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어둡고 혼란하며 악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지만 하느님의 자비는 그러한 암흑과 죄악을 멸하시고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 언젠가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는’(묵시록 21,4) 영광스런 주님의 날이 올 것이다.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면서 잠시 동안 수난의 비극 후에 올 하느님의 영광의 보답을 예견케 하는 에피소드가 오늘의 복음을 통해 전해진다.
아직도 신앙이 성숙치 못한 사도들이 수난의 참사(慘事)에 걸려넘어질 우려도 있을 수 있으므로 미리 그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한 주님의 영광스런 본 모습을 잠시 동안 보여주신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회당장의 딸을 죽음에서 소생시킬 때도 함께 참여했었다(루카 8,49-56 참조). 지금 역시 세 사도는 주님의 변성용(變聖容)을 목격하는 영광을 차지한다. 그러나 그 영광은 나중에 모든 사람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심어주는 확고한 증언자로 있기 위한 것이다. 모든 신앙인은 이와 같이 그들이 믿는 바로 확신과 열성을 가지고 전할 사명이 있다.
그리스도의 영광된 본모습을 잠시 동안이라도 목격한 사도들은 앞으로 다가올 수난의 어두움은 영광의 부활을 위한 전주곡임을 알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겪고 있는 모든 어려움과 어둠은 주님의 수난과 연관된 것으로서 나중에 크나큰 부활(새 생활)의 영광으로 보답된다는 사실을 상기케 한다.
그 누구도 십자가 없이는 부활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통이나 슬픔, 기타 역경 중에 있는 신자들은 결코 낙심하지 말고 주님과 함께 그 고통과 슬픔의 십자가를 짐으로써 역시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는 영광을 얻도록 할 것이다.
세 사도가 주님을 따라 산에 올라가, 주님과 함께 기도하고 있는 동안, 예수님의 모습은 완전히 변하고 옷은 눈부시게 빛났다.
예수 안에 내재한 신성이 드러난 것이다. 이 찬란한 광채는 영원히 빛날 그리스도의 영광이며, 우주의 궁극적인 영광이다. 그때 갑자기 모세와 엘리아가 나타나, 주님의 수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리사이인들은 예수가 율법을 무시한다고 비난했지만, 여기 율법(모세)과 예언(엘리아)이 동시에 예수님께 시중들고 있다. 그리스도는 율법과 예언을 폐하러 오심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시키러 오셨다. (마태 5,17)이 광경을 목격한 베드로는 너무나도 황홀하여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깨어났을 때 그는 이 순간이 영속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초막 셋을 지어 바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일진의 구름이 일어 예수님과 구약의 두 증인을 감싸버렸다.
그 때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아들, 내가 택한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와 함께 구름이 걷히고 “예수님 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그리고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초자연적인 현상에 접했을 때 인간의 언어는 무의미한 것이 된다. “제자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자기들이 본 것을 얼마 동안 아무에게 도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 예수님이 어떠하신 분이시며, 그분의 영광이 얼마나 크옵신지에 대해서는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키 어렵다. 오직 믿음으로써만이 그 신비를 이해하고, 또한 그 이해의 정도에 따라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을 뿐이다.
제자들은 그 잠시 동안의 천상의 빛을 보았으나, 그 빛은 아직은 이 세상의 것은 아니다. 다시 세속에 돌아와 어둠에 잠긴 세상을 향해 아직도 꿈속에 헤매는 군중들에게 미래의 찬란한 빛에 대한 증인이 돼야 한다. 한번 그 빛을 본 사람은, 그리고 그 빛을 본 사람의 증언을 믿는 사람은, 결코 이 세상의 어떠한 고난이나 역경에도 미동도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믿는 자에게는 이미 하느님의 확고한 약속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제1독서에서도 바로 하느님의 약속이 아브라함에게 내리심을 전한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네 자손이 저렇게 불어날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었다. 그리고 그는 그 약속을 확신하는 듯으로 하느님께서 지시한대로 재물을 바쳤다. 우리의 믿음의 표시로 우리도 우리 생활을 하느님께 봉헌해야 함을 뜻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고 이름만의 신자, 미지근한 신앙(묵시 13,14-16참조)으로서는 안 된다. 사순절을 맞이한 지금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의 신앙을 복음에 비추어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도 바울로는 제 2독서에서 지금도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내가 벌서 여러 번 여러분에게 일러준 것을 지금 또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바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최후는 멸망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우리는 “하늘의 시민으로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런 몸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시켜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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