10)그러나 좁은 의미로 사랑에 위배되는 행위는 마음의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겠다.
1. 사랑이 없는 행위
사랑이 없는 행위란 이웃에 대한 무관심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사랑하지 않을 때 그에게는 진실성이나 성실성이 없는 사람이다.
믿음의 행위는 곧 사랑의 실천이고 사랑의 실천은 믿음의 증거가 된다.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우리는 말로나 혀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야고 2,14-15: 1요한 3,17-18)하는 것은 자선이 실제의 사람이란 의미다. 현대 사회로 전이될 때 인간화의 길이 자유·평등·박애라고 했다. 현대 사회의 여러 가지 보험제도나 연금제도 및 사회복지는 이 의미로 활용되고 권장되어야 할 방향이다.
세계가 지구촌이라고 불리운다면 세계인은 서로 이웃이고 관심을 가지고 평화공존에 적극 노력해야하며 이에 무관심한 것은 사랑이 없는 것이다. 루가 복음서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도 자비로우신 하느님은 어떤 계율을 지키는 것보다 이웃에게 관심과 친절을 베푸는 것이 더 소중함을 웅변적으로 시사하고 있다.(루카 15,25-37)
2, 남을 미워하는 행위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는 우리가 이웃을 미워한다면 이는 사랑의 하느님을 닮는 행위가 못된다.
이기적이고 자신만을 아는 사람은 실제로 가장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이다. 이기심으로 키우고 가꾼 자신은 결국 죽을 운명에 놓인 연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어떤 이유로도 남을 미워할 권리가 없다. 우리 모두는 은혜로 태어났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이미 원한이나 복수를 포기한 사람들이다.
미움은 마음으로 이웃을 살인하는 것이고 특히 사상적 충돌이나 계급 투쟁적 사고방식에서 출발되는 것이다. 현대와 같은 복합적이며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관용과인간의 존엄성 및 인권 차원에서 상대방에 대한 멸시나 증오를 극복해야 한다. 개인과 집단의 마음 안에서 증오가 극복되지 않으면 평화는 기대할 수 없으며 미움을 옮기는 사람을 인간과 평화의 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3, 질투의 시기
좋고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스스로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이 바로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힌 인간이다. 인간에게 있어 마음의 평화도 없으며 행복할 수 없는 모습이 시기와 질투이다. 따라서 이는 추하고 볼품없는 인간의 모습이다.
시기와 질투로 남을 바로 볼 수 없게 되며 옹졸함 때문에 다양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잃게 된다. 이는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태도이며 타인의 은혜와 권리를 부정하는 태도로서 협력과 평화공존의 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이 사랑의 길을 자신있게 걸어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한 15,5: 필립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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