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유의 명절인 설날 연휴를 하루 앞둔 2월 13일, 무의탁 장애인 할아버지들의 공동체인 요한의 집에도 설날을 맞는 기쁨이 넘치고 있었다. 소리 없는 나눔을 실천하려는 봉사자들이 할아버지들이 먹을 설날 음식을 마련하는가하면 요한의 집 가장인 정광훈(요한)씨는 가족끼리 맞이하는 따스한 설날이 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었다.
요한의 집 할아버지들은 대부분 행려자 수용시설 등에 오래 수용돼있었던 이들이며 많은 병으로 인해 시립병원을 제집 드나들듯이 다녔던 이들이다.
아무도 돌보야 주는 이들이 없이 홀로 버려졌다가 오랜 세월을 시설에서 살아온 이들의 필생의 소원은 남들처럼 가정에서 자유롭게 살아 보는 것이었다. 이미 그들이 몸담아 왔던 시설들이 그들에게는 아무런 위안과 안식처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단 하루를 살아도 바깥세상에서 자유롭게 숨쉬며, 편안하게 눈감기를 소망했던 할아버지들과 정광훈씨의 만남은 요한의 집을 탄생시켰으며, 새로운 삶으로 엮어지고 있다.
정씨 자신도 어릴 적에 앓았던 소아마비로 인한 지체부자유자이다. 수많은 좌절과 아픔들, 척추를 3번이나 수술하면서 마주친 죽음의 순간들과 싸우면서 살아야 되겠다고, 더 많은 이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고 이를 악물고 헤쳐 온 세월이 어느덧 반백을 헤아린다.
자신이 드나들었던 시립병원에서 만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할아버지들이 정씨에게는 희망이 됐다. 병원을 나서봤자 또 다시 수용시설로 돌아가는 길 밖에 남지 않았지만, 죽어도 시설로는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았던 할아버지들의 아들이 되기로 결심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서로 도와가며 사는 것이지요. 오랜 세월을 소외받고 외롭게 살아 왔기 때문에 서로 의지하면서 아껴주고 있습니다. 남들은 우리보고 나이 들고 병든 사람들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정신은 병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깨끗하고 순수하지요”
요한의 집에서 할아버지들은 정씨를 ‘엄마’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물질적으로 할아버지를 풍족하게 해주지는 못하지만 진정한 마음을 나누는 공동체로 가꾸고 있는 정씨는 드러나기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 그의 일이 세상에 드러난다면 그만큼 물질적인 궁핍에서는 벗어날지 모르지만 그에 앞서 할아버지들이 상처받을 것을 염려한다.
물질적 나눔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아니 소외받는 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사랑의 나눔입니다. 가정에서 남는 사랑이 있으면 주위의 이웃들과 나누고 그래도 남는 사랑이 있다면 요한의 집 할아버지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지난 1월과 2월 두 달 사이에 2명의 할아버지를 먼저 떠나 보낸 정씨는 그래서 더욱 식구들의 입교를 권장한다. 정씨는 지난해 12월 15일 여섯 명의 할아버지를 영세시킨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지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정상인들처럼 교리를 배울 수 없는 할아버지들은 첫영성체 교리서로 공부하지만 열의는 대단하다. 지난해 정씨가 4개월의 행상 끝에 힘겹게 마련한 비디오로도 할아버지들은 공부한다. 미사해설, 두개의 십자가, 과달루페의 성모, 파티마의 성모, 성 김대건 신부 등은 보고 또 보아도 할아버지들을 즐겁게 해준다.
얼마 전 정씨는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했다.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6동 591번지(전화:834-0840). 비록 사글세이기는 하지만 할아버지들이 조금 더 넓은 방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이 기쁘다. 이곳에서 정씨는 또 외로운 할머니들을 모실 계획을 세운다. 서로의 외로움을 나누는 곳에서 큰사랑이 피어나는 것을 요한의 집을 통해 깨달은 정씨는 또 이렇게 사랑을 나눌 궁리를 하는가 보다.
아픈 다리를 끌며 행상을 다니면서 불우한 이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정광훈씨는 요한의 집 식구들 이외에도 돌보아야 할 가족이 많이 있다.
정씨는 금년 사순절 극기와 희생의 몫은 결손가정 자녀 돕기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홀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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