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명동주교좌본당(주임 조순창 신부)은 사순절을 맞아 2월 23일부터 3월 23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5시에 명동대본당에서 사순절 특별강론을 실시한다. 본보는 그 내용을 지상중계하고자 한다. 다음은 2월 23일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이 강론한 사순 제1강의 ‘그리스도우리의 길’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주>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오히려 날이 갈수록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있으며 온갖 죄악이 범람하고 국민의 정치에 대한 신뢰감은 완전히 땅에 떨어진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하고 정직한 정치가 무너질 때, 우리나라가 어떻게 될까하는 두려움과 위기감마저 느끼게 된다.
현재 무리나라는 신자 수가 늘고 교회건물이 수없이 많이 생겨나고 있으며 또 밤이면 교회당들이 저마다 자랑하듯 붉은 네온십자가를 도처에서 밝히고 있는데도 이 사회는 부정불의와 온갖 죄악으로 깊이 썩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교인들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속화시키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치·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깊이 병들어 있는 암담한 현실 때문에 우리의 내일은 참으로 어둡게만 느껴진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며 달라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들, 특히 그리스도 신자들부터 입으로만이 아닌 참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본받음으로써 진실한 인간이 되어 이웃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 각자의 복음화와 교회의 복음화가 절실히 요망되고 있다.
우리는 진정 복음화됨으로써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자신이 구제되고, 우리가 사는 사회가 덜 부패되며, 세상이 인간다운 사회로 변화될 것이다.
‘그리스도 우리의 길’은 이런 취지에서 내건 표어이다.
‘그리스도 우리의 길’은 그리스도는 우리가 신자로서는 물론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 참된 신앙생활을 위해, 구원을 얻기 위해, 세상의 변화를 위해, 밝은 세상을 위해 절대적으로 가야하는 길이다.
사람은 누구나 삶의 의미를 찾고 있으며 인간은 수많은 의문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누가 우리에게 이런 의문에 답을 줄 수 있으며 방황하고 있는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가?
오늘날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공산주의 내지 마르크스레닌주의나 자본주의 같은 이데올로기도 발달한 자연과학도 이런 인생의 의미에 대한 물음에 답을 줄 수 없으며 또한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총체가 답해줄 수도 없다.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답을 줄 수 있는 이는 오직 인간을 창조한 하느님, 또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뿐이시다.
특히 하느님께서 당신 모습을 따라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느님을 내적으로 닮은 인간은 하느님을 떠날 수 없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생명의 말씀을 지니신 주님을 두고 어디로 가겠습니까”라고 말했고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느님 자신은 우리를 하느님께 향하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느님께 가서 쉬기까지는 언제나 편안치 못합니다”고 했으며 예수님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스도 우리의 길’이란 말을 듣고 마음으로 공감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단지 머리로써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체험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고통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그리스도는 길이라는 것을 깊이 확실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길이신 그리스도를 참으로 따를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를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첫째, 그분의 삶을 깊이 묵상하고 기도할 때, 특히 복음을 읽으며 깊이 생각할 때 그 분을 따를 수 있다.
성경말씀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며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의 힘 있는 말씀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으면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더 깊이 알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구체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은 사랑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우리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느님과 본질을 같이 하셨으나 우리를 위해 신성을 비우고 낮추셔서 우리에게 오셔서 모든 죄를 내신 지고 당신을 희생제물로 십자가에 바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 분을 따르고자 한다면 남을 사랑하고 돕는 사람이 돼야 한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으나 우리 각자가 나부터 변화해 사랑의 촛불을 밝힌다면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예수님은 최후의 심판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때에는 모든 사람이 마치 양과 염소로 나누듯이 나뉠 것”(마태 25,31-40)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최후심판의 기준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사랑했느냐」로 삼으신다. 사랑은 그리스도 신자의 본질이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보잘것없는 형제에게 해주는 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다.
보잘것없는 형제란 바로 내가 알고 나에게 가까이 있지만, 내가 사랑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마음을 열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때 그리스도를 참으로 따르게 되는 것이며 ‘그리스도 우리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길 생명의 길이요,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길이며 우리에게 희망과 기쁨과 평화를 가득히 주고 온 세상을 밝혀주는 아름다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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