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와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작년 8월 19일자부터 게재했던 ‘자연으로 돌아가자’ 환경시리즈가 이번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심도 있는 글을 집필해주신 분들과 애독해주신 독자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본보는 이 후속으로 ‘생명을 지키는 사람들’(假)이라는 주제아래 생명운동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과 그 생명운동에 대해 심층 보도해 나갈 계획입니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시리즈에서 보여주셨던 관심과 격려, 그리고 질책을 이번에도 계속 보내주시길 기대합니다.
“어떻게 하면 인위적인 죽음에 직면해있는 생명을 살릴 수 있을까? 생명을 살리는데 일차적으로 필요한 먹거리는 어떻게 하면 살아 날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은 지금 온 인류에게 절박하게 제기되는 물음이요, 그 해답을 구하기 위한 노력은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그 만큼 더 많은 생명의 죽음을 가져 올수 밖에 없는 시급한 실천행동으로서 요구되고 있다.
생명의 ‘밥상’
죽음의 밥상을 날마다 대하고 있는 우리는 죽음의 밥상이 만들어 질수밖에 없는 먹거리 생산양식과 생활방식을 반성하는 일에서부터 건강한 먹거리, 생명 살림의 길을 찾아 봐야겠다. 지금의 먹거리를 생산 가공, 유통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 먹는 사람들의 먹거리 선택의 기준, 즉 가치관이 무엇이었기에 우리의 밥상은 오염 투성이가 되었는지 이 근본 원인의 반성 없이는 생명의 밥상은 마련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먹거리의 생산과정부터 보면 이른바 상업농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지금까지의 농업생산방식은 양과 가격위주의 먹거리 생산방식이다.
농업은 건강한 식량생산이 목적인데 돈을 목적으로 하게 되었을 땐 생명에 유해한 담배같은 작물도 재배되게 되고 중금속오염 등 생명에의 유해여부도 2차적인 것으로 되거나 아예 무시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농민생산자 자신마저 살인적인 돈 벌기 경쟁구조 속에서 처참하게 삶이 파괴당하여 지금 우리 농촌엔 오염된 먹거리일망정 그것마저 생산할 농민이 없어져 간다.
유통 때 오염 더해
가공먹거리의 경우는 오염된 먹거리 원료에다 더욱 철저한 돈의 가치관속에 생산되고 유통되다 보니 오염의 정도는 더 할 수밖에 없음은 당연하다. 여기에 먹거리를 구하는 소비자의 가치기준도 먹는 목적에 맞는 내용인가를 생각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죽음의 밥상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어떤 가치관으로 변화되어야 생명에 맞는 밥상이 차려 질것인가?
수천만년동안 건강하게 번성해온 자연생명 세계의 존재방식, 즉 생명의 세계관. 가치관을 따를 때 인간도 이 생명세계의 작은 일원이니까, 건강한 삶이 이루어 질수 있는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자연생명세계가 존재하는 방식이야 자연만이, 하느님만이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전부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큰 줄거리에서 감지되고 있는 것은 생명을 위해 돌고 도는 순환적인 관계라는 것이다. 식물은 여러 가지 분해물질들을 빛과 작용하여 동물이 먹을 수 있는 식량으로 만들고, 동물은 이를 먹고 살면서 분비물을 식물의 먹이로 주거나 죽어서 미생물의 먹이로 분해되고 분해물질과 미생물은 식물성장의 양식이 되는 순환적 공생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것 하나만 중요한 독불장군식의 존재관계를 갖는 것이 아니라 그물망처럼 엉켜서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형태이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부분과 전체가 통일적인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건강한 밥 한 그릇의 생산과정을 보면 토양, 물, 지렁이, 미생물, 태양 달, 구름, 풀, 농민 등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는 온 우주만물의 협동활동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건강한 먹거리는 이러한 자연생명세계가 존재하는 상호 연결 관계를 파괴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파괴된 관계를 연결시키는 식량생산방식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져야만 생산될 수 있다. 이 같은 생산방식을 우리는 유기농업, 자연농업, 생명의 농업이라 부르기도 한다. 즉 옛날 우리조상들이 콩씨를 뿌릴 때, 한 알은 하늘을 나는 새를 위해, 한 알은 땅에 사는 벌레를 위해, 한 알은 인간 스스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한구덩이에 세알을 심었던 공생공존의 생산과 삶의 방식 속에서만이 우리는 생명의 먹거리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산되고 가공된 먹거리의 유통 또한 기존의 독물이 포함된 먹거리의 유통방식인 판매자와 구매자간의 수직적상행위에 의해서는 그 내용이 변하지 않고 교류되기는 어렵고 생산자와 활용자 서로의 생각과 모습과 체온이 느껴질 수 있는 생명세계가 갖고 있는 수평적 협동관계가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이런 직접적인 연대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속적인 계획생산이 어렵고 장기 유통에 따른 부패장지용 독물이 첨가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생산과 유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기존의 삶을 반성하고 더불어 사는 가치관으로 변화된 생산자와 소비자의 한몸과 같은 행동이 필요하다.
벌써 이런 생산방식과 생활방식 변화를 이루기 위한 활동은 여기저기서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생명운동, 한살림(함께살림) 운동이라는 것이 그대표적 예이다.
1986년 12월에 처음으로 생명살림운동을 시작한 한살림공동체는 농촌지역에서 유기농업을 통한 생산터전 살림과 더불어 사는 마을공동체활동을 추진하고, 도시에서는 5~10 세대의 공동체구성을 통한 생활용품 공동주문과 나눔, 반생명적인 생활변화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직거래운동 활발
생산지역활동 중 상주 한살림생산자동우회 공동체의 경우 60여명의 생산자가 공동체를 구성하여 무농약 유기농사 저농약유기농사 등을 통해 죽어가는 생산터전 살림운동을 하면서 지역주민들의 재생휴지쓰기, 치약대용 죽염쓰기, 합성세제 안 쓰기 등 생활변화실천활동을 추진한다. 뿐만 아니라 가공공장도 공동설립하여 이 지역 생산물을 가공하여 재벌기업의 손에 넘어간 부가가치를 농촌 생산터전 살림에 전환하고 건강한 가공먹거리를 도시공동체 가족에게 보내는 활동도 추진하고 있다. 도시공동체인 한살림공동체 소비자 협동조합은 유기농산물과 협동의 뜻이 담긴 우리농산물 공동 나눔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공해교육, 생산자가족방문 및 노동, 생존터전 파괴하는 생활변화 활동, 어린이한살림학교 등의 활동을 통해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전개하고 있다. 한사람의 작은 생활변화 활동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생명 살리는 공동체운동은 한사람의 변호에만 그치지 않고 신명나게 어우러지는 사회변화로 더 나아가 세계의 변화를 일으키는 활동으로 확산될 것이다.
아무튼 남의 활동을 통해 자신의 생명만 보전하려는 이기적 자세로는 결코 생명의 밥상은 마련될 수 없다. 매일 1백여 종의 생물이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는 죽음의 장송곡이 바로 생명운동에 동참하길 주저하는 자신의 것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고 모두 함께 생명 살리는 운동에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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