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일행은 결국 벳사이다 항구에 배를 대었다. 그러니까 그들의 항해는 호수 남단에서 북단으로 온 것이다. 이곳은 두 번의 빵의 기적이 있었던 곳이며 벳사이다는 안드레아와 베드로의 집이 있는 곳으로 필립보는 이 곳 출신이다 (요한 1,44)
이곳을 마르코는 두 번이나 마을이라고 부르고 있지만(23절과26절) 분봉왕 헤로데 필립보가 만든 큰 도시이며 로마황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딸 율기아의 이름을 따서 벳사이다-율리아스라고 명명한 도시이다. 이 도시는 주께서 베푸신 은혜에도 불구하고 배은망덕의 길을 걸어서 후에 코라진과 함께 예수의 저주를 받은 도시이기도 하다(마태 11,21:루카 10,13)
이 기사를 쓴 복음사가는 아마도 벳사이다의 노경과 어부 베드로를 연계하려는 의도에서 이 도시의 옛 모습 즉 ‘어부의 집’(=벳사이다)을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곳에서 일어난 일은 앞서 언급한 귀머거리 벙어리의 치유기적과(대목121참조: 마르 7,31-37) 병행하여 같은 투로 기술되어 있다.
사람들이 소경 한 사람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 고쳐 주시기를 청한다. (손을 얹는 몸짓에 관한 해설은 대목121참조)예수께서는 소경을 따로 마을 밖으로 데리고 간다. 귀머거리 벙어리치유의 경우 그를 군중에서 따로 불러냈던 것과 유사하다.
이것은 구약시대에 예언자 엘리야가 사렙다의 과부의 아들을 고쳐줄 때에 다락방으로 따로 데리고 가치유했던 사실(열왕 상 17,19)과 예언자 엘리사가 수넴의 여인의 아들을 방안에서 문을 닫아걸고 소생시킨 이야기(열왕 하4, 33)를 연상시키면서 메시아의 비밀스러운 행사를 강조하는 것은 벙어리 치유의 경우와 같다.
예수께서는 소경의 두 눈에 침은 바르고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좀 보이냐고 물으셨다. 병자를 고치는데 환부에 침을 바르는 것은 침이 치유효과를 내는 약효를 가지는 것은 아니고 단지 당시의 민간요법절차를 시행한 것뿐이다. 이 행위는 소경이 마귀에 걸렸거나 믿음이 없어서 소경이 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아무튼 손을 얹음으로써 치유의 기적이 이루어졌는데 침바름과 손 얹는 두 몸짓은 사도교회 때부터 세례예식에 도입되어 믿음의 치
유를 의미하는 것으로 통용되었다. “무엇이 좀 보이느냐”고 물어 보았는데 이것은 예수께서 기적의 효과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치유받은 자의 대단에서 드러나듯이 점차적인치유과정을 말하려는 것뿐이다.
그의 치유는 3단계로 이루어진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다음으로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게, 그리고 끝내는 똑똑히 환하게 되게 된다, 그래서 그는 대답하기를 사람들이 보인다고 했고, 나무같이 보이는데 걸어 다니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였다. 예수께서는 또 다시 그의 눈에 손을 얹어 그의 시력을 완전히 회복시켜 주셨다. 그 결과는 그 눈이 밝아지고 완전히 성해져서 모든 것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소경이 치유를 받고서 나무 같은 것이 걸어다니고 있는 것이 보인다고 한 것은 그가 날 때부터 소경은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 주며 예수께서 두 번이나 손을 얹은 것은 첫 번째 손얹음으로 효과가 덜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치유가 점차적임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고 이유는 믿음에 어두운 제자들의 눈이 주님의 간단없는 교육으로 점차적으로 빛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이 강조점은 다음 대목 베드로의 신앙고백에서 드러난다.
벳사이다의 소경이 눈뜬 기적은 제자들만이 목격하였으며 바로 이 마을 출신인 베드로는 아마도 그 소경을 알고 있었을지 모르며 소경이 눈을 뜨게 되는 것은 메시아의 도래를 알리는 표(이사 35,5)임을 베드로는 익히 알고 있었고 벳사이다의 소경이 점차적으로 눈을 뜨는 기적을 보면서 자기 자신의 눈먼 상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자신 이 벳사이다의 소경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손길을 떠나지 않고 그 밑에 밀착하여 따라 다니면서도 예수의 정체를 알아 보지 못한 자기 자신을 보고 벳사이다의 소경치유는 자신이 눈을 떠 예수께 대한 신앙고백을 하는 계기를 포착하였던 것이다.
벙어리의 경우와 마찬가지고 기적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는 뜻으로 마을로 들어가지 말고 집으로 가라는 명령은 그의 집이 벳사이다마을에 있었지만 집과 마을을 대조시키면서 공공화할 때가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메시아시대가 왔다는 것을 아직은 제자들에게만 가르치는 관계를 말한다.
귀머거리 벙어리 치유의 기적(마르 7,31-36)과 벳사이다의 소경치유의 기적은 병행을 이루고 있지만 둘다 이사야서의 메시아시대의 표시(35장5~6)를 알려 주는 목적이고 먼젓번 기적은 군중의 대 환호를 받았고 두번째는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의 신앙의 눈뜸을 제시함으로써 메시아왕국의 도래를 알리고 있다.
이 두 기적은 예수께서 우리를 빛으로, 신앙으로 이끄시는 교훈적인 뜻을 가지며 교부들은 병자를 따로 데리고 간것은 사람들을 과거의 삶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을 상징하고 (성 베다, 테오필라뚜스), 손을 얹는 것은 신앙에의 접근과 선행에의 독려를 나타내고 (성 베다), 단계적으로 보게된 것은 신앙생활의 점차적인 전진을 나타내고(테오필락투스), 분명히 보게 된 것은 완벽한 믿음과 온전한 삶을 촉구하는 상징으로 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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